[연중] 나의 구미호 남편님

04. 나는 잘못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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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길지 않았다. 짧다면 아주 짧았지, 절대 길지는 않았다. 미래는 눈을 뜨자마자 정체 모를 하녀들에게 손발이 잡혀 끌려갔다. 지하로 가는 길에 지민이 달려왔지만 경비분들에게 막혀서 울부짖었다. 이런 일을 예상은 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까 깜깜하네.



우리 둘 다 눈이 마주쳤지만 차가운 현실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집어 넣었다. 어둠 속은 아프기만 했다. 빛 하나 없는 이곳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빛나는 너의 자리와 초라한 나의 자리는 절대 어울려서는 안된다는 걸 알아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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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요."




"....!"













꼬마였던 나에게 독화살을 조준하던 사람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이자, 이 세계의 주인. 지금 모든 세계에서 제일 강한 권력을 쥔 사람. 구미호의 황제.















"고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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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물이 흘렀고, 그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10여 년 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나를 아니꼽게 보았다. 왜 우리 마녀들한테 그래. 다 인간 짓인데. 전쟁이 우리 탓? 웃기지마. 당신의 서툰 판단에 모두가 넘어간 거야.












"끌고 가."











나는 잘못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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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그대로 지하 감옥에 끌려와서 내동댕이쳐졌다. 차갑고 기분 나쁜 까끌까끌한 감촉이 닿았다. 나가려고 문으로 뛰어갔지만, 내가 문에 부딪쳤을 땐, 이미 문이 잠기고 난 뒤였다.













문에 기대 주르륵 힘 없이 주저앉았다. 고개를 무릎에 묻고 너의 이름만 하염없이 불렀다. 보고싶어. 지민아. 이 일곱 글자가 하염없이 맴돌았다. 이 문과 철장은 무슨 재질인지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그냥 헛웃음을 내뱉고 감옥 내부를 살폈다. 안은 이불 두 장이 끝이었다. 크기는 사람 세 명이 누울 수 있는 정도. 생각보다 넓었다.




춥지도 않았다. 덥지도 않았다. 그런데, 등골이 서늘했다. 지하여서 그런 걸까. 아무것도 없는데 괜히 소름 돋는 것 같고, 서늘한 기분. 그냥 한 침대에서 박지민한테 포근하게 안 긴장을 풀고 싶었다.겨서 한숨 자고 싶다. 긴장을 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