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브남은 사실 집착남이었다
W. O형여자
르레핀의 미녀가 유서하라면 르레핀의 미남은 단연컨대 김태형이다.
앞서 말했었지만 훤칠한 키에 화려한 이목구비, 거기에다 저음의 목소리까지.
설명을 덧붙이자면 큰 눈에 비해 작은 눈동자는 상대방을 홀릴 듯 하고, 그 길고 예쁜 손으로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본 여인들은 약간 과장해서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는 소문도 있다.
삽화 작가의 실력은 사실 좋지 못했지만 김태형이 나오는 삽화가 나온다면 김태형을 최대한 잘생기게 그리려는 노력이 보였다.
아무튼.
하마터면 남주한테 넘어갈 뻔 했다.
근데 김태형 아까 유서하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던데…
소설 결말까지 김태형과 유서하의 접점은 없었단 말이지…?
좀 이상하네…
아무래도 전정국을 빨리 찾아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여기 계속 있다가는 다른 남자한테 홀랑 넘어가버리겠어.
“서하님!”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오도도 뛰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김하린이었다.
나를 오래 찾아다녔는지 숨을 헥헥 거렸다.
“하린님, 일단 숨 좀 돌리세요.”
“네…”
웨이터에게서 주스 한 잔을 건네받은 나는 그 주스를 김하린에게 넘겨주었다.
주스를 한 잔 마시고 어느정도 진정이 된 김하린은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전정국 후작님 찾았어요!”

“어디서요?”
“사실 제가 후작님을 찾은 건 아니고요,”
“영애들끼리 후작님께서 정원에서
서하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아니, 왜?
내가 안 오면 어쩌려고?
“우선 알겠어요.”
“고마워요, 하린님!”
내가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지.
전정국이 김하린을 먼저 만나기 전에 내가 서둘러야 해.
탁_
“…하린님?”
“아…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갑자기 후작님은 왜 찾으시는 거예요?”
“서하님께서는 항상 후작님을 피해다니기 바쁘셨잖아요.”
아… 이걸 생각 못했다.
멍청하긴. 전정국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평소 유서하의 이미지를 자꾸 까먹는군.
“아…그게…”
뭐라고 해야 하지?
평소 유서하를 잘 생각해봐.
유서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할까…
유서하는…
유서하는 사랑 앞에서는 내숭 따위는 없을 거야.
진실된 사랑을 꿈꾸는 캐릭터니까.
자기 생각을 김하린에게 자주 이야기 했을 것이고.
그럼 김하린도 이 점을 알고 있겠지.
그리고 유서하는 자기는 첫눈에 반하기보다는 오래보다가 갑자기 어느순간 빠져있다고 김하린에게 말한 적이 있었지.
그렇다면…
“후작님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정원은 왜이렇게 넓은 거야?
하긴 유의현 백작의 가장 큰 취미는 정원 가꾸기였지.
여러 꽃으로 빽빽한 정원 속 유서하가 너무 아름답다고 했었나?
소설 속에서 김하린은 백작가 정원에서 길을 잃은 적도 있으니…
어떻게 정원에서 길을 잃어버리나 이해가 안됐었는데…
이제 왜인지 알겠군.
그나저나 김하린의 질문을 무시했어야 했나…
그때는 최선의 대답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김하린이 꽤나 서운해 할 수도 있겠는걸.
유서하와 김하린은 항상 모든 것을 공유해 왔으니까.
나중에 만나면 사과해야겠어.
그나저나 전정국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이렇게 넓은 정원에서 어디인지도 안 알려주고, 애초에 내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진짜… 소설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약간 어리바리한 면이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서하님…?”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돌아보자 이런 세상에.

세상에 이런 큐티섹시토깽이가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이런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는 것인가?
얘가 당연히 전정국이겠지?
유서하는 왜 이런 애를 그렇게 맨날 매정하게 찬 건데?
머리 속에서 수많은 물음표들이 파리마냥 날아다닐 때 전정국은 그저 멍하니 있었다.
“후작님?”
“전정국 후작님?”
이름을 부르며 내가 조금씩 다가가자, 어머머 세상에.
이 귀여운 아기토끼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닌가.
이곳은 소설 속이 아니다.
이곳은 극락이다.
“아… 서하님…”
목소리도 존나 좋다.
아놔 전정국만 살리고 여기 떠나고 싶었는데 평생 살아도 될 거 같아.
난 그만 정신을 잃고 이미 전정국과의 노후 계획까지 짜고 있었지만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전정국이 딴 데 눈 못 돌리게 할 방법…
역시 그거 밖에 없겠지?
“후작님.”
“…네.”
“결혼해주세요!”
아 미친 이게 아닌데.
너무 급발진이잖아.
이 말을 하려던게 아닌데 왜이렇게 꼬인 거야.
그래도 전정국 입장에서는 좋지 않을까…?

아 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