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은 싫다고 했다. 애초에 장래희망으로 남도일 적고 학주한테 엎드려 뻗쳐 받은 애와 무슨 말을 더 하겠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여주는 올해 들어 저 소리를 자그마치 스무 번은 더 들은 것 같다. 쟤는 모를까, 우리가 날 때부터 얼굴 마주보고 있었단 사실을. 그러니까 아무리 진절머리 나도 김태형은 결국 장여주의 굴레에서 자의로 벗어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8년지기도 거부한 제안의 내용은 이렇다. 우리 동아리 만들자! 그렇게 말하는 눈동자가 심하게 뻔질거렸다. 태형은 일단 피시방에서까지 코난을 쳐 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했다. 너 진짜 밥맛... 아니 겜맛 떨어지게 할래? 아무튼 첫마디로 거부의 의사는 완강히 표했지만, 그 여린 속내로는 동아리쯤이야 같이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연화고 2학년 김태형은 그렇게 박하지 않단 말이다.
그런데 옆에서 장여주가 하는 말이,
"이름도 지어놨다, 추리 3반이라고. 김태형 넌 그냥 몸만 오면 되세요."
"추리...... 뭐?"
"추, 리, 3, 반."
"아씨, 야. 못 들어서 물어본 거 아니거든? 진짜 하다하다..."
태형의 한줄평. 얘는 정도를 모른다. 무슨 동아리냐는 것까진 안 물어봤지만 이름만으로 대충 판명되는 게 있다. 코난에 환장하는 추리덕후가 동아리를 꾸려서, 뭘 하겠느냐고. 태형은 건물을 나갔지만 딱히 할 건 없어서 도로 피시방에 들어와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면 약간은 태형의 눈치를 보면서 여주는 말한다.
"알겠어. 이름 마음에 안 드는 거면 의견 내 봐. 고려해줄게. 아니, 적극 수렴해줄게.
"......"
태형은 아아아, 신음하며 키보드에 머리를 박는다.

연화고 추리 3반
ep1. 연화고 추리 3반
왜 추리 3반이냐면, 별거 없다. 장여주의 반이 2학년 3반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별게 있다면 김태형 또한 장여주와 같은 3반이라는 사실인데, 이 때문이라도 태형은 무조건적으로 여주의 부탁 아닌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그 미친 작자가 하루종일 제 귀에 코난 인트로를 무한 재생시켜줄 것이기에. 태형이 먼저 나서서 '그래, 그깟 거 하자. 해.' 라고 하지 않았다면 여주 식의 청각 고문은 이미 거행되었으리란 추측이다.
또박또박한 글씨로 채워진 신청서를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뒤따라온 태형이 창피한 듯 뒷목을 긁적였다. 반면 여주는, 너무나도 자신 있게, '동아리 개설이요!' 외치고야 말았다. 덕분에 교무실의 모든 시선이 그 곳에 집중되었고. 국사 담당이자 2학년 3반의 담임 선생 신분인 석진만이 중간에서 멋쩍게 하하 웃었다. 신청서가 에어컨 바람에 날려 팔랑거린다.
"어... 그래 여주야. 동아리 개설하려고?"
"네네. 애까지 두 명. 최소인원 맞죠?"
그러자 석진은 의아한 듯 뒤를 보며,
"...태형이도?"
"......"
김태형은 말이 없었다. 어쨌든 동의는 한 셈이다.
***
이런 목적도 의의도 없는 동아리 따위, 이름부터 바로 퇴짜맞을 줄 알았는데. 국사 김석진의 1순위 애제자가 장여주라는 것이 태형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걸림돌이 되었다. 평소 나뭇잎 떨어지는 거 보고도 실없이 웃는 성격이라 석진의 아재개그에도 (유일하게) 자주 반응해주곤 하는데, 그 쌤 입장에서는 또 그게 엄청난 감동이었나 보다.
여튼, 둘은 어찌저찌하여 벌써부터 동아리실을 얻었다. 비록 지금은 아무도 안 쓰는 먼지 쌓인 창고지만...
"야, 이리 와서 청소 좀 도와. 멀뚱히 서 있기만 하지 말고."
제게 휙하니 던져지는 빗자루를 얼결에 받았다. 태형이 미간을 구겼다. 열심히 청소하는 제 친구의 뒷모습을 불나게 째리는 건 덤이다.
"내가 왜."
"왜냐니? 너도 추리 3반 창설자니까. 토달지 말고 영예로운 마음으로 청소해라."
"그냥 더러운 채로 쓰지 그래? 오래된 탐정 사무실 느낌도 나고, 감성도 있고. 좋네."
"...뭐?"
"뭐."
문제는 그 한껏 비꼬는 말이 여주의 귀에 쏙 박혀버렸단 것이다. 병신같지만... 왠지 설득력 있어! 하고는 진짜 청소를 그만두려고 하길래 급기야 태형이 다급히 말리며 몸소 청소를 거들기 시작했다. 태형은 창문을 걸레로 뽀득뽀득 닦아내다 생각했다. 장여주 쟤, 제정신이 아니야. 그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된 그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
동아리실 자체에 끼인 먼지는 깔끔하게 닦였으나, 이번엔 파리가 날렸다.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그날 이후 줄곧 방문객이 없었다는 의미다.
여주는 교내 게시판에 멀쩡히 잘 붙어 있는 추리 3반 홍보 포스터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같이 가던 태형에게 묻는다. 왜 사람이 안 오지? 그 물음에 대해 태형은 누구보다 빠르고 명확하게 답을 내려줄 수 있었으나, 장여주는 의외로 삐지면 오래 가기에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문자들을 삼켜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여주는 애써 침묵하는 태형을 수상하게 추궁한다.
"설마... 너 애들한테 오지 말라고 그러냐?"
"...그러겠냐? 아니, 애초에 왜 안 오는지 생각을 해 봐."
"몰라. 포스터가 이상해서?"
태형은 고개를 돌려 오색빛깔로 찬란한 포스터의 자태를 관망한다. 그것도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아무튼. 여기 고등학교잖아, 초등학교 아니고. 추리 동아리 처음 들었을 때 웃기기나 하지 직접 갈 생각은 안 들어. 메리트가 없다고."
"...그래서 뭐. 나보고 어떡하라고."
"몰라, 네가 직접 발로 뛰어서 사람 구해오든지."
"......"
삼성이 처음부터 삼성이었겠어? 원래 처음은 다 구질구질하게 가는 거야- 따위의 개소리를 늘어놓고서 태형은 벙찐 여주를 지나쳐 갔다. 동아리 첫 청소를 개시했던 날처럼, 딱히 무슨 생각을 하고 뱉은 말은 아니었다.
***
그리고 얼마 뒤.
"음... 얘들아. 그게 그러니까..."
"......"

"...안녕?"
대망의 의뢰인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