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3반이 이대로 일년내내 파리 날리는 공실로 있다가 쓸쓸히 정리될 것이라 미리 확정지은 태형은 조금 놀랐다. 아니... 조금 많이. 오고 가는 사람이 창설 인원 말고는 없어 한창 간식 창고의 용도로 쓰이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을 열었더니, 누군가 동아리실에 앉아 있었단 말이다. 그것도 매우 익숙한 얼굴이. 태형이 석진을 멍하니 쳐다보다 말고 같이 입장하던 여주에게로 시선을 휙 틀었다.
"뭔데? 국사쌤이 왜 저기 있냐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
여주는 대꾸도 안 하고 태형을 스쳐갔다. 그녀와 평생지기 친구로 지내오면서 무시당하는 일이 일상다반사라 딱히 상처받지는 않았다. 그저 장여주가 어떻게 석진을 영입했는지가, 태형으로서는 의문일 뿐. 이곳 동아리실에는 중앙에 가로로 긴 테이블이 있는데, 여주는 빠르게 달려가 창문을 등지고 의뢰인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태형도 어쩔 수 없이 의자를 끌어다 귀퉁이에 앉는다.
"아직 못 찾으셨죠?"
"응... 아직. 내가 괜히 너희들 귀찮게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네."
"아니에요 괜찮-"
"괜찮아요 쌤. 어차피 여기 만들어진 후로 찾아오는 사람 우리밖에 없어요. 친구들은 이름 듣고 비웃기나 하던데요, 뭘. 추리 3반이래. 푸하하."
뒤에 붙은 해탈한 웃음이 포인트다. 여주는 잔뜩 짜증이 오른 낯으로 태형의 의자 다리를 콱 걷어찼고, 듣던 석진은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그랬구나...' 하고 답했다. 어쩐지 침울해진 상황을 수습하려 여주가 서둘러 말문을 돌렸다. 그래서, 지갑이 금요일까지는 있었다고요?

연화고 추리 3반
ep2. 돈보다 소중한 (1)
말 안 해도 어느 정도 뒷배경은 알고 있는 걸 보니, 일전에 석진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을 거라는 태형의 예상이 명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바이다. 순수한 우리 국사쌤을 꼬드겨 이 다 스러져가는 동아리실로 불러왔겠지... 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정작 여주에게 불씨를 지핀 장본인이라는 건 꿈에도 모를 듯하다.
어쨌거나, 석진은 아까 여주에게 채 말하지 못했던 사실까지도 모조리 읊기 시작했다. 사건 시각은 지난주 금요일 10시경. 오늘로부터 사흘 전. 그날 당직근무를 섰던 석진은 자신의 지갑을 학교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오후 때만 해도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지갑이 추후 귀가했을 때 사라진 정황이기에, 교내서 분실했으리란 석진의 짐작이 기정사실화 되는 것이었다.
일단 거기까지만 듣고서 여주가 물었다.
"오후면 몇 시 정도인 거죠?"
"7시... 쯤일걸. 그때 다들 슬슬 퇴근하시고, 난 정장 주머니에 있는 폰 꺼내서 시간 보려다가 그때 지갑 있는 것도 확인했어."
"아 7시에..."
그러자 잠자코 있던 태형도 흥미가 돋았는지 합세한다.
"그때 쌤만 남아 있으셨어요? 교무실에."
"그렇지? 다들 약속 있으셔서 시간 되는 나만 당직 섰거든."
여주가 뒤이어 판정하듯 말했다.
"그러면 혹시라도 도난은 아닌 거네요. 7시 지나서부터 교무실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맞아. 우리 학교에 그럴 분도 없으시고."
"학교가 아니면요?"
이건 태형이 제시한 의문점이었다. 분실 장소가 굳이 학교가 아니라, 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일 수도 있는 거고. 일단 대중교통 이용하려면 지갑을 꺼내야 하는 거 아니야? 골똘히 생각하던 여주는 날카로운 지적이라며 제법 추리 동아리 일원다운 면모를 보인 태형의 등판을 두들겼다. 어깨가 한껏 으쓱해지려던 찰나, 석진이 고개를 저었다.
"학교가 맞을 거야. 나, 집이 바로 이 앞이라 걸어가거든. 없어진 걸 집에 도착하고 알아서 혹시 가는 길목에 빠뜨렸을까 봐 몇 번이고 다시 훑어봤는데 지갑은 안 보이더라. 학교도 가보려 했는데... 교문이 닫혀 있어서 확인 못했어."
태형의 표정이 도로 심드렁해진다. 여주는 그에 개의치 않고 문답을 이어갔다.
"아... 그럼 역시 학교가 가장 유력하겠네요. 혹시 게시판에 공고를 붙인다던가, 학생들한테 물어보셨어요?"
"공고는 좀... 사적인 걸로 내걸기 그렇지 않을까? 오늘 아침에 들어간 반마다 물어보긴 했어."
"봤다는 사람은 아직 없죠?"
그 말에 옆엣놈이 한심하다는 양 여주를 톡 쏘았다.
"멍청아. 없으니까 오셨겠지."
"......"
"아, 아! 아 쌤! 얘 저 꼬집어요! 저 살 뜯긴다니까요!"

"얘들아 진정..."
다시금 불붙은 둘의 싸움에 마주앉은 석진만 어쩔 줄 몰라했고. 결국 흐지부지 마무리된 추리 3반의 첫 상담이었다.
***
2학년 3반 교실. 보건실에서 급하게 구해온 파스의 덕을 꽤 크게 봤다. 태형은 아직도 뻐근한 감이 남아 있는 팔뚝살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야. 엄살 부리지 마. 흉은 고사하고, 멍도 안 남았겠구만. 타박하면서 은근히 눈치를 살피고 있는 점은 모순 그 자체였다. 분위기를 풀 요량으로 장난스레 툭 쳐도 계속 째려만 보는 그에 당황했는지 여주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근데 이상하지 않아? 선생님이 그랬거든. 지갑에 큰돈은 없다고. 카드는 따로 가방에 보관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렇게 애써서 찾을 이유도 없지 않나 싶어서."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지갑이 비싸겠지."
"그럴 수도 있고. 근데 물어봐도 대답 안 해주시는 게, 안에 뭐 중요한 걸 넣어두셨나 봐."
"중요한 거라..."
"막, 첫사랑 사진 같은 거 아니야?"
넋놓고 창문을 바라보던 태형이 고새 망상을 꾸려 바보같이 헤실거리는 여주에게로 몸을 돌렸다. 정면으로 마주친 두 눈이 느리게 깜빡인다. 왜. 뭐 묻었어? 묻는 여주에, 말없이 이마에 딱밤을 딱.
"아!"
"쓸데없는 생각 말고 지갑이나 찾아. 처음 맡은 일인데 애가 간절함이 없어. 간절함이."
"너, 이 개..."
"근데 난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코난 전시즌 본 게 최고 아웃풋인 애한테 뭘 믿고 맡기겠냐, 안 그래?"
태형은 뒷일 생각 않고 찰지게 웃다가 머지않아 울게 되는 경험을 했다.
***
3교시는 국사였다. 헉 소리나는 용안을 보고서 공부 열의를 다잡았던 이들이 석진의 아재개그 폭격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둘씩 곯아떨어지며 전사했다. 시체 무더기 속 유일한 생존자인 여주만이 석진을 온몸으로 응원했다. 물론... 공부와는 별개로.
쉬는 시간 종이 친 후, 타이밍에 맞춰 귀신같이 잠에서 깨어난 김태형은 석진쌤이 입담만 좀 조절하면 지금보다 인기가 배로 많았을 것이라 말하며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여주는 그런 태형을 잡아 끌고는 교실 밖으로 나섰다.
멈춰 선 곳은 다름 아닌 석진의 앞. 여주가 물었다.
"지갑 찾으셨어요?"
"아, 아니. 아직 못 찾았어. 이렇게 찾아도 안 보이는 걸 보니... 너희 말대로 학교 밖에서 잃어버린 것 같다."
"그쵸? 내가 괜히 한 말이 아니라니까요."
이때다 싶어 신나게 대꾸하는 태형을 보며 석진이 머쓱하게 뒷목을 매만졌다.
"미안하다 얘들아, 쓸데없이 고생만 시켜서. 나중에 내가 날 잡고 찾아볼 테니까 이제 이 일은 신경 안 써도-"
"선생님."
"어, 응?"
산통을 깨는 여주의 부름에 석진이 눈을 크게 떴다. 아까부터 영 다른 곳을 집요하게 향하고 있던 시선이, 이내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손으로는 석진의 다리를 가리키고선.
"다치셨어요?"
"갑자기 뭔 소리야 얘는."
"아니, 아까 수업 때부터 봤는데 다리를 조금 절뚝이시는 것 같길래."
눈썰미가 이상한 구석에서 발동되는 순간이다. 태형은 이 상황에 맞지 않게 다리를 다쳤냐느니 뭐니 딴소리를 꺼낸 여주를 괴상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멋쩍어서 저러는 거야? 뭐가 됐든 간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별안간, 석진이 '아' 하며 짤막한 감탄사를 입으로 냈다. 무언가 떠오른 모양새였다.

"맞아. 며칠 전에 학교에서 넘어졌었어. 발목을 약하게 접질렀는데 주말내내 얼음찜질 해도 잘 안 낫더라."
"그래요? 정확히 언제요?"
"정확히... 음... 금요일 퇴근할 때? 그러니까, 지갑 잃어버린 날. 이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서 안 말했던 건데..."
눈을 반짝 빛낸 여주와 반대로 태형은 별 관심없다는 얼굴로 한 발짝 물러났다. 둘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사사로운 근황 얘기나 하고 있는지 고민했으나, 곧 고민하기조차 포기했다. 피자빵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끝나기 전에 후딱 매점 갔다 와야지- 따위의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려던 계획이, 직후 여주에게 멱살이 잡힌 고로 처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장여주, 나 매점. 매점 좀 가겠다고."
"일단 알겠어요. 물어볼 게 더 생기면 교무실로 찾아갈 거니까, 시간 꼭 비워두세요!"
"어... 그래. 얼른 들어가 봐 얘들아."
"야 나 진짜 매점-"
"네, 선생님도요."
"......"
가는 석진을 완전히 배웅할 때까지 태형을 묶어두는 데 성공한 여주는 그제서야 멱을 틀어쥔 손을 풀었다. 그러나, 때마침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둘의 귀에 똑똑히 박혔고. 태형은 곧 울 것 같은 낯으로 물었다. 너진짜나한테무슨원한있냐? ...미안. 이번엔 여주도 본인이 조금 잘못했다는 자각이 있는지 나중에 매점을 쏘겠다는 약속으로 상황을 일단락시켰다.
"가서 피자빵 열 개 집을 거다. 계산 안 하기만 해."
"알겠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방금 못 들었어?"
"뭘 들어?"
"선생님 넘어지셨대잖아."
"그게 뭐. 넘어진 게 뭐. 너 저번에 나 발 헛디딘 걸로 하루종일 놀렸으면서 저 쌤 한 번 넘어진 건 그렇게 걱정되냐? 와, 진짜 쿠크다스 같은 우정..."
안 말리면 2절을 넘어 4절까지 복창할 기세이기에 여주는 급히 태형의 입을 틀어막았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 등신아. 그에 겉으론 틱틱대면서도 얌전히 교실로 걸어 들어가는 태형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가당착의 표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