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고 추리 3반

ep3. 돈보다 소중한 (2)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재촉을 표했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짝꿍은 여전히 노트에 코를 박고 무언가 써내려가기 분주하다. 야. 사람 불러놓고 뭐 해? 들어가서 말하자며. 이어진 교시는 공교롭게도 자습시간. 떠들기 바쁜 무리들 사이에서 혼자만 굳건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여주가, 태형은 탐탁지 않았다.



"잠깐만 있어 봐. 퇴근... 후문쪽... 10시...니까..."

"......"



괜히 또 토라질까 봐 말은 안 했지만, 이럴 때마다 괴짜 같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나이에 안 맞게 유치한 탐정 놀이나 좋아하지, 말은 많은데 말재간이 없어서 친구도 저 말고는 잘 없지. 게다가 평소엔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는데 어느 날 보면 맥락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진지해져선. 단순히 "자기만의 세계가 강하다" 라는 말로는 퉁쳐지지가 않을 이 유별함이, 십몇 년간 꾸준히 지켜와본 바로는 가히 연구대상감이라고 태형은 자부했다. 속으로 제 험담하는 줄도 모르고 여주가 불쑥 태형에게 노트를 들이밀었다.



"읽어."

"? 뭔데 이게."

"일단 읽고 나서 말해."



태형이 겸연쩍은 눈으로 그녀의 손에 들린 노트를 훑었다. 너는... 정말 한결같은 악필이다.



"...야. 진지하게 안 볼래? 추리 3반 부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란 말이야."

"내가 뭐하러?"

"팔 떨어진다, 얼른!"



그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손바닥만한 노트를 건네받는다. 태형은 이러진 않으려 했지만, 다른 애들은 벌써 시험이고 수행이고 걱정하는 마당에 왜 우리만 이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옆에서 기대만발의 얼굴로 저를 지켜보고 있는 짝꿍 탓에 고민은 금방 먹혀버렸지만.


노트의 적힌 내용은, 나름 '추리'라는 엄청난 결과물이었다. 추리보단 추측에 가깝지만 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장여주의 주장은 그랬다. 석진이 넘어진 날은 하필 금요일, 사건 발생 당일이었고. 본인이 방금 날씨 어플로 확인해본 바로는 그날 오후 2시와 3시 간격에 짧은 봄비가 내렸다 한다. 봄에 오는 비야 워낙 가늘어서 석진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다 말라 있는 운동장을 보고 비가 왔다는 사실조차 몰랐겠지만 학교 내부 사정은 다르다.



"비가 왔으면 밖은 바람 때문에 빨리 말랐다고 쳐."

"어."

"그럼 안은?"

"덜 말랐겠지."

"그래, 내 말이."



태형은 손가락으로 얼굴 선을 문지르다 물었다. 그러니까 넌 지금... 비 때문에 쌤이 미끄러졌단 소리를 하고 싶은 거고? 그러자 여주는 태어나서 처음 걸음하는 아기를 보는 양 아주 장한 표정으로 손뼉을 짝짝 쳐댔다. 받는 그로서는 은근히 기분 나빴다는 건 (안) 비밀.



"아까 뒷문 계단 앞에서 다치셨다 들었는데, 우리 학교는 쪽문 같은 것도 없고 출입구가 유일하게 안팎으로 사람 드나드는 데라 물기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 아마 퇴근하실 때 넘어지면서 지갑도 잃어버리셨을 거야. 밤이니까 찾을 수도 없었겠고."

"그냥 국사쌤이 어디 놓고 깜빡한 거 아냐?"



...그 선생님 성격에? 언젠가 근 3년간 지각 한 번은 물론, 결석 한 번 없었다는 석진의 출근신화를 들은 적이 있던 여주는 더욱이 황당하게 되물었다. 이건 태형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 뭐... 유달리 꼼꼼하긴 하시지."

"그치만 네 말대로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확정은 짓지 말고 일단 살펴나 보잔 소리야."



하고는 답지않게 진지한 낯으로 말을 맺었다. 그 안에는 그 또한 노동, 아니 추리 3반 부원으로서의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으나 태형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노트를 도로 반납했다.



"이따 점심시간에 같이 가는 거다?"

"몰라."



그랬다. 장여주가 아무리 귀찮은 부탁을 하든 간에, 그 대상이 김태형으로 한해 있다면, 적어도 거절당하는 일은 역사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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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고 추리 3반

ep3. 돈보다 소중한 (2)










복도가 밀물 차오르듯 인파로 빽빽하다가, 불과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먼지 날리게 휑해진다. 교실문에 기대어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태형은 원래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점심시간 줄 선두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 안 오냐? 무슨 책상 정리를 하루종일 해?"

"어, 어어 이것만. 나 지우개만 넣고."



태형은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거니는 와중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여주를 콕콕 쏘아댔다. 내 말은, 오늘 치즈 돈까스 나온다 했는데 너 때문에 못 받고 돈까스 소스에 맨밥만 쳐먹으면 오늘부로 동아리고 뭐고 확 나가버릴 거라는 얘기야. 알았냐? 응? 알았냐고.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로 잔소리 폭격을 가하는데 불행히도 청자는 복도 창문이나 뚫어지게 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이딴 게 친구...? 태형은 제 말 따위 씨알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점심 먹고, 뒷문 계단 한 번 확인해 보고, 교무실도 들르자. 나 물어볼 거 생겼어."

"내 말은 너한테 씹히라고 있는 거지?"

"응? 왜? 뭔 말 했었어?"

"...말을 말자."



진심으로 모르는 눈치의 장여주와, 질리다 못해 얘가 뭐 그렇지 하며 이해하는 경지까지 이르른 김태형. 둘의 대화의 흐름이 끊겨버린 건 바로 뒤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이와 여주의 어깨가 우연찮게 스쳤기에, 곧이어 '탁' 하고 무언가 바닥에 부닥치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앞서가던 태형이 소란에 뒤를 돌아보고는 소리 없이 질겁했다.


이 학교, 그러니까 연화고 학생은 여간해선 다 꿰고 있는 본인이 익히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엇, 죄송해요."

"......"

"제가 주워드릴게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허리를 굽힌 여주가 바닥에 놓인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서 잠시간 멈칫했다. 그 직후 뻗은 손 무안하게시리 휙 낚아채가는 손짓. 물건을 바지 주머니에 도로 넣은 이가 도리어 저를 더 묘하게 바라봤다. 야, 야야...! 빨리 가자. 머쓱할 새도 없이 뒤에서 태형이 다급히 재촉해왔고, 하여 여주로서는 고개만 슬쩍 숙이고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넌 오늘 죽을 고비를 넘겼어."

"뭐라는 거야."



다행히 도착까지 많이 늦진 않아 식판에 돈까스 한 개씩 얹고서 한 얘기다. 포크로 치즈 돈까스를 쿡 찌르던 여주는 그게 무슨 뻘소리냐 했고 태형은 굴하지 않고 진지한 투로 말을 연결지었다. 요약하자면, 여주와 아까 접촉사고를 일으킨 건 전교에서 악명이 자자한 3학년 복학생이며, 성격이 워낙 더럽고 괴팍해 한 번 밉보였다간 지옥을 보게 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이번에야 운이 좋아서 아무말 없이 넘어간 거지 두 번의 기회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러자 여주 왈,



"머리 좀 밝다고 너무 터무니 없는 말 지어내는 거 아니야? 나도 나중에 저 정도는 염색하려 했어."

"아니 굳이 머리색 때문이 아니라... 근데 뭐?"

"다크 블론드로. 어때? 장미가 딱 그 색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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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탐정 코난 中 장미



말이 주제에서 벗어나고 말고의 여부와 상관없이 태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주를 향해 삿대질했다.



"너, 너 염색 같은 거 하기만 해! 이모한테 다 이른다?"

"...왜 이래 갑자기? 우리 엄마도 다 허락했거든? 대학생 되면 하라고."

"대학을 가야 대학생이 되지."

"죽는 수가 있다."

"...아무튼. 머리색이랑은 상관없이 하는 얘기야. 한두 명이 하는 소리면 헛소문이라 쳐.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그렇게 말하는 거면 그 선배한테 문제가 있다는 접근이 더 자연스럽지 않냐?"



나름 일리가 있는 논리였으나 다 듣고 나서도 여주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양 굴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렇다 치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왜 참치캔을 들고 다니는데?"



언뜻 본 네모난 것이 담배곽이라 태반 확신을 가지고 있던 태형이었다. 잠깐, ...뭔 캔? 얼탱이가 홀랑 빠진 친구의 면전에 대고 여주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태연하게 답한다. 아니 글쎄, 네가 그렇게 무섭다고 광고하던 선배가 떨어뜨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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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고양이용 참치캔이었다고.




***




먹는 속도는 얼추 비슷하게 빠른 터라 둘의 점심시간은 일찍이 종료되었다. 할일이 많았기에 행동을 급히 한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다만, 여주의 장황한 예상과 달리 계단을 포함한 뒷문 통로 부근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 계획의 유일한 차질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가 맞을 텐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지쳐 계단에 눌러앉은 태형은 누가 벌써 찾아갔거나, 애시당초 여기가 아닌 장소에서 잃어버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아주 장담했다. 아니면 국사쌤이 우리한테 구라치고 있거나.



"얘가 되는 대로 막 뱉네. 선생님이 뭐하러 거짓말을 쳐?"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지."

"절대 없어."

"그 쌤 너무 믿는 거 아니냐?"

"그야, 국사 선생님은 사람이 항상 진실되니까. 김태형 너랑은 다르게."



뒷말에 따른 반발이 거셌다. 계단에서 다시 내려온 태형이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따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흡사 논쟁을 벌이는 어린 남동생과 철든 누나였으니.



"뭐가 다른데? 나는 진실되지 않다는 소리?"

"잘 아네."

"야, 너 아직 날 좀 모르나 본데-"

"계속 찾아봐도 먼지 말고는 뭐가 안 나오네. 우선 교무실로 가서 담임 선생님한테 단서를 더 얻어보는 쪽이 낫겠어.

"...그래. 매번 꾸준히 무시해줘서 고맙다."

"천만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막상 제게 미소짓는 말간 얼굴을 보니 태형은 자연히 할말을 잊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다시 '넌 내가 물로 보이지?' 하며 서두를 여는 김태형과 딴소리 하기에 여념이 없는 장여주. 투닥거리면서 가는 이들의 등 뒤로 바깥 바람이 휑하게 불어왔다.




***




여주는 약간 후회했다. 몇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쥐새끼처럼 숨어 남의 연애사를 훔쳐볼 생각은, 단연코 1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옆에 동행한 태형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데? ...나도 모르겠으니까 그냥 조용히 해. 벽 뒷편에 몸을 종잇장마냥 구겨넣은 두 추리부원들은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타파해나가야 할지 고뇌했다.


석진이 연화고 선생님들 중 가장 인기가 많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하다. 잘생겼지, 성격 좋지, 거기다 명문대 졸업한 20대 고등학교 선생이라는 스펙까지. 그래서인지 스승과 제자 간의 부도덕한 사랑을 꿈꾸는 철없는 소녀들이 간혹, 아니 아주 많았고. 복도를 지나다니다 그에게 절절한 사랑고백을 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 것도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게 된 수준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거절하시더라도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주셨으면 했어요."

"아니, 전 그게 아니라-"

"죄송해요 석진쌤. 이만 가볼게요."



지금의 경우도 여느 날의 것과 다름이 없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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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쌤..."



최연수.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미필적 관객들은 기겁을 금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