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카페인

3화. 커피보다 쓴 내 자존심

그날 밤, 김여주는 ‘유리병 쨍그랑’ 사건을 떠올리며 이불을 찼다.

 


“진짜… 사장님한테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어.”
고작 알바 첫날인데 커피 날리고 손님한테 민폐 끼치고,
뭐야… 이러다 짤리는 거 아냐?

 

 

…근데,
그 손 잡아줬던 그 순간은 뭐였지?

 

 

여주는 베개에 얼굴을 박으며 소리쳤다.
“아 제발 김여주!!! 정신 차려!!
쟤는 사람 아니고 사장님이고… 돌덩이야. 진짜.”

 

 

다음 날 아침.
여주는 평소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

 


“오늘은 진짜, 무조건 잘할 거야.”
그녀는 준비를 끝내고 바를 청소하고,
뭐라도 배우고 싶어 바닥도 닦고, 빈 테이블도 닦았다.

 

 

9시 59분, 정확히 등장하는 사장 한태산.

“일찍 왔네요.”

 


“네. 오늘은 실수 안 하려고요.”

 


“그 마음은 좋아요. 근데요…”

 

 

 


“네?”

 


“걸레에 먼지 남아있어요. 그거 쓰면 더러워져요.”

 

 

‘이 인간은 말끝마다 쓰레기처럼 나를 짓밟는 재능이 있나?’

 


김여주는 순간 숨을 크게 들이쉬고,
손에 든 걸레를 꼭 쥐었다.

 

 

“사장님, 저 진짜 열심히 하려는 거예요.”

 


“알아요.”

 


“그런데요, 이렇게 말만 하면 저 진짜 무너져요.”

 


태산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의외로 무거워서, 여주는 슬쩍 눈치를 봤다.

 

 

“…죄송해요. 제가 말투가 좀… 그러죠.”

 

 


“오?”

 

 

 


“근데 진짜로, 커피는 쉽게 못 가르쳐요. 실수 한 번에 손님 다 떨어질 수도 있어서.”

 


“그건 알죠. 저도 사람이거든요.”

 


“…?”

 


“로봇도 아닌데 말이에요. 감정 있어요, 나도.”

 

 

태산은 잠시 여주를 바라보더니,
말투를 조금 낮췄다.

 

 

“근데, 어제 일은 잘 마무리됐어요. 손님한테도 사과했고.”

 


“저, 짤릴 줄 알았어요…”

 


“진짜 그럴까 봐 어제 밤에 커피 서른 잔 내렸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사장님도 감정 있네.”

 

 

 


“있죠. 티 안 나는 거지.”

 


“그럼 앞으로는 티 좀 내줘요. 저 무서워요…”

 


“무서운 건 저 아닌데요. 커피가 무섭죠.”

 


“저는 커피보다 사장님이 더 무섭습니다.”

 


“그건… 미안하네요.”

 

 

이후, 바에서 커피 추출법을 배우기 시작한 여주.

 

 

“자, 이게 드립포트예요. 물을 돌려서 천천히 내려야 해요.”

 


“오… 이거 진짜, 약간 명상 같아요.”

 


“그건 좋아요. 마음 비우는 데는 좋거든요.”

 


“사장님은… 마음에 뭐 들었어요?”

 


“지금은 물 들었어요.”

 

 

 


“…진짜 감성 제로.”

 


“그렇게 보이지만, 감성은 잘 섞어서 넣어야 맛이 납니다.”

 


“…어? 지금 좀 멋있었는데?”

 


“그럼 실수네요.”

 

 

마감 시간 즈음.
여주는 하루 종일 커피 내리느라 팔에 힘이 풀려 있었다.

 


“사장님, 저 팔에 근육 생긴 거 같아요.”

 


“커피 팔?”

 


“응. 그리고 자존심 팔.”

 

 

 


“그건 어제 쏟았잖아요.”

 


“…맞네. 아오…”

 

 

태산은 무표정하게 카운터를 정리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근데 오늘은 잘했어요.”

 

 

 


“정말요?”

 


“응. 커피도 안 깨고, 손님한테도 안 혼났고.”

 


“칭찬 맞아요?”

 


“그럼요. 저의 최대한입니다.”

 

 

여주는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하… 진짜 무서운 알바다.
근데, 이 맛에 또 오고 싶다. 뭐야 나 왜 이래.”

 

 

 

✅ 에필로그

 

태산은 퇴근 후, 카페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커피 향이 남아 있고,
여주가 어설프게 접은 행주 하나가 싱크대 위에 있었다.

 

그는 그걸 다시 펴서 개면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하지.”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는 하루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