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 12시.
<온도>에 손님이 슬슬 몰리기 시작하는 시간.
김여주는 오늘도 똘망똘망하게 출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방금 11시 넘었는데요.”
“네, 점심입니다 사장님!”
한태산은 커피 그라인더를 닦으며 한숨처럼 말했다.
“오늘은 진짜 조심하세요. 일요일엔… 좀 특별한 분들이 와요.”
“특별하다는 게… 무슨 뜻이죠?”
“소위 말하는… 고객의 신. 자기가 신이라고 믿는 쪽.”
김여주는 약간 웃음이 났다.
“에이~ 아무리 진상이 와도, 제가 한번 마음을 사로잡아 보겠습니다!”
태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작게 고개를 저었을 뿐.
그리고 낮 12시 43분.
예언이 실현됐다.
“이게… 커피예요?”
김여주는 자리로 커피를 가져다주고 3초 만에 공격을 받았다.
고객은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샤넬백에 진한 립스틱, 얼굴에는 ‘나는 프랜차이즈만 마셔요’ 라는 표정이 떠 있었다.
“네, 아메리카노 맞고요, 원두는—”
“쓴데요?”
“…네?”
“쓴 맛이 너무 강하잖아요? 이건 커피가 아니라 탄 커피예요.”
여주는 머릿속에 ‘죄송합니다’ 세 글자를 꺼내려다 멈췄다.
태산이 말했던 게 떠올랐다.
“무조건 ‘네 죄송합니다’만 하지 마요. 이유 설명 못하면, 그냥 맞는 거 돼요.”
“…혹시 산미가 있는 걸 더 선호하시나요?”
고객은 고개를 휙 젓는다.
“그런 거 몰라요. 그냥 맛이 별로라는 거예요. 이건 못 마셔요. 다른 걸로 줘요.”
…여주의 CPU에 과부하가 걸리려는 찰나,
태산이 조용히 다가왔다.
“손님.”
그 낮고 담담한 목소리. 여주는 갑자기 안심됐다.
“커피가 입맛에 안 맞으셨군요.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맞아요. 그쪽 알바생도 무슨 말을 못 하더만, 아직 경험 없죠?”
“예. 알바 시작한 지 며칠 안 됐습니다.”
“그럼 왜 이런 애를 쓰세요?”
태산은 잠시 정적을 두고 말했다.
“…제가 괜찮다고 판단해서요.”
“그래도 손님 앞에서는—”
“지금 다시 내려드릴게요. 이번엔 산미 낮은 블렌딩으로요.
드셔보시고 판단해 주세요.”
여주는 바 뒤로 돌아온 태산을 바라보며 속으로 박수를 쳤다.
‘와… 저 말투. 싸우진 않는데 무조건 이김.
사장님… 그냥 무서운 줄 알았는데, 약간 멋있잖아…?’
태산은 무표정으로 컵을 꺼내며 말했다.
“고객 응대는 감정으로 하면 피곤해져요.”
“저 지금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말 하시면 좀 그렇잖아요.”
“왜요?”
“그냥 가끔은 멋있는 거 몰라도 돼요.”
“전 항상 제가 멋있다고 생각 안 해요.”
“…아, 뭐래 진짜…”
—
새 커피를 들고 간 여주.
고객은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건 좀 괜찮네.”
“…다행이네요. 오늘 날씨가 좋아서, 조금 더 가볍게 추출했어요.”
“어머, 설명은 잘하네? 전에 쓴 건 뭐였는데?”
“그건… 제가 좀 덜 익었나 봅니다. 커피도 저도요.”
고객은 피식 웃었다.
“그래요. 노력하긴 하네.”
—
그날 마감 즈음.
여주는 테이블 정리를 하며 물었다.
“사장님. 혹시 제가 오늘 잘했어요?”
“글쎄요. 커피는 안 쏟았고, 울지도 않았고.”
“기준 왜 이래요 진짜.”
“…말은 잘했어요.”
“진짜요?”
“응. 그 문장.
‘커피도 저도 덜 익었나 봅니다.’
괜찮았어요.”
여주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거 원래 드립인데요?”
“…말장난은 그만해요.”
“근데 저… 오늘 진짜 ‘고객 응대’ 처음으로 해봤거든요.
와… 신이라고요? 그냥 진상이에요.”
“신도 무섭고, 진상도 무섭고… 근데 더 무서운 건 매출이에요.”
“흠. 맞는 말. 커피보다 쓰다.”
태산은 조용히 웃었다. 진짜, 아주 작게.
여주는 그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웃었어요?”
“안 웃었어요.”
“웃었어요! 봤어요! 사장님, 웃을 줄 아시네?”
“잘못 본 거예요.”
“이런 순간도 기록해야지.”
여주는 폰 메모장을 켰다.
[사장님 웃음 목격일: 10월 15일]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