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허락은 받았어?”
그 말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정국은 차분했고, 목소리도 낮았는데
김여주는 하루 종일 그 대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괜히 카메라를 괜히 챙긴 기분이었다.
괜히 찍었던 것 같고,
괜히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말하고 찍으라고.”
사실 그건 단순한 예의일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감정처럼 느껴졌다.
조금은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경계.
아니면, 의외로 반대일지도 모른다.
—
여주는 사진부 동방에서 혼자 인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붉은 조명 아래, 조용히 물 위에 떠오르는 형상들.
펜싱복을 입고 마스크를 벗는 장면,
빛을 등지고 선 뒷모습,
그리고 — 눈이 정확히 렌즈를 바라보고 있던 그 장면.
셔터를 누를 때는 그냥 ‘구도’가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건 감정이었다.
의식하게 되는 피사체.
그 애는, 단순히 프레임 속 장면이 아니었다.
“…이상하네.”
여주는 사진 위에 손가락을 얹어봤다.
마치 닿을 수 있을 것처럼.
그 순간,
사진 속 그의 눈빛이 자꾸만 여주의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
다음 날, 체육 시간.
학년 체육 수업이라 본관과 체육관 사이를 다들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여주는 체육복을 입은 채, 조용히 체육관 근처를 지나다가
열려 있는 문틈 너머로 펜싱부의 훈련 장면을 마주쳤다.
아,
또 있다.
헬멧을 벗고 있는 정국.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고,
팔에는 보호구, 손에는 검.
“전정국! 팔 낮춰! 무릎 같이 움직이고!”
코치의 목소리가 날카로웠지만, 정국은 묵묵히 다시 자세를 잡았다.
움직임은 부드러웠고, 무게감이 있었으며
무언가를 향해 정확히 계산된 루트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 순간, 여주는 완전히 시선을 뺏겼다.
사진을 찍으러 온 것도 아니었고
렌즈도 들지 않았는데
정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냥 시선이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검을 쥐고
몇 걸음 앞으로 이동하더니, 헬멧을 다시 벗었다.
그리고, 아주 우연하게 — 아니, 너무 자연스럽게
김여주 쪽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숨이 멎을 듯한 1초.
여주는 본능처럼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냈다.
정국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 아무 말도 없었지만,
무언가가 왔다 갔다 했다는 건 확실했다.
여주는 먼저 돌아섰다.
체육관 문을 조용히 닫고 복도로 나왔다.
몸 안에 열이 오르는 것 같은 기분.
운동도 안 했는데, 가슴이 이상하게 뛰었다.
“…또 봤네.”
이상하리만큼 자주 마주친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좋고,
운명이라고 하기엔 서로 아무 말도 안 한다.
방과 후. 사진부 동방.
“김여주.”
사진부 부장이 여주를 불렀다.
“다음 주에 축제 포스터 촬영 들어가는 거 알지?
올해는 체육예술 콜라보로 가기로 했대. 메인 모델 펜싱부 쪽이래.”
“…누군데요.”
“전정국. 2학년 펜싱부 에이스.”
여주는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이름은 처음 들은 건데
사실상 알고 있었던 느낌.
그 애는
렌즈를 들기 전부터 이미 구도 속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감정을 자극하고, 시선을 이끌고, 프레임을 흔드는 사람.
그 애는 항상 프레임 바깥에서 먼저 움직였다.
—
그날 밤,
여주는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내 간단히 적었다.
오늘도 셔터는 눌리지 않았는데,
사진 한 장 찍은 기분이었다.
그 애는 프레임 밖에서도
나를 흔들었다.
—
촬영 당일.
정국이 여주 앞에 선다.
“이번엔 말 안 해도 돼. 마음대로 찍어.”
여주는 렌즈를 들었다.
그의 눈이 또다시 정확히 — 여주의 시선과 겹쳤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
여주는 알았다.
이번에는 ‘순간’이 아니라,
그 애 자체를 찍게 될 것 같다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