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민규는 식탁에 앉아 있었고,
나는 평소처럼 반쯤 멍한 상태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먹어. 식기 전에."
"응."
국물 한 숟갈 뜨다가,
슬쩍 그 애를 봤다.
머리는 여전히 헝클어져 있고,
말투는 똑같이 무심한데 뭔가 달라졌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내가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애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학교로 가는 길.
처음으로,
우리가 나란히 걷고 있다는 게 신경 쓰였다.
누군가 쳐다봤고,
누군가는 힐끔거리다가 수군거렸다.
근데 민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시선 신경 쓰지 마."
"너무 티나?"
"응.
근데, 괜찮아.
우린 잘 지내고 있으니까."
나는 그 말에
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상하게 목이 뜨거워졌다.
쉬는 시간.
내가 창가에 앉아 있는데
민규가 내 옆으로 와서 툭, 내 팔을 건드렸다.
"야. 오늘 끝나고 뭐해?"
"집 가지. 왜?"
"영화 보자."
"…너랑?"
"그럼 누구랑."
"갑자기 왜?"
"몰라.
이제, 너랑 하고 싶은 게 많아졌어."
그 말이 생각보다 너무 직진이라
나는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만 끄덕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 민규가 갑자기 멈췄다.
"너 아직, 나 불안해?"
"…아니.
근데 너는,
아직 나한테 조심하는 것 같아."
그는 조용히 숨을 내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나를 봤다.
"맞아. 나는 아직 네 옆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왜?"
"너는… 너무 조용하고 착해서.
나는 그런 사람이랑 가까워지는 게 좀 무서워."
"근데, 나는 너니까 편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가 멈춰섰다.
"…진짜?"
"응.
너는 나 혼자라고 생각 안 들게 해줬어."
잠시 후, 그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이건 해도 되냐?”
조심스럽게.
정말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놀라지도, 설레지도 않았고.
그냥 마음이 안정됐다.
그가 말했다.
"내가 네 옆에 있는 동안은 절대 혼자 안 느끼게 해줄게."
"…이젠, 좋아해도 괜찮아?"
그가 웃었다.
진짜, 천천히.
"나도. 이제 너 좋아해도 괜찮다고 느껴."
그날 밤,
우리는 같은 소파에 앉아
같은 영화의 자막을 보고 있었고,
어디까지 봤는지 몰랐고,
서로의 손만 붙잡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건 확실한 대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