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내 시선은 더 자주 민규를 향하게 됐다.
학교에서,
식탁에서,
복도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그 애의 옆모습만 봐도
자꾸 생각나니까.
그 애가 말했던 것들.
"너한텐 그럴 생각 없어."
"네가 몰랐으면 했어."
그리고…
"내가 조용한 걸 네가 무너뜨리는 걸 좋아하고 있다는 거."
도대체, 그 말은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부터가 진심인 건지.
그날 저녁,
거실에 민규가 혼자 있었다.
이어폰 한쪽만 낀 채, TV는 켜놨는데 안 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심심해?"
그가 고개를 돌렸다.
"아닌데. 왜."
"그냥… 나도 심심해서."
그는 말없이 옆자리를 탁탁 쳤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같은 공간에 같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요즘 좀… 이상한 생각 많이 해."
"예를 들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줬을까.
그거 있잖아. '너한텐 그런 생각 없어' 그거."
민규는 가만히 내 옆을 봤다.
눈빛이 어두운 것도, 밝은 것도 아니었다.
"싫었어?"
"아니.
근데… 네가 그걸 '굳이' 말할 이유가 뭐였을까 싶어서."
그는 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는 계속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잖아."
"응. 지금도 궁금해."
"그래서 말한 거야.
너한텐 내가 그냥,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해서."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묘하게 조여왔고,
말을 고르다가 고르다가 결국 나온 건 이거였다.
"너, 지금 나 신경 쓰고 있지."
그가 눈을 피했다.
가장 확실한 대답이었다.
"…나도 그래."
내 말에, 민규가 나를 다시 봤다.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무너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 안에 약간의 망설임, 당황, 그리고…
뭔가 부드러워지는 게 있었다.
"…신경 쓰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왜?"
"같이 사니까.
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헷갈리게 만들기 싫어서."
"그럼, 지금 나 헷갈리고 있는 거야?"
그는 작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가 봐."
그 순간 소파에 앉은 나와 그의 팔이 살짝,
정말 살짝 닿았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피하지 않았다.
같은 공간,
같은 소파,
같은 조용한 시간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확실히, 뭔가 변했다.
닿은 건, 팔이었는데 흔들린 건 내 마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