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이상하다.
소문 하나면, 사람 하나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 그 중심에 있는 이름은
김. 민. 규.
"그 새끼, 예전에도 누구 병원 보냈잖아."
쉬는 시간,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쟤 무서워서 다들 말도 못 거는 거 몰라?
말 안 해서 그렇지, 걔한테 맞은 애 한둘 아님."
"근데 웃기지 않아? 그런 애가 가정부 딸 감싸주고 있어."
나는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모르는 척, 못 들은 척 하려고 했지만…
그 말들이 가슴 안쪽을 계속 건드렸다.
민규가 그랬다고?
병원? 폭력?
그 애가?
그 애는 무표정하고, 말 없고, 좀 삐딱하고, 가끔 선 넘는 말도 하지만—
나는 그런 애한테… 밥을 받았고,
식탁에서 마주 앉았고,
조용히 걱정도 들었고,
“네가 안 괜찮아 보여서”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 애가 사람을 때렸다고?
진짜로?
그날 종례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민규는 벌써 가방을 챙기고 나가버렸고,
교실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얘길 반복하고 있었다.
"쟤 이번에도 또 걔한테 뭐 해줄 걸?"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눈에 띄는 타입도 아닌데."
"민규가 원래 그런 거에 꽂히면 걍 돌진하는 스타일이래.
예전에도 그랬다며. 친구 하나 감싸다가 패싸움 난 거."
그날 처음으로,
나는 민규를 ‘무서운 사람’으로 상상해봤다.
근데…
생각이 안 됐다.
기억 속의 민규는,
거실에서 졸린 눈으로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고,
식탁에서 나한테 젓가락 밀어주던 사람이었고,
소파에서 이어폰 한쪽만 꽂은 채
조용히 TV 보던 애였다.
그 얼굴을, 어떻게
‘폭력적’이라는 단어와 겹쳐놓을 수 있지?
나는 아직, 그게 잘 안 됐다.
집에 돌아온 날.
민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방 안에 있었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나는 거실에서 숙제를 하면서 자꾸 그 문틈을 봤다.
아무 말 없이,
아무 행동 없이.
근데, 문득 그가 말했다.
"왜 자꾸 쳐다봐."
나는 깜짝 놀라서 펜을 떨어뜨렸다.
"…아, 미안. 아니야."
그가 나를 본다.
"무슨 일 있어?"
"그냥…"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
근데 이상하게, 그 애는
내 말 안 해도 뭔가 아는 눈빛이었다.
"소문 같은 거 듣고 헷갈리는 거면, 믿고 싶은 걸 믿어."
"…그럼, 다 거짓말이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아니다"도 아니고, "맞다"도 아니었고.
대신, 조용히 말했다.
"난 내가 뭘 했든, 너한텐 그럴 생각 없어."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밤.
불 꺼진 방.
이불 속에서 눈을 감아도,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너한텐 그럴 생각 없어.”
그게… 나를 안심시키는 말일까?
아니면 나만 특별하다는 착각을 만들어내는 말일까?
나는 모른다.
근데, 그 애를 더 알고 싶어졌다.
진짜로.
_ [5화] 이상한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