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은 죄가 없다니까?
3화
달빛이 일렁이는 밤, 정원 담장 위에 그림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존재,
리오였다.
리오는 자신의 손끝을 툭- 튕겼다.
그러자 지안이 있는 저택 정원의 마력 장벽이 일그러졌다.
“…역시나. 이 세계는 너무 둔해. 시시하단 말이지....”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리오는 저승의 감시자 - 이승과 저승, 전생과 현생을 감시하는 역할로 존재했다.
리오는 손을 펼쳐 반투명한 결정체 하나를 소환해냈다.
속에는 수많은 장면들이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한 장면은 지안이 여기 전생에서 적응해나가는 모습이었다.
"릴리... 혹시 나 화장실 어딘지 알려줄 수 있어...? 하핳 내가 ㄱ..기억이 잘 안 나네..."
"아가씨... 그것도 기억 안 나시는 거에요?! 제가 당장 공작님께 말씀드려서 의원ㅇ...웁!!!"
"아...아니야!!! 생각 생각났어 !! 그러니까 ㅇ.. 안 불러도 돼... 고마워!! ^^"
결국 화장실 하나 가지 못하는 지안의 모습이었다.
"바보야? 그깟 공작이 뭐라고... 전생에서는 공작의 집안을 파탄을 내더니"
반투명한 결정체 속에는 바보같이 굼뜨고 착한 지안의 모습 만이 나타날 뿐이었다.
“기억을 잃고 나서 이렇게 다른 모습이라니, 웃기지도 않네. 전생에도 악질 중에 악질이라고 보고 받았는데, 같은 사람 맞아? ㅋㅋ”
리오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런 생각이 날만큼 요즘 며칠 간, 이 에르디아에서의 지안... 아니, 에르웬은
"릴리, 물 무거워 보여. 내가 들게!"
"하진 경! 무릎 다치셨다면서요, 괜찮으세요?"
"제가 쓰러졌을 때, 걱정했죠? 고마워요. 진심으로."
하도 지켜보다 보니, 이젠 대답도 예측할 지경이다.
“…너, 대체 뭐냐.”
마음 속으로 툭 뱉은 리오의 말은 밤공기 속에 스며들었다.
‘진짜 착한 건지, 착한 척 하는 건지.’
리오는 최고신들과 계약한 감시자다. ‘판단’이 아니라 ‘감시’가 그의 임무일 뿐.
하지만 어느샌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판단하려 하고 있었다.
“위선자는 언젠가 들통나게 돼 있어.”
그 말과 동시에, 정원 안쪽에서 마력이 일렁였다.
“……뭐지?”
리오는 시선을 돌렸다.
정원의 끝, 작은 문 앞에 지안이 있었다.
“…도망치려고? 웃기는 아가씨네”
그 시각, 지안은 오전에 봤던 정원의 한 아기 고양이가 눈에 밟혀 다시 그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살아있겠지...? 아까 구할 껄... 공작에게 들킬 까봐 냅뒀더니 밤이 너무 춥잖아...."
몰래 정원으로 나서는 길에 지안은 하녀 1명을 마주쳤다.
"…아가씨? 이 시간에 어딜…?"
"꺄악 !!!!!!! ㄴ... 누구...!!!!!!!!"
"저... 저에요! 웬디! 아가씨 놀래켜서 죄송해요...!!"
"웬디...? 아 그래 웬디구나... 깜짝ㅇ....."
우웅 - 우우우웅-!!!!!!!
그 순간 지안이 알아차릴 틈도 없이 그녀의 손 끝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앞에 있던 하녀 웬디는 덮칠 듯한 마력에 휘말렸다.
‘…… 음?’
순간, 리오는 본능적으로 일어섰다.
‘그래. 그게 너의 본모습이지. 결국 이렇게 폭주해서, 또 누굴 죽이고.....’
"꺄악!!! 이게 뭐야, ㄴ... 나 통제가... 이게 뭐...무슨....일...."
"ㅇ... 아가씨.. 괜찮으세요 ?!?!?!!"
"웬디!!!!!!!! 가까이 오지마!!!!!!!!!!!!!"
지안은 손을 웬디 쪽으로 뻗으면, 마력을 빗겨나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랬다간 웬디가 죽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 누군갈 다치게 하면... 안 되는데.. 대체 무슨...'
"아가씨 !!!!!!!!!!!!!!!!!"
지안은 마력의 소리 때문에 웬디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고, 어찌할 방도도 찾지 못했다.
계속해서 마력은 커지고 있었고, 지안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이번 생도 망했나보다... 나 때문에 누군갈 다치게 할 수 없어... 난... 이제 그만....'
리오는 멈칫했다.
지안은 손을 자신의 쪽으로 간신히 돌리려고 노력하며, 하녀 쪽 방향을 피하려 했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어… ㄱ...그만....”
순간—
리오가 움직였다.
“하… 진짜, 손이 많이 가시네?”
리오는 허공을 베듯, 공간을 멈췄다.
손을 뻗은 채 멈춰있는 지안의 몸을 품에 안고, 손끝의 마력의 흐름을 흡수했다.
정원, 아니 세상 전체가 정지된 듯 조용해졌다.
지안은 순간 눈을 간신히 떴고, 리오에게 매달린 채 힘없이 말했다.
“…리오…?”
“응. 나야, 이 멍청이야.”
"ㅇ..이게 무슨....."
지안이 순간 의식을 잃고 완전히 쓰러지자, 리오는 곁에 무릎을 꿇고 한숨을 쉬었다.
“…왜 안 때려? 왜 안 부수고?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해…? 너 대체 누구야....”
자신도 모르게 말을 뱉고 있었다.
모르는 감정이 스며든 느낌이었다.
리오는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사건을 해결하고는 조용히 모습을 지우고 사라졌다.
잠시 후—
헨리가 마력 기운을 느껴 급히 정원으로 향했다.
리오는 저택 꼭대기 첨탑 위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밤하늘을 등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내가 너를 잘못 알아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너가 거짓말쟁이인걸까”
저택 쪽에서 칼자루를 쥔 헨리가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
"ㄱ..공작님을 뵙습니다...!!"
“에르웬?!”
그는 지안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 옆에 주저앉은 하녀가 허둥지며 말했다.
“공작님! 아가씨께서… 갑자기 손 끝 마력이… 그런데… 저를 보호하려고…
손 끝을… 저한테 날아올 수 있었는데, ㅇ...일부러… 방향을 비틀어서…”
"갑자기 마력이 발현되었단 말이냐"
"ㅇ...예..."
헨리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얼굴로 지안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손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몸은 탈진 상태였다.
“…이젠 정말, 널 뭐라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는 천천히 몸을 낮추었다.
지안의 몸을 조심스레 안아 올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가씨를… 안으로 모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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