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 르셸
아ㅡ. 알겠어, 알겠어. 이제 그만 받아 먹을게.
미친듯이 메스꺼운 속을 다독이고자 가슴을 쓸었다. 이 미친 사람들. 지치지도 않고 지금 몇 시간째 술이야?
호석 선배가 내미는 술 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고봐라. 1년만 더 참아도 이 짓은 관두는 거다. 일단 1학년이 하라면 해야지, 뭐 어쩌겠어.
"하하···. 감사합니-...다?"

"야야. 얘 그만 먹이고 나나 놀아주라고 호석아."
내 손에 넘겨지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잔을 낙아챈 석진이 장난스레 언성을 높였다. 그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호석 선배는 노발대발하며 '네 녀석이랑은 술 안 마셔!'라고 외쳤다. 석진의 태연한 저 얼굴, 믿기지 않겠지만 안주도 거의 먹지 않고 혼자 세 병이나 마신 얼굴이다.
갑자기 술이 확 당기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2년 전. 고등학교 선배였던 김석진은 나와 스터디 모임을 함께 했었다. 석진의 목적은 내 성적 향상이었을지 몰라도 내게 먹힌 것은 그저 달콤한 목소리와,
"무슨 말인지 이해 돼?"
"네? 네네···."

"···솔직히 말 해. 집중 안되지? 너 나한테 벌써 질렸어? 그러면 안되는데. 나랑 대학까지 같이 다닐 생각을 해야지."
끝내주는 얼굴이었지만.
물론 사심은 전혀 없었을 거란 걸 안다. 친절한 선배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런 선배가 고백 한 두 번 받아 봤을 거 같지 않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여전히 고백하지 않았단 말이다.
근데 오늘은 저 친절이 왜 이렇게 열이 받지. 와-, 목탄다. 술 기운이 이래서 무섭다는 걸까. 오늘은 진짜···고백 해버리고 싶다.
"여주야. -여주야."
"네에ㅡ."
"괜찮아? 나랑 잠깐 나갈까?"
···이봐요, 김석진씨. 제가 지금 무지 위험한 생각을 하는 중인데 그런 식으로 불러내시면
"네..."
나가야죠.
/
아 머리 깨질 거 같다, 진심으로···.
지잉-
전화가 오는 듯 싶은데 온갖 숙취로 인해 받고 싶지 않았다. 일단 누군지 확인만 하자.
"...석진 오빠?"
아침부터 무슨 일이래.
"여보세요."
"- 응, 이제 일어났구나?"
"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저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신 거 기억 나는데."
"- 응. 그랬지. 근데 그것만 기억 나?"
"네?"
"- 대충 준비하고 나와. 너 어제 나랑 약속했잖아, 해장 같이 하기로."
"에에? 제가요? 진짜요? 헐."
"- 으응, 10시 30분까지 XX해장국 앞에서 만나."
"아 넵, 넵-."
이런 약속은 왜 잡은 건데 여주야···.
···
"왔어? 어,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네? 어제 힘들어 하길래 걱정했는데."
"그래요? 저 지금 몰골이 말이 아닌데..."
"어째 어제 약속 잡은 거 후회하는 얼굴이다."
"뭐 드실래요?"
"말 돌리네. 여기 해장국만 파는데요, 주여주님."
하하···.그러고보니 오빠는 숙취 하나 없는 얼굴이네요.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부은 얼굴이 신경쓰였고, 속이 쓰려 기운이 없었던 탓이다.
후로 별 다른 말 없이 둘 다 해장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석진이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고 휴지를 뽑아 입을 쓱 닦는다. 뭐야, 다 먹지도 않았구만.
"왜 더 안 드세요?"
"······. 너 진짜 어제 기억 안 나?"
"...네? 왜요? 저 혹시 막 진상이라도 부렸어요?"
"너 어제 집 어떻게 들어갔어."
"어제···. 오빠랑 아이스크림 먹고. 저 버스 타는 거까지 보고 가셨잖아요? 저 잘 걸어서 갔는데 이상하다."

"와, 미치겠네. 설마 했는데. 너 나한테 고백해놓고 왜 멀쩡해?"
미친. 진짜 미친! 저는 전혀 기억이 없거든요? 제가 더 미치고 팔짝 뛰겠어요!
ㅡ라고 말 할 수는 없고.
"아, 그, 그니까요...음-."
제발 그럴싸한 말이라도 생각해내라. 이거 어떻게 수습하냐.
"좋아해."
"···."
"사실 어제 나도 네가 좋다고 답했어. 근데 술에 취한 고백은···. 무효야."

"그니까···.나랑 만날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