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은 어디갈까?”
“아무데나 가자.”
우리 사이에 권태기가 온거 같다. 아니,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권태기의 끝자락에 접어 선 지금 너는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네 눈엔 더 이상 내가 없다는 것을..
“그럼 저번에 너가 맛있다고 했던 파스타집 갈까?”
“그러던지.”
“아님 김치 짜글이 먹으러 갈까? 너 김치 좋아하잖아”
“그러던지.”
성의 없는 대답에 난 어떻게든 대화를 이으려 애쓴다. 늘 똑같은 대답이지만 그 대답이 듣고 싶어 애를 쓰는 내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져버린다.
결국 난, 꺼내선 안될 말을 꺼내버렸다.
“아니면..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질까?”
“그러던..ㅈ 잠깐 뭐라고..?”
“헤어지자, 우리”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헤어져, 삐진거야?”
“..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삐져서 나올 말이라고 생각해? 나 너한테 삐졌을때마다 헤어지자고 안했어. 아니 하고싶어도 죽어라 참았어, 홧김에 해선 안될 말이라는 걸 늘 명심하고 생각했으니까”
“뭐..?”
“왜 나만 노력해..? 나랑 끝내고 싶어?”
“당연히 아니지. 내가 왜”
“근데 왜 넌 노력하지 않아? 지금 우리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 같아? 아니, 넌 날 바라봐주지 않아. 어쩌다 네가 날 바라봐주면 난 혼자 있을때보다 외롭고 차가워.”
“.. 여주야”
“왜.. 나만.. 왜.. 나만..!!”
“...”
“이제는 이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는 내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이 관계를 이어가려 애쓰는 내가..! 너무 비참하고 한심해, 알아?”
“...”
결국 눈물을 흘렸다. 6년이란 시간의 추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그때의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다가와서
“.. 헤어져.”
“...”
그렇게 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머리에 꽂고 있던 핀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 아 어.. 그 부분은 그렇게 하면 돼
-근데 언니, 아직도 그 사람 만나? 이름이..”
- 헤어졌어. 한 1주일 됐나..
-엥..? 언니 그 사람 엄청 좋아했잖아. 그 사람 때문에 순영이오빠랑도 싸우고..
- 몰라, 지금은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치.. 알았어. 나중에 꼭 정리되면 얘기해줘
- 알았다~ 이제 끊어
-넹~
솔직히 다 잊었다라 말하면 거짓말이다. 그 자식에 대한 애정은 다 잊었을지 언정 미움까지 잊은건 아니니까. 그리고 어쨌든 좋았었던 추억은 잊기 쉽지 않다.
6년을 좋아했는데 1주일안에 모두 잊을 수 있다면 난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때,
띵동,
“..? 누구지?”
“나야.. 문 좀 열어줘”
“...”
거짓말이길 바랬다. 제발 찾아온게 네가 아니길 바랬다. 그만큼 이기적이진 않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넌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보고싶었어..”
“넌.. 정말”
훨씬 이기적인 놈이다.
“여긴 왜 온거야.”
“.. 말했잖아, 보고싶었다고”
“..난 안보고 싶었어. 물론 지금도 안보고싶고”
“.. 여주야, 다시 한번만 생각해봐. 나 진짜 후회 많이 했어..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 너 아니면 나 진짜 죽어..”
“.. 넌 정말 왜 그렇게 끝까지 이기적이야”
“뭐..?”
“내가 왜 다시 한번 생각해줘야 해? 그리고 후회를 많이 해? 너 지금 나랑 헤어진 지 1주일 밖에 안됐어.”
“...”
“넌 나와 헤어진 1주일을 후회했겠지, 그런데 난 그 관계를 이어오려 노력했던 모든 순간들을 후회했어. 그런 네가 정말 나에게 후회했단 말을 할 수 있니?”
“너..”
“말했지, 난 너 안보고 싶었다고 그런데 네 맘대로 찾아와서 내가 널 보게 하고 나 아니면 죽는다는 말로.. 니 무거운 마음을 나한테 옮기고 있잖아.”
“...”
“.. 넌 정말 이기적이야. 이 세상 어떤 존재보다도 이기적이야”
“...”
“다신 찾아오지마. 그때는 정말.. 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질거니까”
나의 생각보다 훨씬 이기적인 그 놈은 그날 이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주변 말로는 여행을 떠났다는데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다고 한다.
오히려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면 기대할 일도, 불안해 할 일도, 그 녀석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도, 그 녀석을 다시 기억하게 되는 일도 생기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이기적인 그 놈은 또 한번 이기적이게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