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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익숙한 목소리_69화



가장 익숙한 목소리_69화



주말에 남주의 소개팅 자리를 잡아놓으니, 내가 더 긴장이 됬다. 아무리 말 안 듣는 남주라지만, 하나뿐인 내 동생이니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상처받지 않고 행복했으면 하는 누나의 마음이었다.

혼자 집에 있으니, 허전한 느낌이 든다. 남주는 친구집에서 과제하면서 자고 온다고 했고 태형 오빠는 중요한 미팅이 잡혀서 바쁘다고 한다.



오여주
"혼자 있으니까, 허전하네"


허전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 청소를 하기 시작하였다.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는데, 소파 밑에서 무언가가 끼였다.

빼서 확인을 하니, 다름이 아니라 300일 때 윤기가 나에게 주었던 편지였다.



오여주
"이게 왜 여기 있지...?"


그동안 태형 오빠랑 같이 행복한 날들로 가득해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윤기와의 그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윤기와 나의 300일은 하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눈이 많이 내리니, 꽤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손을 나는 비비면서 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을 하면 항상 늦지 않는 윤기가 왠일인지 너무 늦는다.

윤기에게 전화를 걸려고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껴안으면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민윤기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오여주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혹시나 오다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그 짧은 순간에 이런저런 생각을 다 했다.

내 말을 들은 윤기는 내 앞에 서서 눈을 맞추고는 말했다.



민윤기
"걱정시켜서 미안해"


차가워진 내 두 손을 잡아 올린 윤기는 호호하면서 불어서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민윤기
"완전 꽁꽁 얼었네"


민윤기
"사랑하는 사람 춥게 하고. 민윤기, 제대로 혼나야겠는데?"


오여주
"혼내지 마. 민윤기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내가 한 말이 그렇게 좋은지, 윤기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내 두 손을 자신의 코트 양쪽 주머니에 각각 넣고는 내 뺨을 뽀얀 자신의 두 손으로 감쌌다.



민윤기
"진짜 사랑스러워, 오여주"


그렇게 우리의 입술은 포개졌다. 가볍지만 그 무엇보다 따뜻한 입맞춤이었다.


......


따뜻한 카페로 들어온 우리는 초코라때 두잔을 시켜서 마셨다.

얼은 몸을 녹이고 있었는데, 윤기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거리더니, 이쁘게 포장이 된 편지지와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오여주
"윤기야... 이거 손편지야?"


내가 그렇게 받고 싶다고 해도 부끄럽다면서 주지 않았던 손편지를 300일에 준 것이었다.



민윤기
"아... 그거 집에 가서 읽어..."


윤기가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였다. 그런 윤기를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300일이니까 참기로 하였다.



오여주
"나 진짜 감동이야..."


민윤기
"손편지 하나에 네가 그렇게 감동할 줄 알았으면 일찍 써줄 걸 그랬네"


아직도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손편지랑 같이 꺼낸 케이스를 열었다. 그 케이스 안에는 다름이 아니라 목걸이가 있었다.



오여주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제대로 된 직장이 아직 없는 윤기는 백화점에서 이렇게 비싼 목걸이를 사려면 한달치 윌급을 써야 하였다.



민윤기
"이 정도는 살 수 있어"


성의를 생각해서 나는 일단 목걸이를 받았다. 내가 잔말 말고 받아주니, 기분이 좋아 보이는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민윤기
"이쁘다. 딱 오여주꺼네"


오여주
"너무 이쁘다. 정말 고마워 윤기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목걸이를 사기 위해서 윤기는 남는 시간에 틈틈이 알바를 하였다고 했다. 그때 나는 윤기가 팀플이나 과제 때문에 바빠서 못 만난다고만 생각했었지.




편지를 꺼낸 나는 천천히 눈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TO. 사랑하는 여주에게

안녕? 여주야. 아... 진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는 게 처음이어서 뭘 어떻게 써야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적어볼게.

가장 먼저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고 그래서 항상 너한테 받기만 해서 미안했고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너에게 남들 부럽게 자랑할 것 하나 사주지 못해서 나 자신이 너무 미웠어.

그런 날 부끄러워 하지 않고 아끼고 사랑해주는 네가 사랑스럽고 고마웠어. 그래서 꼭 성공해서 네가 나한테 해준 것보다 더 잘해줄 거야.

300일 동안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쭉 같이 있어줘 여주야. 사랑해,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평생 너만을 사랑할게.


오여주 밖에 모르는 바보 민윤기가.


또르륵-]



오여주
"민윤기 바보 멍청이, 나쁜 놈..."


오여주
"흐으으윽..."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그칠 기색이 안 보였다.

그만큼 난 윤기를 많이 사랑했었다.


띵동-]


그때 벨소리가 들려오고,

확인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장난으로 누른 거겠지 하면서 다시 앉으려던 그 순간 내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주야... 오여주..."


작게 들렸지만, 다시 듣지 않아도 알았다.


이건 윤기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