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들어온 밤톨

1. 굴러들어온 밤톨

...

내 이름은 김여주

고등학교 2학년.

내가 아주 어릴 때에 우리집은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파산 위기에 놓였다.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와 100일 채 안된 나를 두고 해외로 도망 아닌 도망.

그리고 현재

내가 18살이 되어서도 아버지란 작자의 소식은 깜깜무소식이다.

내 입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전에 아빠의 얼굴은 내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되려 그게 다행이었을까.

너무 익숙하게 엄마와 할머니 손에 키워져 아빠라는 존재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아빠의 여부에 대해서 또래 애들보다는 조금은 둔했을지도

...

중학교를 막 졸업했을 즘, 겨울.

엄마가 돌아가셨다.

학교 앞 분식집을 하던 엄마는 밤길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한동안 원망만 했다.

세상이 나한테만 매정하기 그지없어서.

그리고 지금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긴 하지만, 틈틈이 알바를 하면서 구멍 메우기 급급하게 산다.

뭐, 이정도...

소개마저 우울하기 짝이없지만

불우한 가정사 정도 빼고는 평범하디 평범한 여고생이다.

또래 애들과 다른 점이라고는 하루벌어 근근이 사는 내겐 꿈과 미래는 사치라는 점만

빼면 나름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다.

...

그런데 어느날

하늘 위 구름이 무슨 색이었는지 조차 잊은 나의 하늘에

웬 굴러다니는 밤톨 하나가

내게 떨어졌다.

...

..

.

...

학교 뒷 담장 아래는 화단이 있다.

우리학교는 학년마다 매주 반을 돌아가면서 화단에 물 주기 당번이 있는데

점심시간 짬을 내서 물을 줘야 했다.

그리고

이번주는 내 차례였다.

졸졸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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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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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화단은 학교가 심었는데 관리는 왜 학생들 몫인걸까..

나는 화단 위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푹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고작 꽃에 물주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꽃에 흥미도 없을 뿐더러

아까운 시간을 이곳에 흘려보내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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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다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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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다 마셔-

나는 물조리개에 남은 물을 탈탈 털어 화단에 부었다.

물이 흙 속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을 보고 이 정도면 됐겠지 생각한 순간

툭.-

화단 위로 무언가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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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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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운동화?

화단 위로 떨어진 것은 하얀 운동화 한짝이었다.

철컹.-

"아아..!! "

화단 앞 담장 위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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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아, 내 신발;;

담장 철창을 집고 내려오는 남자는 떨어진 신발을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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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옷차림은 봐서 하복 교복에 파란색 명찰

누가봐도 우리 학교 남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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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아,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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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나는 그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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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신발 좀 주워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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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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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거기, 떨어진 거!!

남학생은 내가 못 들었는지 한번더 화단에 떨어진 운동화를 가르키며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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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나는 화단 위로 떨어진 운동화 한짝을 빤히 바라보았다.

위에서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주변 꽃가지가 운동화에 진눌려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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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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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하,

기껏 물 다 줘놨더니, 꽃은 흙에 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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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야!! 안들려!?

남학생은 아무 반응 없는 내가 답답한지 고래고래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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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빠직)

휙.-

나는 화단 아래 떨어진 운동화 한짝을 집어다가 학교 건물 뒤 쓰레기통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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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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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야..!? 미쳤어!?

철컹.-

우당탕..!!

남학생은 화들짝 놀라며 담장 아래로 떨어지듯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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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아, 씹..진짜..;;;

떨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찍었는지 자신의 허리를 문지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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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너,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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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사람이 주워달라는데 그걸 던져..!?

남학생은 버럭버럭 화를 내며 여주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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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러게, 왜 운동화를 화단에다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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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아니.. 버린 게 아니라 떨군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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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못 들은 것도 아니면서, 너 일부러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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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곧 있으면 경비아저씨가 분리수거할텐데 안 가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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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아, 씨..

벌떡.-

남학생은 흙을 탁탁 털고 일어나 쓰레기장으로 달려갔다.

목청 크게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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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너!!! 진짜 나중에 걸리기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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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그땐 내가 가만 안..!

삐끗.-

아까 담장 위로 넘어졌던 탓일까 남학생은 달리다 삐끗 발목이 휘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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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하씨;

다시 중심을 잡고 뛰는 꼴이 갓 태어난 송아지마냥 매가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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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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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얼시구?

나는 그 뒷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학교 담장 넘은 건 잘한 짓인가

나는 저 담장 넘은 양아치 하나 때문에 화단이 다 망가져버렸는데

이걸 누구한테 따지냔 말이다.

하...

나도 참

재수가 없어서는 원...

...

..

.

...

오늘 하루 재수없는 날이겠거니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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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야, 싸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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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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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너, 나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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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제대로 재수없을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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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

책상 위로 고개를 올려다보니 아까 전 그 운동화 그녀석이 나를 내려다보며 제 팔짱을 끼고 있다.

작정하고 나를 찾아다닌 건가

...

진짜 또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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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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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네 땜에 내 신발 못 찾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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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찾아서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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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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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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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사과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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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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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네 때문에 신발 못 찾을 뻔 했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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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찾았으니까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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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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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지금 그게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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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나는 화단에 버려진 운동화를 쓰레기통에 가져다놓은 것 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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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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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진짜 니 싸이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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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그걸 뻔히 주워달라는데 쌩 무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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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그 운동화 얼마짜리인지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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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프랑스 장인이 한땀한땀 짜낸 장인정신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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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응, 찾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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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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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이제 볼일 끝났으면 가지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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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아니면 네가 화단 값 물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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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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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네가 떨어뜨린 운동화 한짝에 화단이 망가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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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선생님 말로는 교장선생님이 직접 수입해 온 꽃이라 아주 비싸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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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그깟 꽃 때문에 이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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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래, 그깟 꽃 때문에 내가 혼나게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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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내가 엉망으로 만든게 아닌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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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아, 지금이라도 선생님께 말씀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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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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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네가 담장 하나 넘다가 화단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꽃이 다 망가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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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근데, 담장 위는 왜 넘어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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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학교 무단 이탈이라도 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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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ㅇ..아니,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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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뭐, 어쨌든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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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지금 가서 단임한테 솔직하게 말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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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자,잠깐..

남학생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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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아, 너도 같이 가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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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아무래도 화단을 망친 건 네가 장본인이잖아^^

나는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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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ㅇ..아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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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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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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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지 남학생은 우물쭈물 자신의 입술만 잘근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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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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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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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교장선생님 귀에 들어가는 날.. 난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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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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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안타까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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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근데, 나도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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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학교에 꽃값을 물어주기에 내 형편이 그리 좋진 못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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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냥 담임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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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아, 안돼!!

남학생은 덥썩 나의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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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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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그건만은 말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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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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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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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담장 넘었던 사실이 집에 들어가면 난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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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분명 머리 빡빡 밀려서 집에서 쫒겨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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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어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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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남자는 머리가 생명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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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다시 밤톨로 돌아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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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이..어떻게 기른 머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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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

쟤도 어지간히 사고치고 다녔나보네

머리 빡빡 밀리고 쫒겨날 정도면

보통 금쪽이가 아니었을 건데;

...

근데, 뭐

내 알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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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근데 화단은 이미 망가진 후라..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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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나도 어쩔 수 가 없는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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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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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내가 해결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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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응? 그니까 학교엔 말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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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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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생각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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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규

ㅇㅅㅇ..

...

..

.

...

나도 참...

그냥 그때 알겠다고 했어야 했나.

굴어들어온 밤톨 같은 게

이렇게..

다가올 줄 도 모르고 말이다.

...

..

.

...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