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마음
10화 개 같은 인생



내 간절했던 바람과는 달리 제주도 출장은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잠시 있고 있었던 내 자리에 돌아왔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이 자리, 숨이 턱턱 막히는 집. 그냥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이미 내 발목에는 아버지가 채운 쇠사슬이 달려있으니까.


"상무님, 점심 안 드세요?"


한여주
"전 괜찮습니다. 다들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올 때, 커피라도 사올게요. 한상무님, 커피 뭐 드실래요?"


한여주
"그럼 전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쓴 아이스커피를 난 좋아하는게 아니다. 단지 내 속을 조금이라도 풀기 위한 음료일 뿐이지.

그래도 이제 외롭지는 않다.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으니까.



모두가 점심시간으로 나가고 혼자 부서에 남은 나는 업무 처리를 하였다.


저벅저벅-]


쓰윽-]


바쁘게 업무 처리를 하고 있었을 때, 책상 위에 알록달록한 마카롱이 담겨져 있는 상자가 올려졌다.


고개를 들어 마카롱을 올려놓은 사람을 보니, 태형씨였다.




김태형
"어머니한테 드리려고 샀는데, 여주씨 생각이 나서 하나 더 샀어요"


김태형
"마카롱 싫어하시는 건 아니시죠?"


한여주
"아... 아네요. 저 마카롱 좋아해요"


한여주
"고마워요, 태형씨"


김태형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발걸음을 돌려서 가려는 태형씨의 옷자락을 무의식적으로 잡은 나였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잡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여주
"그...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시다면 저녁 드실래요?"


김태형
"그래요. 전 시간 널널합니다"


한여주
"그럼 내일 회사 8시에 로비에서 기다릴게요"


태형씨가 돌아가고, 내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채워졌다.

내가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와 약속을 잡았다. 그것도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아버지에게 할 말을 떠올려야만 했다. 안 그러면 또 경호원을 따라 붙이실게 뻔하니까.


이번만큼은 내 의지대로 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의지대로가 아닌 내 의지대로 말이다. 더는 아버지의 꼭두각시로 살고 싶지 않았다.



한여주
"아버지에게 뭐하고 하지..."


한여주
"한여주, 떠올려. 너 이런 것도 떠올리지 못할 만큼 무능력하지 않잖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부서에 회식이 있을 때는 아버지가 경호원을 붙이지 않으셨다. 부서 직원들에게 회식을 쏘고 나와서 태형씨를 만나면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한여주
"그래, 그거야. 회식"




다음날, 출근 하기 전에 아버지의 서재에 들렸다. 오늘 저녁에 부서의 직원들과 오랜만에 회식을 한다고 하기 위해서.



한태부
"그래. 무슨 일이냐"


한여주
"얼마 전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서 오늘 부서 직원들과 회식을 하려고 합니다"


한태부
"그래, 그러도록 해라"


한여주
"감사합니다, 아버지"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나를 불러 세웠다.



한태부
"여주야"


한여주
"네. 아버지"


한태부
"사장님이랑은 잘 지내도록 해라. 너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실 분이다"


왜 사장님 얘기를 안 꺼내나 했었다. 이번에는 내가 방심했다.



한여주
"알겠습니다"


한태부
"그럼 어서 가보거라"




아버지의 서재에서 나온 나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사장님은 내가 다니는 신화그룹의 회장님의 하나뿐인 아들인 조준우 사장이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은 사장이랑 나를 정략결혼 시키고 싶으신 것이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만나고 결혼까지 생각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전혀 그런 마음이 없으시다.

자식보다 회사가 더 중요한 아버지에게는 내 행복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한여주
또르륵-]


한여주
"인생 참 개 같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