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마음

11화 단 한명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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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인생 참 개 같네"

내 뺨을 따라서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쓰윽 닦은 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회사로 출근했다. 아무리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한다는 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이미 이 개 같은 삶에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생각해보면 회사에 있는 것처럼 자유로운 시간은 나에게 없었다. 어딜가든 아버지의 눈인 경호원들이 따라다니면서 감시를 해 움직임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 항상 속이 안 좋을 수 밖에 없지.

"한상무님, 어디 안 좋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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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저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요"

이버지 생각을 하니, 울렁거리는 속에 잠시 부서에서 나와 탕비실의 발코니에 서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제야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풀리는 듯 하다. 오늘 태형씨랑 같이 밥도 먹어야 하는데, 이런 기분으로 갈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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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이렇게까지 살지는 않았겠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고요함이 가득 찬 방안.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회장은 결심이 났는지 문밖에 있는 비서를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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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부

"전비서. 들어와"

회장의 부름에 단순에 들어온 전비서는 공손한 자세로 회장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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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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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부

"며칠 동안 여주를 미행해서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없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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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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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부

"그래. 이만 나가봐"

전비서가 나간 뒤, 회장은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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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부

"걸리기만 해봐라. 이 아비의 심기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회장의 방에서 나온 전비서는 자신의 자리에 앉고는 회장이 시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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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아가씨를 의심하시는 것 같으신데... 경호원까지 붙여두시고 따로 미행까지 시키시다니..."

전비서이자 정국은 여주의 아버지인 회장의 비서로 일한지 5년이나 되었다. 그만큼 일도 착실하게 잘하고 믿음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곁에 둔 것이다.

감옥 같은 집안에서 자란 여주를 항상 옆에서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었다. 처음에는 흔한 동정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동정심이 아닌 사랑이었다. 5년이란 시간 동안 혼자서 여주를 바라보았다.

정국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여주를 곁에서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여주를 미행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난감한 상황에 빠진 정국이다. 지시를 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주를 곤란하게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국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뿐이었다. 지시를 따르면서 자신이 뭘 보든지 못 본 척 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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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아가씨를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에 빠진 동안 탕비실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여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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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여기 계실 줄은 몰랐네요"

태형 씨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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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어? 태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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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회장님이 목이라도 축이라고 보냈는데, 여기서 여주 씨랑 딱 마주칠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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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저도요" ((살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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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런데 왜 나와 계세요. 바람이 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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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조금 답답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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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체하신 거 아니에요? 체하신 거면 손을 따야하는데"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고 살살 쓸어내렸다.

이렇게까지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날 안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눈 앞의 태형 씨는 나를 무척 걱정하셨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