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마음

12화 무언가에 홀린 듯

내 손을 살며시 잡고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한 태형 씨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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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체하신 거라면 잠시만요"

나의 손을 놓으려는 태형 씨의 손을 꼬옥 잡았다. 아무래도 탕비실에 있는 구급상자에서 소화제를 찾아서 주러는 거겠지.

하지만 내 속이 답답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지, 소화가 안 되서 그런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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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소화 안 되서 답답한 거 아니예요. 그냥 새장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거예요"

엄연히 말하면 새장에 갇힌 게 맞을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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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래서 안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군요. 제주도에서 호텔 안 보다, 밖에 계시는 게 더 많으셨던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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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네. 맞아요. 전 꽉 막혀 있는 건물 안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답답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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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게 제가 살아야 할 인생이라서. 그냥 사는 거죠"

덤덤하게 말하는 나를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바라만 보던 태형 씨가 할 말이 생겼는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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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여주 씨, 오늘 저녁 먹을 장소는 제가 정한 곳으로 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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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네.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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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러면 혹시 못 먹는 음식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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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못 먹는 음식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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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럼 오늘은 저만 따라오세요. 다음에는 여주 씨가 원하는 곳으로 갑시다"

다음이라는 건, 또 둘이서 식사를 하자는 말... 이런 말 한마디로 설렐 수 있구나. 요동치는 내 심장이 나를 대신 해서 답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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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그럼 태형 씨는 뭘 가장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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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전 어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가장 좋아해요"

이건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었다. 우리에서 집밥이란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밥이 집밥이었다. 어머니가 직접 해주시는 밥은 태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진짜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집밥은 무슨 맛인지.

다시 내가 할 일로 돌아온 나는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업무를 처리했다. 약속시간인 8시 전에 업무를 다 마친 나는 카드를 꺼내서 부서 직원 분들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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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여러분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 하셔서 제가 회식비를 모두 내겠습니다. 부담없이 마음껏 드세요"

"상무님은 같이 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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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저는 중요한 약속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여러분들 내일 봅시다. 아, 마실 건 내일을 생각해서 적당히 마시세요, 알겠죠?"

로비에 내려오니, 언제 내려왔는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태형 씨가 보였다. 처음으로 보는 사복차림이었다. 경호원 일을 하면서 항상 정장만 입었으니깐. 그 사복차림이 얼마나 멋있는지, 잠시 넋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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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여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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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ㅇ,어. 네, 태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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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가요. 운전은 제가 할게요"

망설임 없이 내 손을 잡아 이끄는 태형 씨에 무언가에 홀린 듯 이끌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