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마음

8화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곳에 지금 나와 태형 씨 밖에 없는 듯이 다른 모든 건 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를 보는 태형 씨의 그 눈이 이상하게도 슬퍼 보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눈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까지 저려올 만큼 슬펐다. 이유 없이 그냥 슬펐다.

아픈 느낌이 온몸을 타고 느껴졌다. 내 몸의 힘은 점점 빠져나갔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서 몸에 좋은 것은 다 먹고, 몸에 좋은 모든 걸 해왔었다. 건강검진도 아버지의 회사에 소속 되어있는 제일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했었다.

그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몸살은 많이 났었고, 정신적 치료도 빠짐없이 받고 있다. 아버지의 꼭두각시로 사는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면 거짓말이 되겠지. 하지만 몸 건강에는 단 한번도 걱정을 해본 적 없던 내가 심장이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다.

한여주 image

한여주

휘청-]

터업-]

포옥-]

언제 나한테로 달려왔는지, 모든 힘이 풀러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내 팔을 잡아당겨준 태형 씨.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힘이 빠져 깃털처럼 가벼워진 나는 품에 안기고 말았다.

김태형 image

김태형

"여주 씨, 괜찮아요?"

내가 편하게 부르면 자신도 편하게 부른다고 했었는데, 정로 편하게 불러주었다. 상무라는 직급을 달고 있는 난 나보다 직급이 낫은 사람들과 높은 사람들한테서 모두 한상무로 불렸다.

여태까지 내 이름을 편하게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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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ㅎ,하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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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혹시 어디 안 좋으신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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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저 건강해요. 근데 이상하게 여기에 온 뒤로 가끔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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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건강하다고 단정 짓지 말고 꼭 병원에 가봐요"

나 진짜로 건강한데... 건강검진도 장기적으로 받는단 말이야...

내가 뭐라고 말해도 태형 씨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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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네, 알겠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태형 씨의 품에서 나온 나는 바람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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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이거 여주 씨 모자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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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네. 맞아요. 바람에 날아가서... 고마워요"

모자를 건네받은 나는 모자를 썼다. 바람에 다시 날아갈지도 모르니, 이번에는 모자를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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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으시니까, 호텔로 돌아가는 건 어때요?"

몸이 안 좋은 건 아닌데, 자꾸 이렇게 아프니까.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건강검진 다시 받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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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네. 조금 쉬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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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실례 좀 하겠습니다"

혹시나 내가 또 쓰러질까 봐, 내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나를 호텔에 데려다준 태형 씨는 굳게 닫고 있었던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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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이제 두시간 뒤에 미팅인데, 회장님께 몸이 안 좋으시다고 전해 드릴까요?"

아버지의 새장 속에 살아온 나는 사람 보는 눈이 꽤 생겼다. 사람을 보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대략 짐작을 할 줄 안다. 만난지, 2일밖에 안 된 사람이지만,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 건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눈은 누군가를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여주 image

한여주

"아닙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겨우 이런 일로 중요한 미팅을 빠질 수는 없어요"

이건 아버지의 말 때문이 아닌 내 의지였다. 사람이 흠집이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흠집을 보이지 않아야 나를 깔 볼 수 없다.

김태형 image

김태형

"그럼 미팅까지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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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감사합니다, 태형 씨는 참 좋은 사람 같네요"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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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ㅇ,아.../// 여.,주 씨도 좋은 사람 같아요. 그럼 푹 쉬세요"

내 말이 부끄러웠는지,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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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아, 내가 너무 솔직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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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여주 씨... 오랜만에 이름으로 불려 보네"

집에서는 항상 아가씨라고 불리고 회사에서는 항상 한 상무님이라고 불리니, 내 이름은 거의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주변에 아는 사람은 넘쳐난데, 아버지의 말씀에 친한 친구 하나 없는 나는 항상 외로웠다. 그래서 단 한 명이라도 친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이름을 불리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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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화끈-] "나 왜 이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 나이 25세,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창 사랑을 한다는 꽃다운 고등학교 때는 오로지 운동에만 몰입했지, 연애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었던 여학생들은 많았지만,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그 아이들에게 난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줄 테니까.

그 시절 누군가가 내게 물었었지, 넌 사랑을 알기 나 하냐고. 사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잘 몰랐다. 이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난 운동을 사랑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느껴지는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난 몰랐다.

"태형 씨는 참 좋은 사람이네요" ((싱긋

자꾸 그 얼굴이 내 눈에 아른거렸고 목소리가 내 귀에 맴돌았다.

아무래도 연애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여..주 씨가 (어색) 가까이 얘기 나누어 본 첫번째 여자이니까, 이러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날 좋아한다고 했었던 여학생들 몇번이라도 만나볼 걸. 그랬다면, 사랑이 뭔지 알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른 여자를 만났어도 그는 결코 사랑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전생의 사랑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그는 이생에서 단 한 명의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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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만약에 내가 전생에서 사랑했던 사람이 여주 씨라면..."

만약에 그 꿈이 진짜로 내 전생이라면,

이번 생에서는 꼭 여주 씨를 지켜 드리겠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