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마음

9화 끝나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난 기어코 미팅에 참석했다. 태형씨는 중간중간 날 걱정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나는 괜찮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이상하게도 그를 보면 마음이 저릿하면서 아파오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이 편해졌다. 마치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사람처럼.

다행히도 생각보다 미팅은 빨리 끝났고 회장님은 같이 미팅을 한 JN그룹 회장이랑 식사자리를 한다고 해서 날 먼저 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싸고 있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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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일

"아. 그리고 뷔는 한상무랑 같이 가서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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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하지만 회장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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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일

"난 경호원 한명 더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한상무를 잘 챙기게. 안색이 안 좋아보이니까"

몸이 안 좋은 걸 숨긴다고 최대한 숨겼는데, 그게 안 되었나 보다.

그걸 회장님까지 알게 하다니... 한여주 너 진짜 한심스럽다. 너 이렇게 흠 보이는 사람 아니잖아.

아버지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다보니, 난 어느새 나도 모르게 완벽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작은 실수도 내게는 큰 수치였다. 그런 실수를 한 나 자신을 원망하고 나쁜 말로 채찍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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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회장님의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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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일

"아니네. 몸이 안 좋으면 내게 말하지 그랬어"

회장님은 아버지와 다르게 참으로 따뜻한 분이시다. 만약에 회장님이 내 아버지였더라면 난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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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일

"그럼 둘이 들어가서 쉬고 있게나. 난 늦지 않게 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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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회장님은 뷔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시고는 차에 탑승하셨다. 회장님을 태운 차는 서서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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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럼 우리도 갈까요, 여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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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네. 그래요"

미팅 장소가 호텔이랑 멀지 않아서 태형씨랑 나는 제주도의 바람과 공기를 느끼면서 천천히 걸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마음 편히 길을 걸은 적이 있었던가,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둥둥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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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분 좋아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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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아... 제가 그렇게 기분 좋아보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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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네. 마치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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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 한마디를 하는 여주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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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서울로 다시 돌아가도 우리 이렇게 친구처럼 지낼 거죠?"

솔직히 몰랐다. 나처럼 내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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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니, 이참에 그냥 우리 친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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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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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저랑 친구하기 싫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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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주

"아아...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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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럼 친구해요, 우리"

태형씨의 목소리에 홀린 건지, 조각 같은 얼굴에 홀린 건지. 난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다. 그러자고.

이렇게 공허한 내 인생에 친구라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