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ep. 01) 널 봐버렸어.


고작 한명 뿐인 친구와 겨우 같은반이 된 백현은, 새학기 첫날부터 중간정도 되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이번학년은 또 어떻게 아등바등 살아가나,

조용한 그는 학교가 그리 즐거울리 없었다.

매번 옆에서 떠들어대는 친구 녀석은, 그런 백현에게 하루에도 몇대씩 얻어맏곤 했다.

그래도 웃으며 다시 싱글벙글대는, 착한 친구였다.

뒷문이 열리고 찬열이 들어왔다.


박찬열
새끼, 일찍왔네? 종업식날도 지각하더니 왠일이냐.


변백현
닥쳐라.


박찬열
새학기 첫날부터 딱딱하게 왜그러냐? 너도 좀 말도 좀 많이 하고, 어? 시끄러워져봐. 존나 즐거워


변백현
그게 맘대로 되냐 병신아,

백현의 한마디에 또 꼬리를 바로 내리고 그의 뒷자리에 가방을 던지는 찬열이었다.

백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찬열이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시끄러울 수 있는지,

그리고 어쩌다 이렇게 조용한 나랑 친구가 되버렸는지.

이런 나를 원망하는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책상 위에 팔을 베고 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위로 높게 올려 묶은 여자애 하나가 백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저, 친구야?

그 부름에 백현은 자기는 절대 잔 적이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그의 턱 옆에 소매에 기댄 자국이 선명히 나 있었다.


변백현
나 불렀어?

고개를 들어 여자애의 눈을 마주치자마자, 백현은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봤던 얼굴인데, 누구였더라.

한... 하녀, 아니지. 한여주, 그래.


한여주
여기 내 자리라서. 혹시 안불편하면 자리좀 바꿔줬으면 좋겠어.

아, 하고 짧은 대꾸와 함께 백현은 바로 옆자리로 옮겨갔다.

아까 자리의 뒷자리에 있던 찬열의 가방도 다시 옮겨놓았다.

아차 싶었는지, 여주가 백현을 불렀다.


한여주
너, 이름이 뭐야?


변백현
백현. 변백현.

그 뒤로 여주가 뭐라 중얼거리는게 들렸지만 혼자만 작게 말한 탓이었는지 백현에게 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변백현
물어봐놓고 대답도 안하고...

백현도 여주를 따라 작게 중얼거린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학교가 어떻게 끝나버렸는지 싶을 정도로 백현은 내내 잠만 잤다. 출석만 부르고 취침.


박찬열
너 잠만보야?


변백현
짜피 다 수업소개잖아. 뭘 들어, 들을것도 없어.


박찬열
아니 시발 맞는말이네, 난 왜 안잤냐? 아 나새끼 좆병신...


변백현
다 지난일인데 병신일건 또 뭐야.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며 툴툴대는 찬열을 말 안듣는 강아지 끌듯 끌고 백현은 매점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용돈 받았으니 먹고싶은거 있으면 고르라고 후하게 외친 후 남모르게 뿌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백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찬열이 바리바리 들고온것들에 백현은 당황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변백현
이걸 다 먹는다고?


박찬열
나 이거 다 먹을건데? 도시락에 이거 햄버거랑, 삼각김밥까지. 아 저기 계산대 옆에 있는 치킨 한 조각만.


변백현
미친새끼

그 말 뿐, 별다른 말 없이 백현은 자신이 먹을 삼각김밥을 골랐다.

전주비빔은 처음 찬열이 나눠주던 한입 이후로 백현이 계속 찾는 메뉴였다.

왜인지 그는 전주비빔만 먹곤 했다.

자연스럽게 삼각김밥을 가져가는데 옆에 있던 손이 백현의 손을 막는다.


변백현
아니,


한여주
유통기한 지났잖아. 다른거 먹어 저기 말씀드려줄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삼각김밥을 건네들고 알바로 보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넨다. 분명 지적하는 말인데 어쩜 기분이 나쁘지 않게 말을 참 잘한다.

아까부터 백현은 찬열 만큼이나 여주가 신기했다.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 처음본 사람에게 말을 걸 줄 아는 붙임성, 자신이 잘못이 없다면 어떤 상황이든 떳떳한 그녀가 참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미션을 완수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돌아온 여주는 자신을 보고있는 백현 앞에 섰다.


한여주
안고르고 뭐해?


변백현
나 다른건 안먹어서. 그냥 안먹으려고.

가방을 거꾸로 돌려 매고, 맨 앞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꺼낸다.

그의 이름이 적힌 체크카드가 백현의 고운 손에 들려있었다.


박찬열
아 빨리 계산,


변백현
기다려.

백현은 딸기우유를 하나 집더니 찬열이 양껏 고른 음식들 옆에 두었다.


변백현
이거 다 하고, 옆에 닭다리? 이거 하나만 주세요.

계산을 마치고, 먹을게 없어 그냥 나가려는 여주를 백현이 붙잡았다.


변백현
이거라도 먹어.


한여주
오, 나 사주는거야? 고맙다, 잘먹을게.


변백현
자... 잠깐만.

백현의 부름에 여주는 다시 뒤를 돌아본다.

그의 손에는 작은 빨대가 하나 들려 있었다.


변백현
이거 가져가. 불편하잖아.

여주는 그런 백현이 마냥 재밌다는 듯이 웃고는 내일 보자며 편의점을 나섰다.

뿌듯하기도 하고, 낯간지러운듯 한 기분이 낯설어 백현은 입술을 푸, 하고 내밀었다.


박찬열
누구냐?


변백현
우리반.


박찬열
어떻게 너는 잠만 잤는데 친구가 생기는거야. 시발 억울해.


변백현
억울하면 너도 잠만 자보던가.

무심하게 말을 흘리고 백현은 찬열의 앞에 털석 앉는다.

여주의 높은 포니테일 머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내가, 널 봐 버렸다.

무디고 조용한 나에겐 어울리지도 않는, 참 밝은 여자애를.

내가 봐버렸다.

그리고 내 마음을 줘버렸다.

덜컥 겁도없이 모든걸 주려고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어느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