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모든 말들
그 당시


우리는 짧은 여행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왔다.


현진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정인
으... 좀 멀긴 하다.

드디어 저 멀리서 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인
어...?


승민
뭔가 이상한데요?

서둘러 궁에 다가가자 왜 궁이 이상해 보였는지 알게 되었다.


현진
불...!

궁은 불에 타고 있었다.

입구는 벌써 무너져 안으로 통할 수 있는 길은 없었고 불을 끄기에도 너무나 크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을 끌 희망조차 찾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승민
저기...

승민이 형이 가리킨 곳을 보자 무너지고 있는 궁 지붕에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정인
누구지...?

그 사람은 검은 망토를 두르고 칼을 찬 채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정인
저기 있으면 위험한데...


창빈
저 사람이 불을 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정인
그런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지붕에 서 있던 사람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정인
누굴까?


창빈
모르지...

시간이 지나 건물이 모두 타자 불은 자연스레 꺼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었다.

궁 안에서 발견된 그분들의 옷조각과 장신구들에서 알 수 있었다.

궁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평생을 살던 집이 사라졌다.


은광
왕자님. 일단 저희 집에 머무시지요.

그렇게 난 백작님의 집에 창빈이와 함께 머물게 되었다.

그제서야 모든것이 실감되었다.

아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구나.

난 이제 가족도 없구나.

창빈이는 그렇게 허망하게 앉아있는 내 곁을 조용히 지켰다.


창빈
나도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창빈
어머니랑 놀러가고 싶다고 몇날 며칠을 조른 이후 드디어 어머니랑 소풍을 가던 날이었어.


창빈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차 사고가 났는데 어머니가 날 살리겠다고 날 끌어안으며 충격을 모두 받아냈었지.


창빈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죽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어.


창빈
그때 당시엔 나 때문에 어머니가 죽은 것만 같아서 나도 많이 울고 아버지도 많이 힘들어하셨어.


창빈
그런데...


창빈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더라고.


창빈
그러니까 참지 말고 울어.


창빈
펑펑 울고 마음껏 그리워하고 아파해.


창빈
그리고 떨쳐내.


창빈
어머니도 그걸 원하실거야.

그 말을 듣자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렸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을 흘리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 했다.


정인
이제 난 어떡하지...?


정인
집도... 가족도... 모두 사라져버렸는데...


창빈
어떡하긴 왕이 돼야지.


정인
궁도 다 탔는데 내가 어떻게...


창빈
궁이 없다고 왕이 없냐?


창빈
아까 그 사람 봤잖아.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야.


창빈
궁은 어디가 돼도 상관 없으니까 얼른 남은 대신들 모아서 즉위부터 해.

그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슬퍼할 겨를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