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레드
Ep.2 • 화려한 밤, 만남의 근원


[본 내용은 사실이 아닌 허구의 픽션일 뿐입니다.]


20OO년 6월 12일.

큰 회의실 안에 떡 하니 차지한 긴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의사가운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 중 의사 가운 안에 목티를 입은 한 사람은 우여주라는 여자이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내일 병원 오후 7시에 강제 소등이고, 앞에서 말했듯이 산부인과는 조금 분발해주시고. 우여주 선생은 남으시고요"

가운데에 앉은 사람이 해산을 외치자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오면 여주 옆으로 몇 개의 빈 의자 넘어 중년의 남성이 의자에 등을 기대어 있었다.


우여주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우선생, 통계를 보니 그 날 이후 성적이 저조하더라고요"

그녀와 고직급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 사이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 날이라 함은, 몇 년전의 6월 13일. 여주의 동료이자 친구인 윤소정의 사망일이다.

남성이 그 날을 언급하자 그녀의 미간엔 미세한 주름이 잡혔고 목소리엔 힘이 들어갔다.


우여주
"교수님, 그 날은 사적인 일입니다. 함부로 그 날을 기준으로 안 세웠으면 합니다."

"윤소정선생의 사망은 안타깝지만 우여주 선생은 이일병원의 미래를 밝힐 사람입니다.”

“뱀파이어네, 저주네 그럴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여주
“......”

그 날 소정의 목에 난 두 개의 구멍을 본 여주는 진료실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했다.

분명 이빨의 자국인데 짐승의 것도, 사람의 것도 아닌 그런 어중간의 크기의 상처가 정확히 혈관에 나있다?

친분이 있는 치과의사한테 물어보니 송곳니랬다.

구멍이 두 개만 날 정도로 송곳니가 유독 뾰족한 사람, 혈관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다 머리속에 한 가지가 번뜩였다.

그리고 그 순간 들고 있던 커피는 손 아귀에서 벗어나 그녀의 허벅지를 적혔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였다.


찾았다, 그 송곳니의 소유자.

피의 누구보다 예민한 자_


뱀파이어

그래, 뱀파이어였다.

뱀파이어의 존재를 확신한 그녀는 여러번 회의 안건으로 제안하고 논문도 쓰고 많은 노력으로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으나,

돌아오는 말은 '망상에 빠진 의사'라는 수식어 뿐이였다.


"이제 그만 상상의 나라에서 나올때가 되지 않았나요?"


우여주
“......”

소정의 죽음을 망상따위로 칭하는 사람에게 침을 뱉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갑을 관계에서 을인 그녀는 이를 악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여주
"저는 다 말 한 거 같습니다. 망상 아니고 현실이라고요. “


우여주
“현실직시는 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교수님이 아니라."

“.........”


우여주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녀도 알았다, 여전히 엘리트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했지만 전보다 성적이 확연히 떨어진 걸.

하지만 두 마리의 토끼는 동시의 잡을 수 없는 법.

그녀는 성적을 포기하고 소정의 사안을 밝히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우여주
“...하아....”

엎드린 채 한숨만 짙게 내맽던 그녀는 의사 가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네 책상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잠금까지 해야할 만큼 중요한 물건인 목걸이 케이스, 손바닥만한 액자와 종이 몇 장이 서랍 안에 놓여있었다.

왼쪽에 있는 여자는 윤소정, 오른쪽은 우여주였다.

그녀는 괜스레 소정의 얼굴을 만져보았지만 느껴지는 건 차가운 유리뿐이라 씁쓸한 미소와 함께, 중앙에 빨간 루비가 박힌 빨간 진주목걸이 케이스를 열었다.

더이상 고급진 흰색이 아닌 투박하고 거친 적갈색이였다.

목걸이에 묻은 닦지 않는 피를 보던 시선이 옮겨진 몇 장의 종이엔 여주가 몇 년간 뱀파이어에 대해 정리해둔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Vampire;밤중에 무덤의 나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전설상의 귀신]

'전설상의'라는 말엔 빨간 줄이 그어져 있고 그 아래에 '실존하는' 이라고 첨삭되어있었다.


삐리리링- 삐리리잉-

5:00 수술에 들어갈 시간임을 알리는 소리에 손에 들었던 것 모두 다시 서랍에 넣었다. 자물쇠로 잠그는 것도 잊지 않고.

윤소정의 친구가 알람을 껐고, 엘리트 외과 교수가 진료실을 나갔다.

+
“교수님, 저 할 말이 있는데...”


우여주
"suction. 네, 말씀하세요."

*suction[석션]:액체를 빨아들이는 기계

수술이 거의 끝나갈때 쯤 한 동료가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고, 그녀는 수술과 대화를 하는 멀티를 시전했다.


+
"내일 시간 비시죠?"

그의 말의 숨겨진 의미를 안 여주는 두 손이 공중에 잠깐 멈춰섰지만 곧이어 다시 움직이며 대답했다.


우여주
"집에 있을겁니다, 모트데이는 물론 회식 안 가겠다는 말이예요."

+
"이 말이 무례한 거는 알기는 하지만, 소정쌤도 자신한테 얽매는 선생님의 모습을 좋아하ㅅ.."


우여주
"수술 끝. 마무리는 김쌤이 해주세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들고 있던 의료용 기구를 내려놓고 자리를 나온 여주였다.


무례한 걸 알면서도 이야기를 꺼내는 저 양반이나, 소정이 이런 제 모습을 싫어할 거라는 변함없는 사실이나, 그 거지같은 모트데이나. 모두가 짜증났다.

안다, 나도. 병원에서 강제 소등 내린 것도 모트데이를 강제적으로 즐기라는 말이겠지.

안 나가면 며칠간 깨질테고. 그러니까 애초에 나한테는 선택권이 없었다.



+
"교수님, 다시 한 번만 생각해 주시면 안될까요?"

봉합이 끝났는지 수술실 앞 복도에 기대 서있는 여주에게 다가 오는 그였다.


우여주
"...가요, 갑시다. 가면 되잖아."

+
“진짜요?!”


우여주
"뭐예요, 그 반응은. 올해 안가면 내년에 또 그럴텐데. 이런 끈질긴 집착은 오늘 하루면 충분해요."

+
"아싸, 그럼 내일 회식때 봬요! 분장 꼭 하시고 오시고요!"


우여주
“.... 어디로, 몇시까지 가야하는지는 말해줘야죠.”

+
"아참, 내 정신 좀 봐."

뒤통수를 긁으며 머쩍게 웃는 그였다.

+
"7시 30분까지 제이호프로 오시면 돼요!"

내일 놀 생각에 신난 그와 달리 여주는 내일 할 일당을 오늘 다 하기 위해 밤새는 미래의 자신의 모습이 안봐도 뻔히 그려져 한숨을 내뱉었다.





우여주
“와, 사람 진짜 많네”

다음날 소등직전까지 남아 7시 조금 넘어 퇴근한 그녀는 분장한 채로 사람들 속에 끼어있었다.

분장이라고 해봤자 병원에서 입고 있던 의사 가운에 평소보다 조금 진한 레드립이 다였지만 말이다.

“교수님-! 여기요!!”

딸랑거리는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호프로 들어가면 건배할 준비중인 병원사람들이 있었다.


"어? 우쌤도 오셨네요? 얼른 잔 들으세요!"


우여주
“아, 네. 안녕하세요..”

자리를 잡기도 전 눈 깜짝할 새에 손에 쥐어진 생맥주를 동료들과 부딫치는 여주였다.


“모트데이를 위하여-“


화려한 모트데이의 밤이 밝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