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간 걘 아니야
니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겉으론 웃는 척? 그게 나아?


고1. 시험 D-2

교실. 오후 햇살이 빗겨드는 창가. 여주가 책상에 팔을 괴고 앉아 있다. 입술을 깨물며 조금 찡그린다


하연
"야, 왜 이렇게 힘없어? 피곤해?"


최여주
(작게 웃으며)"응… 입 안이 헐어서… 너무 아프네."

말을 할 때마다 안쪽 살이 스치며 욱신거렸다.

그래도 웃어야 했다. 그게 여주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여주, 조심스레 담임 자리로 다가간다.)

"쌤… 저, 입 안이 너무 아파서… 오늘은 좀 조퇴해야 할 것 같아요."

담임한테는 입 아파서 간다는 애가 자기가 처음일 것 같아서 여주도 말하는동안 부끄러웠다.


담임
"그래? 어디 다친 건 아니고? 알겠어. 조심해서 들어가."

(그때 유빈이 말을 건다.)


유빈
"어? 나도 몸이 좀 안 좋아서… 나도 조퇴할래. 같이 가자."


최여주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여주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다연이 눈을 가늘게 뜬다.)


다연
(피식 웃으며)"진짜 아픈 거 맞아? 공부하려고 가는 거 아니고?"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학기 초, 중학교 때 공부 잘했다고 은근히 어필하던 다연. (+여주는 다연, 지유, 하연, 유빈과 무리처럼 반에서 항상 같이 놀았다.)

그렇게 반장이 되었던 다연.

근데 고등학교 와서는 반 1등이 여주라는 게,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희주
(장난 반 진심 반)"야, 입 벌려봐. 진짜 아픈가 보게.“


최여주
(어색하게 웃으며)"뭐… 봐도 잘 안 보일 텐데…" (그래도 바보같이 하란대로 벌린다.)

희주
(고개 갸웃)"잘 모르겠는데?"


다연
"그러니까~ 누가 입 아프다고 조퇴를 하냐?ㅋㅋㅋㅋ“

같이 조퇴하는 유빈한텐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왜 나한테만 이럴까.

그냥 웃어넘겼지만, 그 웃음 뒤로 가슴이 꽉 조여왔다.


최여주
또. 그 때랑 같아지는 걸까….


최여주
왜 내 학창시절은 이런 걸까….


최여주
나만 그런건가..


최여주
내가 이상한가?…

(여주와 유빈,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선다.)


유빈
(아무렇지 않게)"빨리 가서 쉬자."


최여주
(억지 미소)"응…"

집으로 가는 길, 자꾸만 애들의 표정이 떠올랐다.


최여주
고등학교 와서 처음 친해진 애들이고, 나름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최여주
역시 또 착각이었나 보다.

오후 9:29
(저녁. 여주,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고 동민에게 전화를 건다.)


한동민
(투명스러운 목소리)"왜. 시험 공부 안 해?"


최여주
"…아니, 그냥 오늘 있었던 일 좀 얘기하려고."

Tmi) 동민과 여주는 다른 반이다.


한동민
“조퇴했다며..”


최여주
"응. 나 입이 헐어서 너무 아파서 조퇴했어.“


최여주
“근데 애들이…친구가 아프다니까 '괜찮냐'도 아니고… '공부하려고 가는 거 아니야?' 이러는 거 있지."


한동민
(잠시 정적)"…유치하네."


최여주
"그치? 진짜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기분 나쁘더라."


한동민
"나였으면 그냥 씹었어."


최여주
(웃음 섞인 한숨)"너니까 그럴 수 있지… 난 그냥, 웃었어. 바보같이."


한동민
"네가 바본 게 아니라, 걔네가 못된 거지."


최여주
(잠시 뜸을 들이다가)"…그리고 친해졌다 생각했던 희주가…..입 벌려보래서, 내가 진짜 벌렸어."


한동민
"?!……야, 또 그걸 했냐?"


최여주
"아니, 그게… 순간 거절 못 하겠더라구."


최여주
“난 명백한데.. 거기서 안 벌리면 진짜 공부할려고 가는 애 같잖아.”


한동민
"아니,,,그렇다고 네가 왜 입을 벌려……. 걔가 병원 의사도 아니고 뭘 안다고."

이제는 조금 답답해하는 동민.


최여주
(어색하게 웃음)"그치… 바보 같았지?"


한동민
"응. 아주 그냥… 너무 당하기만 해서 문제야, 너."

(잠시 정적)


한동민
"근데 그거… 네가 잘못한 건 아니야. 걔네가 이상한 거지."


최여주
"…고마워."


한동민
"다음에 그런 소리 들으면 그냥 씹어. 아니면 나 불러.…아니다, 불러도 뭐라 하진 않을 거다."

투박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전해졌다.

괜히 울컥해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최여주
“…응”

친구 하나는 잘뒀다고 100번 속으로 생각하는 여주.

동민은 항상 여주가 잘못한 건 없다고 누누히 얘기해주지만…

여주는 항상 자기 잘못이 있나부터 생각한다..

그건 아마도 중학교때부터 있었던 못된 애들의 가스라이팅 때문일 것이다.

동민은 그걸 알아도 그냥 항상 여주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시험 끝난 후 수행 조를 정하는 날.

여주는 같은 무리인 다연, 지유, 유빈, 하연과 조를 하기로 정한다.

[수행 전날, 8교시 자습 시간]

여주는 하연에게 문제집에 있는 웃긴 내용을 보여주려고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자리에 없다.


최여주
"어? 하연이 어디 갔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다가 문밖으로 나간다.

반 앞에 하연과 지유, 유빈, 다연이 모여 앉아 있다.


최여주
"너네 뭐해??“


다연
"우리 수행 논의하고 있었는데."


최여주
"…나도 같은 조인데 왜 나는 안 불렀어???"

여주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황당함이 묻어난다.


다연
"아니, 니가 눈치 있게 나왔어야지."

이게 말인가? 지들이 뭘 하는지 어떻게 알고 눈치있게 나오래…?

자습에 열중하느라 애들이 나간 줄도 몰랐는데….


최여주
“이젠 막 나가는구나 박다연… 근데 수행이 점수에 직결되는 건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맘속으로만 생각하는 여주.

다연은 예전부터 성적 관련이면 은근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나머지 지유, 유빈, 하연이는 안 좋은 감정도 없는데 왜 자기를 안 불렀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여주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수행 논의에 합류한다.)


최여주
‘지금 따져봤자..수행만 조질 것 같으니까…..내가 한번 더 참으면 되는 거야..’

여주는 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억누른다.

[다음 날, 수행 시간]

조사해온 지역의 기후와 축제 등 특성을 외워서 쓰는 수행.

여주는 양이 많아도 외우는 데 자신이 있었다.

여주가 줄줄 말하자 같은 조인 애들(다연, 지유, 유빈, 하연)이 감탄한다.


유빈
"와, 너 진짜 다 외웠네."


지유
"이거 양 많은데 대단하다."


다연
"…최여주, 외워왔네?"


최여주
"어… 수행이니까."

여주는 순간, 다연의 말이 조금 무례하다고 느낀다.

‘수행인데 당연히 해와야되는 거 아닌가?날 자꾸 무시하네?‘


다연
"나는 이런 거 외우는 거 진짜 못하는데… 신기하다."

갑작스레…자신을 인정해주는 듯한 뉘앙스에 내심 기분이 좋아 기분 상했던 건 덮어두기로 한다.

(수행이 끝나고 결과 발표. 점수를 짜게 주는 선생님이지만, 여주 조만 100점.)


지유
"헐, 우리만 100점이래!"

어쨌든 100점이니…속상했던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누르기로 한 여주.

오후 9:00
[하교길, 동민과 함께]

여주는 입으로는 항상 웃고 있었지만, 눈치 빠른 동민은 여주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한동민
"오늘은 뭐 때문에?"


최여주
"뭐가?"


한동민
"웃는데 웃는 게 아냐. 말해."


최여주
"…수행 조 짰거든? 나 다연이, 지유, 유빈, 하연이랑. 근데 전날에 애들이 수행 얘기하는데 나만 안 부른 거 있지."

내심 동민이 위로해주길 바랬는지..이때다 싶어 억울한 것을 속사포로 얘기하는 여주.


한동민
"왜?"


최여주
"몰라. 다연이 하는 말이 ‘니가 눈치 있게 나왔어야지’래.근데 난 자습하느라 애들이 나간지도 몰랐는데."


한동민
"하… 미쳤네. 그게 말이냐?"


최여주
"그치? 근데 그냥 넘어갔어. 수행은 해야 하니까."

답답한게 터진 건지 동민은 날카롭게 숨겨왔던 말을 꺼낸다.


한동민
(발걸음을 멈추며) "야, 너는 왜 맨날 그냥 넘어가? 똑같은 패턴 반복이잖아."


최여주
"그럼 어쩌라고. 나 혼자 불편해지라고..?“


한동민
"그래서? 니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겉으론 웃는 척? 그게 나아?"


최여주
“그걸 내가 어떻게 해. 말하면 더 어색해질 텐데.그리고 고등학교 와서 처음 친해진 애들인데 어떻게 그래.”


최여주
“내가 (중1 때)무리에서 얼마나 아둥바둥했었는지 알면서…”


한동민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그걸 그냥…하…….답답하다 진짜…“

(동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여주는 순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여주도 그간 참아온 게 다연이 아니라 동민을 향해 터진 것 같았다.


최여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최여주
"그리고 너 오늘 나한테 왜 이렇게 성질내는데.“


한동민
“야, 4년 봤다, 내가. 너 맨날 참고 넘기는 거. 근데 그게 멋있어 보여? 아니? 멍청해보여."


최여주
(발끈하며) "멍청? 와… 고맙다 진짜. 그게 위로야?"


한동민
“위로? 너 지금 위로만 원하냐? 해결은 안 하고?"


최여주
"그래, 난 그냥 들어주길 원했어. 친구면 들어줄 수도 있잖아!"

흔한 T와 F의 대화 느낌..?동민은 intj, 여주는 infj랍니다.


한동민
"친구니까 하는 말이야, 이 바보야!"

(여주는 순간 울컥했지만, 말 대신 발걸음을 재촉한다.)


최여주
"됐어. 나 그냥 갈게."


한동민
"…..가던지."

(둘은 횡단보도 앞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멀어지면서도 둘 다 뒤를 한 번 힐끔 보지만, 끝내 말을 잇지 않는다.)

작가
한T산의 T적 모먼트 보셨나요ㅋㅋㅋㅋㅋ

작가
저는 한동민같은 친구만 있었어도 바틸만 했을 겁니다…휴…..ㅠㅠ

작가
한동민같은 친구 제발…가지고 싶어요….

작가
정말 고등학교 가면 성적 신경전 장난아니에요…

작가
다연이처럼 같이 다니는 친한 친구였음에도 여주에게 안 좋은 감정 가지고 있는 거 봐요….

작가
다음화는 다시 현재로 돌아갈 겁니다~

작가
재미있게 봐주시고..! 그냥 원도어인 사람님……글 쓰면서도 힘들었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