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간 걘 아니야

내가 먹으려고 샀는데 양이 좀 많네. 너 먹던가

며칠 전, 여주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얘기가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여주가 과호흡 온 날 한동민이 119먼저 부르고 달려가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게 됐음)

문제는 그게 건강 문제에서 "전 남친 때문에 울어서 쓰러졌다"로 바뀌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 소문이 고3 명재현 귀에도 들어갔다.

명재현 image

명재현

(정문 앞에서 여주를 가로막으며)"여주야, 잠깐만."

최여주 image

최여주

(놀란 표정)"…재현 오빠?…..왜 왔어?“

명재현 image

명재현

"소문 들어서 왔어. 너 그날 쓰러졌다며. 나 때문에 그랬다고…"

최여주 image

최여주

"아니야, 그거 다—"

한동민 image

한동민

(옆에서 끼어들며)"소문이란 건 입 많은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르거든요. 사실도 아니고."

명재현 image

명재현

(동민을 올려다보며)"또 너야?"

최여주 image

최여주

(작게)"그만해… 제발. 둘이 말 섞지 마.“

(여주의 떨림을 본 동민이 잠깐 멈추고 한숨을 쉰다.)

한동민 image

한동민

"…됐다. 들어가자."

(하지만 여주가 망설이는 사이, 재현이 먼저 "내가 데려다줄게"라며 앞선다. 동민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교문 안으로 먼저 들어간다.)

명재현 image

명재현

"요즘… 힘들지 않아?"

최여주 image

최여주

"…아니, 괜찮아."

명재현 image

명재현

(쓴웃음)"괜찮아 보여서 온 거 아니야. 소문이, 나 때문에 쓰러졌다고 하더라."

최여주 image

최여주

"그거 사실 아니야. 그냥… 건강이 잠깐 안 좋아서."

명재현 image

명재현

"여주야. 내가 너 힘든 거 모르는 줄 알아? 그때 우리가…"

최여주 image

최여주

(고개 숙이며)"그 얘기… 그만하면 안 돼? 이미 끝난 일인데."

명재현 image

명재현

(잠시 침묵)"그래도 미안해. 그날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최여주 image

최여주

(억지 미소)"미안하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잖아. 그냥… 오빠는 공부나 해. 올해 입시 준비하잖아."

(멀리서 종이 울리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교문을 통과해 운동장 쪽으로 향한다.)

명재현 image

명재현

"그래도, 네가 힘들면 연락해. 나… 네 번호 아직 안 지웠으니까."

최여주 image

최여주

"……..갈게.”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여주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교문 안으로 들어간다. 재현은 그대로 서서 한참 여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오후 1:00

도서관.(중간고사 D-3)

여주는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계속 공부만 하고 있었다.

그걸 본 동민은 매점에 간 김에 여주를 위해 먹을 걸 잔뜩 사서 돌아왔다.

차마 성격상 “너 주려고 샀다.” 말 못하고..

한동민 image

한동민

(여주 책상에 초콜릿 봉지 툭 올려놓으며)"내가 먹으려고 샀는데 양이 좀 많네. 너 먹던가."

최여주 image

최여주

(피식 웃으며)"거짓말. 너 단 거 잘 안 먹잖아."

바로 들켜버리는 한동민이다.

한동민 image

한동민

"그냥 집히는 거 산 거거든?..그럼 먹지 말던가.“

최여주 image

최여주

“아냐아냐 너무 고마워..(하나 까먹으며) 맛있당”

(동민은 대답 없이 책을 읽는 척 하지만, 입가에 아주 미세한 미소가 번진다.)

최여주 image

최여주

"그럼 답례로… 공부 좀 가르쳐줄까?"

한동민 image

한동민

"됐거든. 나 공부랑 안 맞아."

최여주 image

최여주

"너 모든과목 평균 30점이라며…..이건 안 맞는 게 아니라 안 한 거지."

한동민 image

한동민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냐?아니거든?"

최여주 image

최여주

"담임이 반 전체 성적표 보여줬거든. 숨길 수 없어~"

한동민 image

한동민

"…그럼 과학만 해. 나머진 필요 없어."

시험 끝난 날.

(여주가 성적표를 들고 동민 쪽으로 뛰어온다.)

최여주 image

최여주

"야, 너 과학 몇 점 나왔어?"

한동민 image

한동민

(툭 던지듯)"78."

최여주 image

최여주

(눈이 동그래져서)"뭐?! 평균 30점 하던 애가?!"

한동민 image

한동민

"왜, 믿기지 않아?"

최여주 image

최여주

(장난스레)"점수가 이렇게 많이 오른다고? 그동안 공부 안 해줘서 고마워."

한동민 image

한동민

(눈썹 찌푸리며)"뭐? 이게… 너 지금 놀리는 거냐?"

최여주 image

최여주

(웃으며)"아니 진짜. 너 생각보다 말 되게 잘 들어서 의외였어."

한동민 image

한동민

(작게 콧웃음)"너 말만 잘하네."

여주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 매번 무심하게 던지는 말투.

그런데도 한 번 설명하면 끝까지 듣고, 한 번 배운 건 절대 틀리지 않는 집중력.

‘…생긴건 날티나게 생겨선…말 되게 잘 듣는 성격이었네?’ 여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최여주 image

최여주

“그럼 시험 끝난 김에 나랑 놀자. 내가 점심 쏠께”

“진짜?”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던 걸 참고..

한동민 image

한동민

“그러던지…”

좋으면서 무심하게 툭 내뱉는다.

담임의 종례 후

유민지 image

유민지

"야, 오늘 다같이 PC방 갈래?"

최여주 image

최여주

"난 한동민이랑 약속 있어서~"

유민지 image

유민지

(장난스럽게)"에이~ 둘이 데이트냐?"

한동민 image

한동민

(책가방 메면서)"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최여주 image

최여주

"맞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웃음)

학교 앞.

교복 위에 사복 걸친 애들,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는 애들, 각자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다.

최여주 image

최여주

"어디 갈래? 볼링? 노래방? 아니면 그냥 먹방 투어?"

한동민 image

한동민

"난… 밥부터."

최여주 image

최여주

"역시 먹을 거 우선순위 1위네."

한동민 image

한동민

"네가 점심 사준다고 한 것만 계속 기억하고 있으니까 n빵 같은 거 없다?“

최여주 image

최여주

“아유~압니다~걱정 마셔요~”

분식집.

떡볶이, 순대, 김밥이 한 상 가득. 테이블 옆에는 아이스크림 바도 두 개 세워져 있다.

최여주 image

최여주

(떡볶이 먹으며)"진짜 시험 끝나니까 살 것 같다."

한동민 image

한동민

"시험보다 네 잔소리가 더 힘들었는데."

최여주 image

최여주

"그래도 효과 봤잖아."

한동민 image

한동민

(고개 끄덕)"인정."

최여주 image

최여주

"야, 그래도 너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 성적 때문인가?"

한동민 image

한동민

"글쎄. 네 잔소리 안 들어도 돼서 그런 걸지도."

최여주 image

최여주

"와… 진짜 말로는 절대 안 져."

한동민 image

한동민

(김밥 집어 여주 쪽으로 밀어줌)"너 많이 먹어라. 오늘은."

최여주 image

최여주

“오~착한 똥민~”

못들은척.

최여주 image

최여주

(젓가락으로 순대 간 집으며)"이건 내가 먹는다."

한동민 image

한동민

"원래 너 주려고 한 건데?"

최여주 image

최여주

(순간 멈칫)"…알고 준 거야?"

한동민 image

한동민

"그럼 아무 이유 없이 네 접시로 밀었겠냐."

최여주 image

최여주

"오~ 눈치 빠른데?"

한동민 image

한동민

"넌 눈치가 너무 없는 거고."

최여주 image

최여주

(김밥 집어 먹으며)"아, 오늘 국어 시험 진짜 망했다. 준희가 옆에서 계속 한숨 쉬고 있어서 더 집중 안 됨."

한동민 image

한동민

"걔는 원래 숨 쉬는 것도 짜증나게 쉬잖아."

최여주 image

최여주

"야, 그런 말 하지 마. 귀여운 애한테."

한동민 image

한동민

"네가 귀엽다 그러면 다 귀여운 줄 알지."

최여주 image

최여주

"그래서 넌 귀엽잖아."

한동민 image

한동민

(순대 먹다 멈칫)"…뭐래…."

최여주 image

최여주

"아, 근데 오늘 끝나고 반 애들 PC방 간다던데 너 안 가?"

한동민 image

한동민

"나? 안 가. 너랑 여기 오기로 했잖아."

최여주 image

최여주

"오~ 우선순위 1위네?"

한동민 image

한동민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시끄러운 데 가기 싫어서."

최여주 image

최여주

(웃으며)"어휴, 진짜 츤데레."

한동민 image

한동민

“뭐..뭐래애..?!자꾸 이상한 말 하고 있어.”

한동민 image

한동민

“자꾸 이상한 말 할거면 너랑 밥 안 먹어준다..?”

최여주 image

최여주

“먹어줘..? 먹어줘어….?”

최여주 image

최여주

“내가 너 말고 밥 먹을 친구 없을 줄 알아?”

최여주 image

최여주

“내가 이래봬도 친구 많거든..?”

오늘도 티격태격대는 동민과 여주..

최여주 image

최여주

(떡볶이 집으며)"야, 근데 우리 처음 친해진 게 언제였지?"

한동민 image

한동민

(순대 먹다 말고)"중1 1학기. 내가 기억하기론 네가 내 노트에 ‘공부잘하는 법: 다시 태어나기’ 적은 날.”

최여주 image

최여주

"아, 그거ㅋㅋㅋ 아직도 기억하네?“

한동민 image

한동민

"기억 안 할 수가 없지. 그날 너 처음 봤는데, 인사도 없이 내 노트에 그딴 거 적고 갔잖아."

때는 바야흐로 중1 1학기 중반쯤…

교실 창문 사이로 늦더위 바람이 들어오던 5월.

시험기간이었지만, 한동민의 책상 위엔 풀리지 않은 문제집이 있었고, 한동민은 거의 항상 엎드려 있었다.

한동민 image

한동민

(차갑게, 펜 굴리며)"뭐야, 옆자리에 왜 앉아."

최여주 image

최여주

"나 자리 없어서 여기 앉는 거야. 참고로 나 방해 안 함."

한동민 image

한동민

(고개도 안 들고)"그래도 자리 주인한테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는 게 예의지."

최여주 image

최여주

(흘깃 보며)"…그럼 물어봄. 나 앉아도 돼?"

(중1 때 반은 홀수명이라..한동민은 자진해서 혼자 앉겠다고 함. 그래서 옆자리도 한동민의 소유였다.)

한동민 image

한동민

"아니."

최여주 image

최여주

"헐, 차가워~"

다음 날도 , 다다음 날도 최여주는 한동민 옆자리에 앉았다.

이젠 한동민도 그녀가 익숙해지고 가벼운 농담 정도는 주고 받는 사이.

(사실 여주는 혼자 있는 동민이 마음 쓰여서 계속 말을 걸었다.)

어느 날

여주는 슬쩍 그의 문제집을 훑어보다가, 펜을 잡고 그의 노트 한 페이지에 큼지막하게 썼다.

공부 잘하는 법: 다시 태어나기

한동민 image

한동민

(눈썹 찌푸리며)"…뭐하냐 니."

최여주 image

최여주

(장난스럽게)"그게 현실적인 솔루션이잖아. 넌 지금 답이 없어 보이거든?"

한동민 image

한동민

(노트 덮으며)"모르는 애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어이없는데."

최여주 image

최여주

"야, 농담인데. 너 진짜 웃음도 없냐? 그리고 우리 모르는 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데..?우리 꽤 친해졌잖아..!“

한동민 image

한동민

"나는 너처럼 쓸데없는 농담은 안 함."

그때는 진짜 대화가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최여주는 이상하게도 쉬는 시간마다 동민의 책상 근처로 왔다.

처음엔 그냥 놀리려고, 나중엔 진짜 궁금해서.

그리고 어느새 그 둘 사이엔 ‘다시 태어나기’라는 별명 같은 농담이 남았다.

현재.

최여주 image

최여주

"그날 네 표정 아직도 기억난다. ‘이 년 뭐지’ 하는 눈빛."

한동민 image

한동민

"맞아. 그게 정확한 생각이었음."

최여주 image

최여주

“디질래.?”

최여주 image

최여주

"근데 그때부터 나랑 계속 얘기했잖아."

한동민 image

한동민

"네가 매일 와서 말 걸었으니까. 안 하면 시끄럽게 구니까."

최여주 image

최여주

"아,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먹고 있는 거라고."

한동민 image

한동민

(순대 간 집어 여주 접시에 올리며)"그럴지도."

여주는 얘기한다고 한동민이 접시에 올려주는 음식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집어먹는다.

+) 한동민은 여주랑 다니면서 차가운 이미지를 조금씩 걷어냈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얼굴에서 드러나는 차가움에 다들 선뜻 다가가진 못했지만..

김동현은 한동민의 첫 번째 동성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러면서 차츰 동민 주변에도 동성뿐만 아니라 이성 친구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작가

한동민이 명재현과 기싸움할 때, (1화 참고) 자신의 감정을 모르게 드러냈었는데, 여주는 이마저도 자신의 편을 들기 위해 친구로서 해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갑자기 틱틱거리는 한동민쓰가 이해 안 되실까봐 걱정돼서 적어요ㅎㅎ)

작가

그걸 알아챈 한동민은 잠깐 다정남에서 다시 원래 친구 사이의 말투로 돌아가게 됩니다..

작가

한동민은 여주를 위로할 때는 되게 다정하지만, 그 외에는 츤데레적인 한태산 모먼트를 보여줍니다.

작가

그리고 한동민과 최여주가 친해지게 된 중학교 때의 일은 저의 중학고교 시절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썼습니당(제 중3 때 첫사랑 얘기예요ㅎㅎ) 그 친구 성적이 진짜 많이 오른 게 인상깊어서 소재로 쓰게 되었어요😋

작가

그렇다고 제가 무턱대고 너 공부 잘하려면 다시 태어나야돼~하는 못된 아이는 아니었답니다!!

작가

다음화는 여주가 차가운 동민이에게 다가갈 정도로 밝고 장난스러운 아이였는데

작가

왜 이렇게까지 소심한 성격(이전 회차들 참고)으로 변했는지, 중1 후반에서 고1까지 여주에게 있었던 일을 쓸 것입니다..!

작가

여주에게 있었던 일은 거의 대부분 제 실화 기반으로 쓸 거예요..! 재미있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