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튼 간 걘 아니야
화해신청


[싸운 후 3일 뒤,점심시간, 학교 복도]

동민은 창가에 기대서 이어폰을 한 쪽만 꽂고, 교복 셔츠 팔을 걷어올린 채 핸드폰을 보고 있다.

여주는 몇 번이나 지나치며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숨을 깊게 들이쉰다.


최여주
"…야."

(동민이 고개를 살짝 든다. 표정은 무심.)


한동민
"왜."


최여주
"왜… 며칠 동안 연락도 없고 말도 안 해?"


한동민
"네가 먼저 가라며."


최여주
"그래도 친구면, 먼저 연락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한동민
(어깨 으쓱) "네가 먼저 화낸 건 생각 안나냐."


최여주
"…하, 진짜 자존심 하나는 끝내준다 너."


한동민
"원래 그래."

(여주는 순간 짜증이 치밀지만, 결국 입술을 깨물고 말한다.)


최여주
"(헛기침하며)근데,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내가 힘들 때 들어준 사람, 위로해준 사람… 너밖에 없더라."


한동민
(눈을 슬쩍 피하며) "그래서?"


최여주
"그래서… 내가 먼저 온 거야. 화해신청.“


한동민
"…네가 먼저 화해하자는 건 처음이네."


최여주
"이건 풀자. 진짜로."


한동민
(잠시 뜸 들이다가) "…그러던지."

(동민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작게 덧붙인다.)


한동민
"근데 너도 좀 바뀌어야 돼. 맨날 참고만 살 거면, 내가 옆에서 보는 것도 답답해."


최여주
"…알았어. 노력해볼게."


한동민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리며/승리의 미소) "그래. 그럼 오늘 하교 내가 같이 해줄게."


최여주
"하교해줄게에?!“


한동민
“싫음 말고?”


최여주
“아유..뭐…그러시던지요~”

둘은 아무렇지 않은 척 나란히 걷는다. 어색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훨씬 가까워진 발걸음.


최여주
“아, 너 요즘 학교생활 열심히 한다며..김동현이 그러더라?”


최여주
“발표준비도 너가 막 다 하고 그랬다던데..?”


한동민
(고개 들지도 않고)"응. 뭐, 그냥 해야 하니까."


최여주
"근데 왜 발표는 안 했어?"


한동민
(잠깐 뜸 들이다가)"내가 하면 분위기 무거워질까 봐, 애들이 안 시키더라."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여주만 힘든 게 아니었다…무심한 척 하지만 한동민도 나름대로..좋진 않았다.


최여주
"…진짜 그렇게 말했어? 걔네가?"


한동민
(쓴웃음)"뭐, 직접 그렇게 말한 건 아닌데. 분위기 보면 알잖아."


최여주
"너무하네. 자료도 네가 제일 많이 했는데."


한동민
"괜찮아. 그런 거 기대 안 해. 어차피… 반에서 날 좋아하는 애도 없고."

사실…한동민 반 여자애들 중 60%는 한동민을 좋아하고 있었다.

한동민이 차갑다 느껴져서 다들 말을 안 걸 뿐….

(여주가 작게 한숨 쉬며 동민 옆에 앉는다.)


최여주
"그럼 왜 기대 안 하는 척해?"


한동민
(살짝 당황)"뭐?"


최여주
"기대 안 하면, 저렇게까지 안 준비해와.밤새워 했잖아. 오늘 너, 눈 밑 다크서클 생겼더라."

(동민이 아무 말도 못하고, 우유만 한 모금 마신다.)


최여주
"넌 무심한 척하지만… 맘 안 무뎌. 상처 잘 받아."


한동민
(잠깐 멈췄다가, 작게 중얼)"…그걸 왜 너만 아냐."


최여주
(조용히 미소)"나, 네 오래된 친구잖아. 네가 혼자 잘 버티는 사람 아닌 거, 나만큼 아는 사람 없지."

(잠시 조용한 정적)

여주만 동민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사실은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최여주
"너네 반 애들이 바보야. 그냥 다 겉만 보고 판단해."


한동민
"…근데 가끔 너까지 그런 애들 사이에 있을까 봐, 좀 겁난다."

(여주는 놀라며 동민을 바라본다. 처음 듣는 진심 같은 말이었다.)


최여주
"나는 너 편이야, 한동민..!!앞으로도, 언제나."

동민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표정은 평소처럼 무심하지만, 손에 쥔 우유 팩이 살짝 구겨진다.

다시 현재..떡볶이 집을 나온 둘.

길거리.

밥을 먹고 나오자, 번화가 중심에 있는 스티커 사진 가게 간판이 보인다.

네온사인과 핑크빛 불빛이 번쩍인다.


최여주
"야, 우리도 찍자!"


한동민
"됐어. 그거 애들이나 하는 거잖아."


최여주
“뭔소리야…?스티커 사진에 나이가 어딨어?“


최여주
(팔 붙잡으며)"그리고 야, 우리도 애야. 고2야."


한동민
"…귀찮아."


최여주
"귀찮은 거 치고 네 표정, 좀 기대하는 거 같은데?"


한동민
(작게 웃음)"착각하지 마."

스티커 부스 안.

반짝이는 조명, 귀여운 배경, 머리 위엔 토끼 귀 머리띠가 걸려 있다.


최여주
(머리띠 동민 머리에 씌우며)"완벽하다. 토끼동민."


한동민
(얼굴 찡그리며)"이거 언제 벗어?"


최여주
"찍고 나서~ 자, 웃어."


한동민
"난 안 웃어."


최여주
"안 웃으면 이상하게 나온다? 나중에 프린트해서 반에 뿌릴 거야."


한동민
“으!…..뿌리면 죽는다?”


최여주
“어어어?? 3초 남았다!”

급하게 웃으며 포즈 취하는 한동민.

찰칵.

4컷의 작은 사진 속에서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밖으로 나와 사진을 보며 여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최여주
"야, 이거 나중에 네 장례식 때도 쓸 수 있겠다."


한동민
“아 뭐래ㅋㅋㅋㅋㅋ부힛부힛(자기도 웃김) 저거 뿌리면 진짜 죽는다?”


최여주
"ㅋㅋㅋ…농담이야. 고맙다고, 오늘."


한동민
"뭐가."


최여주
"그냥… 뭐..같이 있을 때 제일 편해줘서?"

동민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걸음을 조금 늦춰, 여주와 나란히 발걸음을 맞췄다.


한동민
“데려다 줄게.“


최여주
“오예! 나 오늘 생일이야 뭐야?“


한동민
“뭐래ㅋㅋㅋ전에도 내가 많이 데려다줬었거든?”

(주머니에 손 넣은 채, 고개 살짝 들어 하늘 본다)


최여주
"와, 하늘 봐. 가을 같지 않아?“


최여주
“아직 더운 건 맞는데… 시험 끝나니까 진짜 가을 같다."


한동민
"더운 건 여름인데 왜 자꾸 가을인 척하냐. 이상한 낭만 터지는 중?ㅋㅋㅋ“


최여주
(웃으며 동민 살짝 밀친다)"아 뭐래~ 다가올 체육대회 생각하느라 설렌단 말이야."


한동민
(고개 돌려 쳐다본다)"체육대회?"


최여주
"응. 올해는 진짜 열심히 해보려고. 고1 때는 분위기만 보다가 지나갔잖아.“


최여주
“이번엔 달리기 신청도 하고, 응원도 제대로 해볼래."


한동민
"너가? 응원?"


최여주
(손으로 머리카락 뒤로 넘기며)"어이~ 왜 웃어? 나 은근 끼 많거든? 응원복도 예쁘던데 입어보고 싶어."


한동민
"부끄러워서 무대에도 못 올라가는 애가?"


최여주
"그건 옛날 나고요~ 지금은 좀 달라졌거든요?“


최여주
“작년엔 그냥 남 눈치만 보느라 아무것도 못 했단 말이야."


최여주
(잠깐 멈칫, 작게 웃으며)"올해는 좀 나도 나대로 즐겨보고 싶어."


한동민
“오….“


최여주
“너는? 뭐 하고 싶은데?”


한동민
“딱히…?”

신기하네요 종합 베스트 9위라니

호호호…1회 쓰는 데 2시간 30분씩 걸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