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트로피컬 미드나잇

#02_우리 이러면 안 되는 사이야.

동현이 호텔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본 웅은 자신도 갈 준비를 했다.

안 챙긴 것이 있나 확인하던 중, 검은색 지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민증에 써진 3글자는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것, 김동현. 김동현의 지갑이었다.

주인에게 맡기고 지나치려 했지만 호텔 키가 떡하니 꽂혀 있어 무시할 수 없었다.

웅은 계산을 마친 뒤 발이 푹푹 파이는 해변 위를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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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어? 지갑이…

동현은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아채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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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거기에 돈 다 있는데, 설마 소매치기면.

온갖 상상을 다하며 온몸 구석구석을 다시 뒤졌다, 그러나 역시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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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김동현.

숨을 헉헉대며 동현에게 지갑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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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너, 이거 두고 갔어.

발음이 이상하게 꼬였다.

동현은 멍하니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다 지갑을 건네받곤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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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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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음, 응. 근데 동현아.

웅이 비틀대며 그에게 다가올수록 비틀거림은 더 심해졌다.

갑작스레 바닥에 푹 주저앉으며 고개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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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자, 자요?

황당함에 말을 절었다. 이대로 버릴까 했지만 범죄가 많은 곳에 술 취한 사람을 내버려 두는 건 양심에 크게 걸렸다.

양쪽 다리를 꽉 지고는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침대와 떨어진 곳에 이불을 깔아준 뒤 남는 베개를 하나 주었다.

웅은 죽었다 의심할 정도로 잠에 푹 취해있었다.

자는 것을 확인한 동현은 욕실 안으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문도 잠근 채로.

.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깜깜한 방 안과 어둠에 잠긴 하늘, 그리고 바다는 상당히 잘 어울렸다.

보라카이의 첫날이 조금은 흐트러진 것에 대하여 생각할 때 전웅이 그에게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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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동현아.

웅이 그의 양옆에 팔과 다리를 지탱하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동현이 웅의 팔 안에 갇혔다.

머리카락에 코를 가까이하고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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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동현이 좋은 냄새 나네, 샴푸는 아직 같은 거 쓰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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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비켜요, 술 깨고 나서 후회하려고?

웅이 다시 얼굴을 멀리하고 약간의 증오가 섞인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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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아니, 너도 안 사귀고 마음도 없는 남자랑 원나잇 한 놈으로 만들려고.

동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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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형.

동현의 뒷말을 끊어버리고 웅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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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우리 사귈 때, 싸우고 나서 어색할 때마다 뭐 했는지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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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억, 하죠. 어색하면 같이 밤 보냈던 거.

동현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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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우리 지금 꽤 어색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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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그때는 사랑했잖아요. 사랑했기에 같이 자는 걸로 푼 거지만, 나는 형 안 사랑해요. 그러니까 바뀌는 건 없어요.

애증이 담긴 미소를 짓고 웅의 얼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었다.

그의 가슴에 손을 얻고 약하게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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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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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왜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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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난 너 아직 못 잊었는데,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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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끝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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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넌 그게 돼? 관계가 끝났다고 감정도 잘라내는 거. 나는 3년이 지나도 안 되던데. 그리고 김동현 너 아직 나 사랑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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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제가 형을 사랑하면 뭐가 달라져요? 어차피 난 상처 받았는,

웅이 동현과 입을 맞췄다.

당황한 동현이 밀어냈지만 웅은 그의 팔을 잡은 채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

진하게 풍기는 술 냄새에 취기가 더 올라오는 착각이 들었다.

동현의 손으로 자신의 왼쪽 귀를 막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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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형, 읍, 전웅, 비켜.

동현이 힘겹게 말을 잇다 힘을 실어 그를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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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형, 나가요. 우리 이러면 안 되는 사이야. 키 찾아준 건 고마웠어요, 이제 가요.

엉망진창으로 상처받은 모습을 보며 심장 끝이 아렸다.

동현은 자신이 웅의 소식을 듣고 절망했을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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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형, 술 좀 깨요. 그리고서 내일 아침에 다시 봐요.

복수를 위한 여지였고 동정심에 의한 배려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웅이 문 손잡이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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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

-잘 자.

대답할 새도 없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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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하…

머리가 지끈거렸다.

동현이 아는 전웅은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

동현이 아는 그는 아무리 불리해도 자신의 잘못에 마땅한 벌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건 지금껏 알아온 전웅과 너무도 달랐다, 게다가 본인의 상처가 더 커 보이는 모습까지.

전웅이 깨문 김동현의 입술이 붉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아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