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소녀
20. 쾅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지만, 사람들의 말 소리와 사진을 찍는 셔터 소리가 연회장을 채운다.

지나다닐 때 마다 코 끝을 찌르는 여자들의 강한 향수 냄새와 진한 와인 향기에 정신이 없다.

나
이게 약혼식인지, 파티인지 알 수가 없네 -


혹시 몰라 준비한 드레스가 다행히도 쓸모가 있었다.

정신 없는 이곳의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화려하고 예쁜 드레스와, 깔끔하고 각이 잡힌 턱시도 뿐이었다.

나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변백현이 분명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지만, 난 그런다고 안 올 사람이 아니였다.

그리고, 저 멀리 변백현과 김종아가 보인다.


누가봐도 말끔하고, 멋있는 그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변백현에게 팔짱을 끼는 더러운 손의 소유자가 화려한 드레스를 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인정하긴 싫지만, 그녀는 예뻤다.


김종대
안녕하세요?

와, 진짜 미치도록 잘생긴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나
ㄴ, 누구세요?

김종대
백현이 친구에요, 이름은 김종대라고 합니다.

나
아, 저는 ㅇㅇ이라고 하고..

어떤 관계인 누구에게 초대를 받아 이 곳에 왔다고 해야 할까.

나
.. 김종아씨의 오빠랑 아는 사이라 초대 받았어요.

뭐, 초대 받은 건 아니지만 아는 사이는 맞으니.



김종대
어디 출신이세요? 전 D그룹 회장님 손자에요.

망했다, 어디 출신이라고 하지?

나
아 저는..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 어떤 여자가 나를 치고 지나가 휘청거리는 그때,

김종대가 등을 받쳐 똑바로 일으켜 세워준다.


김종대
무례하네요 저 분, 괜찮아요?

나
아, 감사합니다 -

고개를 들어 김종대를 쳐다보며 감사의 미소를 보여준다.

그때, 김종대의 어깨 너머에 있는 변백현이 나를 발견했다.

옆엔 김종아를 낀 상태로.

순간 나는 괜한 심술이 났다.

나는 이렇게 신경이 쓰여 오지 말라는 데도 굳이 찾아와서 이러고 있는데,

옆엔 날 죽일 뻔한 여자를 끼며 하하호호 웃고 있다니.

.. 분명 저러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닌 걸 안다.

하지만, 살짝 들어간 와인과 분위기에 취해 나도 나를 컨트롤 할 수 없었다.



김종대
여긴 사람도 많고 시끄러운데, 저 방이라도 들어가서 한 잔 할까요?

너도 어디 한 번 당해봐라, 변백현

나
네, 좋죠 -

최대한 환하고, 예쁜 미소를 짓는다.

변백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것을 봤지만, 못 본 척 김종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방에 들어간다.

방은 꽤 넓었다.

다양한 술과 과일이 세팅 되어 있었고, 침대같이 넓은 쇼파가 마치 호텔을 연상케 했다.



김종대
잔 받아요.

챙 -

잔과 잔이 부딪히는 이 청량한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았다.


김종대
나이가 어떻게 돼요?

나
아, 저 스물 넷이에요.



김종대
아 어쩐지, 되게 귀여우시다 -

쏟아지는 칭찬에 부끄러워 감사합니다 만 연발하며,

목이 타는 느낌에 계속 칵테일을 들이킨다.


김종대
그거 되게 독한 술인데, 괜찮아요?

.. 어쩐지 얼굴이 더 뜨거워진다 했더니.

그렇게 김종대와 이야기 하며 계속 술을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독한 술에 취해 정신이 슬슬 나갈 것 같았으며, 김종대도 볼이 붉어지고 눈은 살짝 풀려 있는 상태였다.

김종대
하아.. 근데 ㅇㅇ씨.

나
네?


김종대
예쁘네요 엄청.

김종대의 말과 함께 문자가 와서, 그의 목소리가 조금 묻힌 바람에 제대로 듣지 못 했다.

나
아 죄송해요, 제대로 못 들어서 다시 말 해 주실래요?

죄송하단 말을 하며 문자를 확인하니,

문자
변백현 - 어디야 너.

동공이 흔들린 것을 김종대도 눈치 챘을 것이다.

그 순간, 김종대가 나의 폰을 뺏어들고는 문자를 대충 읽은 후, 전원을 꺼서 쇼파 끝 쪽에 둔다.


김종대
예쁘다고.

그가 내 쪽으로 조금씩 다가온다.

눈이 더 풀린게, 제정신이 아님이 틀림 없었다.

나
ㅈ, 저기 종대씨..?

그가 아무 말 없이 내 두 손목을 잡는다.

술에 취해 힘 조절을 못 하는지, 꽤 세게 잡아오는 그의 힘에 살짝 고통을 느낀다.

자꾸 내 쪽으로 기울어지는 그에 야시꾸리한 자세가 되어 버렸고,

술에 취해 방의 공기는 뜨겁게 느껴졌다.



김종대
목 선도, 어깨 선도, 존나 섹시해 -

나
ㅈ, 종대씨 정신 좀 차려봐요!!

정말 거하게 취했는지, 흘러내리는 옷도 모르는 채 자꾸 나에게 접근해 온다.


김종대
늦었어.

쾅 -

노래 나비소녀 중 - "시선이 자연스레 걸음마다 널 따라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