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의 동거
02. 늑대에게 빠지면



백현
주...쥬이니! 밥먹어

어제 일 때문인지 문쪽에서 빼꼼 고개만 내밀고 조심스레 부르는 백현이다.

여주
우음 나 밥 안머거어

잠이 더 필요해서 밥을 안먹는다 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백현은 알겠다고 하며 다시 문을 닫았고,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백현
너가 좋아하는 볶음밥 했는데...

3시간 후 >>>

여주의 방에 들어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쭈볏거리던 백현이 거실을 서성였다. 곧 여주의 방문이 벌컥 열리고 그 사이로 여주가 옷을 입다말고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여주
악!! 나 안깨우고 뭐했어!! 나 약속있다고 그랬잖아!


백현
아..아니 나는 쥬이니가 들어오지 말래서...

여주
비켜!

우물쭈물하는 백현을 밀치고 화장대로 달려가 화장을 시작했다. 백현도 뒤를 따라 쫄레쫄레 쫒아와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백현
오늘 늦게와?

여주
몰라 가봐야 알아


백현
어디로 가는데?

여주
몰라몰라 나 다녀올게!

약속시간에 1시간이나 늦어버린 탓에 핸드폰이 계속해서 불이나게 울려댔다. 화장을 대충 마무리 짓고 계속해서 질문을 해오는 백현을 지나쳐 현관문을 나섰다.

거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백현의 어깨가 축 쳐졌다.


주현
야아 왤케 늦게왔어!

여주
미안미안 늦잠자가지구ㅠ


세훈
야 왔음 됐지 마셔마셔!

여주
오세훈 너 오랜만에 봤더니 더 잘생겨졌다?


주현
야 그럼 쟤 진짠줄 알아!


세훈
나 원래 잘생겼잖냐. 이제 앎?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현
아 근데...아까부터 저쪽 테이블에서 자꾸 우리 쳐다보는 것 같은데, 기분탓이냐?

여주
어디?

주현의 시선을 따라 간 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백현
... ...


세훈
너 아는사람이야?

시선을 회피하고 다시 술잔을 비웠다. 세훈의 물음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고 고개만 살짝 저었다.


세훈
아니 근데 저 새끼가. 왜 자꾸 째려봐?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에 먼저 간다고 하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여주
야야 됐어. 오늘 나 먼저 들어가볼게. 오자마자 가서 미안하다. 곧 또 만나자


주현
우리 힘들게 시간 맞춘건데 벌써가게?

여주
미안, 미안해... 날 잡고 또 만나자. 먼저 갈게 미안!

밖으로 나와 걷고 또 걸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랑 술도 좀 마시고 회포도 풀어보려 했건만. 저 뒤에서 쫄레쫄레 따라오는 녀석때문에 다 망쳐 버렸다. 걸음을 우뚝 멈추자 따라오던 녀석의 발걸음 소리도 멈추었다.

여주
야. 너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뒤를 돌아 그를 보니 평소완 다른 표정을 짓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있을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백현
어디가는지도 말 안해주고, 그래서 위험할까봐 걱정되서 따라왔어.

여주
네가 뭔데? 뭔데 날 걱정하고 따라오는데? 누가 걱정해달래?


백현
... ...

여주
내가 너때문에 얼마나 화가나는지 알아? 친구랑 오랜만에 놀려고 했는데 너 때문에 다 망쳤어!

여주
나 혼자 갈거니까. 따라오지마

한참을 혼자 걸었다. 뒤쪽을 돌아보진 않았지만 확실히 인기척이 없는걸 봐서는 더이상 따라오지 않는 듯 했다.

여주
... 좀 심했나

아까 했던 말들이 마음에 꽤 걸렸다. 하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여주
아유! 심하긴 무슨. 맞는말 했구만. 이게 뭐야!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애꿎은 시멘트 바닥을 발로 쾅쾅 찍으며 걷고 있었을까

저벅저벅-

누군가 따라오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또 백현이가 따라오는건가 했지만 뭔가 음침한 느낌의 인기척이었다.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벅저벅-

더 빨라지는 걸음걸이에 나도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다리가 풀려버리는 바람에 길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매캐한 향기를 가진 누군가의 손이 입 앞까지 왔을때,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누군가가 떨어져나갔다. 그리곤 아이씨, 하는 소리와 함께 이곳에서 달아났다.


백현
여주야 괜찮아?

무서움에 덜덜 떨며 눈물을 그렁이고 있는데 익숙한 향기를 가진 그가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두 손으론 어깨를 잡고 괜찮냐며 물어왔다.

여주
너 흐..뭐야... 왜 이제 와! 나 무서웠단 말이야ㅠ

그의 품에 안겨 몇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안고 등을 토닥여주는 그에 울음은 쉽게 멈출 수 있었다.

여주
근데...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여주야?


백현
내가? 나 안그랬는데

아닌데. 분명히 그 무섭던 순간에도 여주야. 그 한마디가 정확히 들렸었단 말이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아니라며 표정하나 꼼짝않는 그에 그만 시선을 거두었다.

아직까지도 후덜덜한 다리에 백현의 손을 꼬옥 잡고 걸었다.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오늘따라 신기한 면을 많이 본 것 같았다.

아까 백현이 없었으면 어떻게 됬을지. 상상조차 무섭다. 틱틱댔던 그게 너무 미안해서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이 만져줘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여주
백현아


백현
응

(쓰담쓰담)

여주
아까는 미안해.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전했다. 백현이의 키가 더 커서 까치발을 드느라 힘들긴 했지만 쓰다듬는데도 평소처럼 헤헤 하고 웃지 않고 표정이 더 굳어가는 백현이 의아하기만 했다.


백현
만..만지지마.

여주
왜, 왜 ...? 화 많이 났어?


백현
나 만지지 말라니까.

여주
왜... 너 쓰다듬는거 좋아했잖아...

아직 더 부족한가 싶어서 볼도 만지고, 살짝 꼬집기까지 했는데 백현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만갔다. 그리곤 신기하게도 금방 눈이 번쩍 하고 빛났다.


백현
주인이 맨날 일찍 자서 말할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나 12시 넘어서 만지면 좀 참기가 힘들어져.

여주
어, 어?

백현이 천천히 벽쪽으로 밀어붙이며 얘기했다.


백현
그리고, 왜 맨날 쓰다듬기만 해?


백현
내가 뭐 요술램프 지니도 아니고, 이제 좀 다른거 해볼때 되지 않았어?

등이 차가운 벽에 닿자, 놀라지 않게 부드럽게 여주의 허리를 감싸안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여주의 한쪽 볼을 어루만지며 빤히 내려다보았다.

여주
야,야 너 뭐. 뭐하려고 지금.


백현
글쎄. 고민중이야.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 백현이 천천히 여주에게로 다가갔다. 가로등 불빛에 백현의 얼굴이 보일랑 말랑 하면서 다가오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터질 것 만 같았다.

조금만 더 가면 두 입술이 맞닿을 거리에서 백현은 잠시 뜸들였다. 이쯤되면 여주는 미쳤냐고 하면서 밀어낼 때가 됬는데 왠일로 두 볼이 상기된 채 가만히 있는 그녀에 백현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다시 가까웠던 사이에 격차를 벌리며 얘기했다.


백현
장난 좀 쳐봤어. 아까 나한테 화낸거 복수

이미 달아오를때로 달아올라 얼굴이 붉어졌는데 장난이라니? 가까이 다가와 숨을 섞었던 그때가 아찔하게 기억에 남았다. 한편으론 아쉬운 것 같기도,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괜히 민망해서 혼자 멀찍이 앞서 걸었다.


백현
혼자 가면 위험해 쥬이니!

백현도 아쉬웠던건 사실이었다.그거 참느라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 같았다.


백현
같이가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