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2] 연애호구와 Mr.큐피트

프롤로그.

나 사실 좋아하는 애 있어. 너랑 나는 안 어울릴 것 같아. 미안해.

지난 5년을 뒤돌아보면 김여주에게 자존심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좋으면 좋은 거다. 혼자 설레도 괜찮다. 혼자 바라봐도 괜찮다. 혼자 짊어져도 괜찮다. 나는 다 괜찮다. 저주할 것이 있다면 몹쓸 금사빠 기질이다.

이제는 무뎌질 때가 된 듯하면서도 또다시 나를 무너뜨리게 하는 말들이 마치 화살처럼 나를 잔뜩 후벼놓고는 관통해버린다. 아픈 듯하면서도 웃는다. 바보처럼 미련하게 웃는다. 그게 나의 극복법이다.

어쩔 수 없지, 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미안해.

주변에서 한결 같이 말한다. 미련 곰탱이. 바보같아. 너도 정말 대단하다. 물론, 목소리는 그다지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동정 어린 목소리, 혀를 차고는, 비꼬겠지.

하지만 이젠 좀 익숙하다. 익숙해질 때도 됐다. 그렇지만, 사실 그렇지만 말이야.

고백하면 족족히 차이고, 어떻게 연애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이젠 연애조차 두려울 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나서 내 몹쓸 금사빠 기질을 고쳐주고는 내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는 그 길에 알맞게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생각.

이런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내 곁에서 따스하게 나를 반겨줄 누군가가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에 설정해둔 알람이 정신없이 울렸다.

아이씨, 오늘 일요일인데.

귓가에 맴도는 알람음이 기분 나빠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핸드폰이 놓인 협탁을 향해 팔을 뻗으려던 찰나에,

???

일어났어?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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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흐어……?

자취하는 낭랑 18세. 외간남자를 집에 들일 리가 있나? 아니, 전혀! 애초에 친한 남자애도 몇 없을 뿐더러 내가 미쳤다고 집에 남자를 들여? 내가 두 눈 부릅 뜨고 있는 한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물론 지금은 부릅 뜨고 있는 건 아니지만.

???

일어났으면 눈 좀 제대로 떠 봐. 언제까지 잠만 자고 있을 거야, 재미없게.

하, 재미? 이게 다짜고짜 우리 집에 처들어온 게 누군데! 거기다가 내 단잠을 방해해?

짜증스레 몸을 벌떡 일으킨 내 앞에,

낯선 남자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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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머리가, 분홍색…….

순백의 옷을 입고 그와는 대조되는, 일반인들에게 흔치 않은 짙은 분홍색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에 나는 멍하니 눈만 끔뻑였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나보다 예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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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꼬맹아.

잠시만. 꼬오오매애앵이이이? 하, 지금 나 키 작다고 무시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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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아니, 당신 누구야. 왜 내 집에 맘대로 이렇게 있어. 강도 아냐? 아악, 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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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니,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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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안 들려, 안 들려! 왜요, 당신도 나 수면제 먹이고 납치해서 장기매매 같은 거 할 거잖아. 아니면 돈이라도 가져 거예요? 이렇게 가냘프고 어린 학생을 상대로 집에 쳐들어와서? 와, 이거 완전 못됐네. 됐어요, 나 경찰에 신고할 거야.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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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다지 가냘프진 않은 것 같은데.

이게 은근 사람 화를 돋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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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크흠, 내가 특별히 봐줬어. 내 집에서 10초 내로 사라지면 내가 특별히 신고 안 할게요. 근데 10초 내로 안 나가면 나 신고할거야. 왜요, 뭘 그렇게 빤히 바라봐요. 당신도 칼 들고 막, 막 위협하게요?

어차피 10초 내로 사라져도 나는 신고할거다. 나 같이 당하는 사람들이 또 있으면 안되니까. 게다가 저런 남자가 막 집문 따고 들어와서 막말로 내 속옷이나 귀중품이라도 훔쳐가면 안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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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도대체 뭘 보고 그런 상상을 하는 거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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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요즘 세상이 흉흉하니까 그렇죠! 제정신 아닌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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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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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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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쭈. 야? 내가 너보다 500살은 더 먹었거든?

500……살?

오, 지져스. 내 집을 털러 온 이 남자는 단순 강도에서 그치는 건 아닌 모양이다. 500살이래, 500살. 그럼 태어나서 눈 뜨니 조선시대였을텐데 이렇게 멀쩡하게 있을 리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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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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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뭐하긴요. 경찰에 먼저 신고하고 가까운 정신병원에 전화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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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해도 소용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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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하, 그건 찰서 먼저 가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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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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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경, 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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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해도 소용없다니깐? 너만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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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러니까 어디 한 번 경찰서 가보자니까요? 내가, 어? 우리 엄마 걱정 안 시키려고 했는데, 그딴 거 필요없죠. 내 안위가 중요한……데?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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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전화해봐.

뭔가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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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껏 경찰아저씨 불렀는데 망신 한 번 당해봐.

사람이라면 분명 저 투명한 창문을 타고 미끌어지는 햇살을 받아 그림자가 생겨야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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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500년 넘게 살아봤지만 나를 본 인간은 단 하나도 없거든.

그림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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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인줄 알아. 나를 본 인간은 네가 처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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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당신 뭐야. 왜, 왜 그림자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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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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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연애호구 수호하는 큐피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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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큐, 큐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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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백현. 그게 내 이름이야. 잘 부탁해, 김여주.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현실성 제로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