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Destiny [데스티니]
3. 짧은 회상



강다니엘
결국 오자는게 여기가

김여주
여기 밖에 없잖아

얘기하자는 다니엘을 이끌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 데리고 온 것은 나의 집. 음악 나오고 시끄러운 공간에서 이야기 하기엔 힘들 것 같아 이곳이 딱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날도 추운데 방도 따뜻하지 못한게 조금은 미안해서, 엄마가 서울 올라왔을 때 챙겨준 유자차를 꺼냈다.

다니엘은 마치 신기한 공간에라도 온 양 방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오기 전 엄마와 단 둘이 찍은 사진 앞에서 한참동안 시선을 못 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연다.

강다니엘
니 아버진.. 우째됬는지 모르는거제

티스푼을 무심히 젓던 손이 미세하게 떨려옴을 느꼈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눈을 살며시 감았다 떴다.

아빠.. 나는 그 사람을 증오한다. 단 한번도 그 사람에게 애정어린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기어코 단 한번도.

김여주
알면 이러고 가만히 있겠어?

날이 선 대답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아니, 아니다, 하고 다니엘도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투로 말했다.

내가 다니엘을 만난건 초등학교에 들어서서 부터 였다. 성격이 소심한 탓에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구제해 준 것이 다니엘이다.

강다니엘
난 다니엘이야!

성격은 달랐지만 같이 지내다 보며 우린 점점 서로를 닮아갔고 이젠 서로가 곁에 없는 것이 어색하다고 생각할 때 즈음, 청천벽력 같았던 다니엘의 전학 소식이 들려왔다.

아버지의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는 말, 그 조그만 입술에 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마 그 날이 내가 태어나 가장 크게 울었던 날일 것이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때의 일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어쩐지 연락을 한다던 다니엘은 연락 한통 없었고 나는 매일을 오지않는 연락과 편지만 기다리며 감옥같은 집에서 6년동안 살아 온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 지독하게 나와 엄마를 괴롭히던 아빠에게서 겨우 벗어났고 도망가던 날 밤 엄마는 내게 울며 말했다. 우리 이제부터 과거는 다 잊어버리자. 아마 그때부터 였을거다. 서서히 내 기억속에서 다니엘이 사라진것도.

김여주
너는 갑자기 왜 이런일을 하는거야?

처음 만났을 때 부터 다니엘의 집은 부유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다니엘의 아버지는 큰 회사를 운영중이라 했고 전학 가기 전에도 그 회사를 확장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거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왜?. 아버지 밑에서 일해도 충분할 마당에 왜 이런 일을 하는거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애써 담담히 물었다.


강다니엘
난...

다니엘은 말 끝을 흐렸다.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쉽지 않다는 듯 마른세수를 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본능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김여주
됐어. 들어도 납득가지 않을 이유라면 굳이 말 안해도 돼.

강다니엘
...미안.

잠시 무거운 공기가 흘렀고 그 누구도 정적을 깨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너와 나 사이에 만나지 못했던 이 시간의 틈을 메꿀수는 있을까. 아니, 그런게 우리에게 허락이 되기는 할까.

그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니엘이었다.

강다니엘
..당분간은 내가 계속 찾아올거 같다.

김여주
돈 갚으란거지?

강다니엘
....

김여주
미안한데 나한텐 그런 돈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어. 난 안 갚을거야.


강다니엘
..안다. 일단은, 그렇다고.

그 말을 끝으로 또 찾아온 정적이 불편했는지 내 이만 갈게, 하고 다니엘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도 마중을 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눈을 잠시 바라보던 다니엘은 애써 옅게 웃어보이며 또 보자, 하고 집을 나섰다.

그 어색하고 힘겨운 웃음이 어딘가 씁쓸하게 보였지만 나는 결국 끝까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미워하는게 아니라고. 그저 지금이 밉다고. 힘들게 만났는데 반가워도 반가워 할 수 없는 이 더러운 현실이 너무너무 미운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