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너를 기억해보려 해

02. 마주침

02

양반들이 몸종을 부르는 이유는 딱 하나다.

자신의 소유니까.

그렇지 않고선 부를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꺼려했다.

그래서 지금껏 주인댁 분들 말고는 한번도 양반이 나를 부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게 깨져버렸다.

난생 처음 보는 도령이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운 image

성운

“이거······.”

그래도 다행이었을까?

시선을 내려 손을 보았을 때 그의 손에 있는 것은 붉은 댕기였다.

틀림없이 내 댕기였다.

내가 하고 다니지는 못해서 하지 않지만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아마 내가 흘린 것을 주워준 모양이었다.

여주

“아, 감사합니다.”

그의 손에 있던 댕기를 살포시 가져와 조심스레 넣었다.

한번도 흘린 적이 없었는데 언제 나온 것일까······.

어쨌든 서로 볼 일도, 할 말도 없어진 우리는 뒤를 돌아 다시 가던 길을 가려 했다.

그때 순간,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말릴 틈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밖으로 말은 튀어나오고 있었다.

여주

“저..!”

정신을 차리고 말을 멈췄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 도령님과 그 일행은 나를 향해 돌아봤다.

어쩔 수 없지 싶어 내가 떠올린 것을 말했다.

여주

“혹시······.”

여주

“성운..이…?”

다들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몰랐던 모양인지 당황한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알아챘는지 도령이 대답했다.

성운 image

성운

“아닐세.”

혹시나 싶은 마음에 들떴지만 역시나였다.

그래······.

긴 세월이 흘렀는데 너를 한눈에 알아 볼 리는 없겠지.

너도 그렇게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무슨 이유가 있거나 아니면 잊어서겠지.

이유가 있어서,

잊지 않고 돌아오고 싶지만 이유가 있어서 못 오기를 바라는 나지만

혹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느라 힘든 바람에 잊어버린것일까?

그래서·······.

아니라고 답했지만 혹 날 잊어버린 너는 아니었을까?

_

아씨

“오늘은 좀 오래걸렸구나. 무슨 일 있었느냐?”

여주

“그것이······. 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 천천히 왔나 봅니다.”

아씨

“괜찮다. 나도 오늘 오래 볼 일이 있었으니…”

얼마나 생각났으면 아씨께서도 늦었다 하실까·······.

나도 모르게 옛날 생각을 하느라 발걸음이 늦어졌나 보다.

여주

“아씨, 아씨는 그리운 분이 있습니까?”

아씨

“그리운 자라·······. 그립다기 보다는 뵙고 싶은 분은 있지.”

그립지 않지만 뵙고 싶다니?

잘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뵙고 싶다는 말은 즉슨 그리워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립지도 않은데 뵙고는 싶다라······.

정말 복잡한 관계였나보다, 싶었다.

여주

“그러십니까?”

아씨

“좀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 보통은 그립기 때문에 뵙고 싶다 하지 않느냐.”

여주

“예.”

아씨

“나는 그 분을 아직 뵙지 못했다. 말로만 전해들었던 분이지.”

아씨

“어렸을 적부터 말이다.”

아씨

“뵙지 못했으니 그립지도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아씨

“ 실은 나도 모르게 세뇌된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안젠간 꼭 뵙고 싶구나.”

여주

“예. 저도 아씨께서 그 분을 뵙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아씨

“헌데 그것은 왜 물은 것이냐? 그리운 사람 말이다.”

여주

“그것이······. 실은 제게는 오랫동안 뵙지 못해 그리운 분이 있습니다.”

아씨

“이곳에 팔려오기 전에 만난 사람이더냐?”

여주

“예. 제가 전에 있던 곳에서 뵈었던 분입니다.”

아씨

“그럼 한 날 시간을 내어 한번 가보자꾸나. 네게도 하루쯤은 보상이 있어야지 않겠느냐?”

여주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곳에서는 더이상 그분을 뵙지 못 합니다. ”

여주

“원래부터 그곳에 계시던 분이 아니었거든요.”

아씨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느냐?”

여주

“저도 모릅니다. 가실 때 그런 것은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씨

“그럼 무언가 아는 것이 있느냐? 내 한 번 찾아주마.”

여주

“그 분을 찾게 되어도 전 그 분을 만나지 못합니다.”

여주

“그 분은······.”

여주

“아마 아씨같은 양반댁 자제분이실 겁니다.”

여주

“ 고운 비단 옷을 입고 계셨죠.”

여주

“ 제가 함부로 넘볼 수 있는 분은 아니란 말입니다.”

아씨

“혹 지방에 계시는 분이더냐?”

여주

“그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 상경하러는 오실 터.”

여주

“ 항상 이렇게 그 분은 안 오셨나 하고 확인하지만 그마저도 없었습니다.”

여주

“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아씨.”

여주

“ 오늘 제가 그 분을 뵌 것 같습니다.”

아씨

“그렇느냐! 거 참 잘 된 일이로구나.”

여주

“허나 그 분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여주

“ 제 기억 속엔 또렷이 있는 분인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