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임무
[미리별유치원 : 여름밤의 꿈] 아물지 않은 발목



"...죄송합니다."

그 한 마디 말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때 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래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지 할 텐데.


때는 2년 전, 길거리 버스킹만 즐겨보던 앳된 고등학생의 내가 우연히 친구 따라 장기자랑에 나가 춤을 추게 됐고 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갔다. 그 영상은 조회수를 몇 십만회 찍으며 댓글에는 나에 관한 칭찬들이 올라왔다.

그 찰나의 감정, 사람들이 나에게 주목하고 관심을 주는 것. 무대에 서면 나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환호성. 너무 짜릿했다. 그 망할 감정 때문에 공부하던 걸 다 놓아버리고 부모님을 한 달 넘게 설득해 춤을 시작했다.

학원을 등록하고 1년 밖에 남지 않은 입시 기간에 매일을 춤에 매달렸고 학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 몸에는 부상이 늘어갔고 제일 부상이 잦은 부위는 발목이었다.

내 가방에는 뿌리는 파스, 붙이는 파스, 테이핑 세트 여러 개가 들어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 발목에 들어갔고. 멀쩡한 발목이 한 쪽도 없어서 학생 때는 병원 치료를 전전했지만 입시 기간이 다가올수록 병원 치료도 점점 미뤘다.


그렇게 바쁘게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내 대학교 입학식 날. 입시를 집중적으로 준비하던 작년 10월부터 올해 3월인 지금까지 발목 치료는 당연히 미뤄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입시도 잘 끝나서 대학도 잘 합격했으니.


![정호석 [20] image](https://cdnetphoto.appphotocard.com/fanfic/580370/244574/character/thumbnail_img_2_20220818224003.png)
정호석 [20]
"한여주_"

같은 학원을 다니며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준비했던 동기 정호석. 나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같이 달려와준 정말 고마운 애였다.

한여주 [20]
"오늘 입학하는 소감은?"

![정호석 [20] image](https://cdnetphoto.appphotocard.com/fanfic/580370/244574/character/thumbnail_img_2_20220818224003.png)
정호석 [20]
"아... 미쳤지. 기분 째진다."

한여주 [20]
"ㅋㅋㅋㅋㅋ나도."

![정호석 [20] image](https://cdnetphoto.appphotocard.com/fanfic/580370/244574/character/thumbnail_img_2_20220818224003.png)
정호석 [20]
"너 발목은. 괜찮아?"

한여주 [20]
"괜찮지~"

![정호석 [20] image](https://cdnetphoto.appphotocard.com/fanfic/580370/244574/character/thumbnail_img_2_20220818224003.png)
정호석 [20]
"치료는 언제 받으려고."

한여주 [20]
"다음주부터? 받겠지."

그렇게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새학기가 시작되고 휘몰아치는 과제에, 발표에... 당연히 발목 치료는 미뤄졌고, 그렇게 종강이 됐고, 그렇게 방학이 찾아왔다.


방학 중에도 춤의 감을 잃지 않도록 나는 매일 연습실을 전전했다. 진짜 매일 전전해야 할 건 병원이라며 만류하는 정호석의 말도 뿌리치고 춤 하나만을 바라봤다.

그동안 내 발목은 상황이 더 악화됐으며 한 두 시간 연습을 해도 금방 발목에 통증이 생길 정도로 발목은 나에게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춤은 나와 한 몸이 돼버렸고 이미 내 인생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그 부작용인 걸까, 매일 연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춤이 나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질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나를 바닥 끝까지 끌고 내려갔다.


고난이도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다가 내 발목이 꺾였고 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짧은 신음을 내며 그대로 연습실 바닥에 곤두박질 쳐졌다.

그제서야 내 발목에는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고통 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고 정정하겠다. 마치 발목이 타들어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내 안에 열정의 불씨가 꺼지는 느낌이 동시에 드는 괴리감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뒤늦게나마 연습실에 도착한 정호석이 나를 업고 응급실까지 데려다 주었으며 부모님께 급하게 연락해 수술 동의서를 받고 나서야 수술이 진행됐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방치됐던 내 두 발목이 고작 2시간 만의 수술로 돌아와지지는 않았다. 그 결과가, 아까 들었던 의사의 사과이고. 맞다,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무너졌다. 아주 처참하게. 내 인생과 존재를 부정 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그 순수한 멍청이 하나가 공부까지 다 놓아버려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무작정 나와서 걸었다. 휠체어 빌려주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는 정호석의 말은 거의 안 들었다. 아니, 못 들었다. 그 따위 휠체어가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나는 지금 죽어도 될 몸뚱인데.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이 겨우 학교였다. 새학기 날 벚꽃이 졌던 벚꽃나무는 이미 다 졌고 여름이 찾아왔다. 8월 중순, 말복이 지난 게 무색하게 내 몸은 땀으로 젖었다.

이 땀마저, 다 수치스러웠다. 연습을 죽기 살기로 해서 나는 땀이 아닌 발목이 다 망가진 상태에서 무작정 걸어서 나는 땀이었기에 당장이라도 내 몸을 어딘가에 씻어버리고 싶었다.

![정호석 [20] image](https://cdnetphoto.appphotocard.com/fanfic/580370/244574/character/thumbnail_img_2_20220818224003.png)
정호석 [20]
"야, 한여주!!!"

정말 이대로 쨍쨍하게 내리쬐는 저 햇빛에 내 발목도, 내 열정도 다 태워버린다면. 아니, 처음부터 그랬더라면.

한여주 [20]
".....이정도이진 않았을 텐데."


강물에 몸을 던져 가라앉으면서, 그리고 절박한 표정의 눈물이 고인 정호석을 보며 생각했다. 그때 그 벚꽃 폈을 때 병원을 갔더라면, 지금 내 발목이 한여름밤의 햇빛에 타들어가는 듯 한 고통은 느끼지 않았을 거야.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한여주 [20]
"그땐 진짜..."

의미 없는 후회였을까, 따스한 햇빛을 쬐는 느낌이 들며 눈물조차 나오지 않던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주야! 한여주!"

"너 댄스학원 안 가?! 호석이 왔어!!"


![정호석 [20] image](https://cdnetphoto.appphotocard.com/fanfic/580370/244574/character/thumbnail_img_2_20220818224003.png)
정호석 [20]
"야, 한여주~ 너 때문에 나까지 지각이야~"

눈을 떠보니 정말 나를 비추고 있는 뜨거운 여름의 햇빛. 잿빛이었던 하늘이 파란색으로 변한 게 내 눈이 초점에 맞춰져 보이자마자 정호석의 손목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정호석 [20] image](https://cdnetphoto.appphotocard.com/fanfic/580370/244574/character/thumbnail_img_2_20220818224003.png)
정호석 [20]
"어우! 공포영화냐?! 여름이라고 진짜..."

한여주 [20]
"정호석."

한여주 [20]
"나랑 병원 좀 가주라."

간절한 기도를 들어줬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 했다. 그 전에, 내 발목이 태양에 타들어가지 않도록 먼저 선크림이라도 발라줘야지.

그 한여름밤의 햇빛과 잿빛 하늘, 강의 온도까지. 다 내가 고스란히 안고 가야 할 올해 여름의 향기였다.


_ 글자수 : 2666자


숙제 설명 간단하게 드릴게요 😎 일단 저는 실제로 춤을 전공하지는 않지만 춤을 취미로 추고 있고, 현재 제 양쪽 발목 다 상태도 여주처럼은 아니지만 좋지 않습니다 🥲

하지만, 저도 여주처럼 치료를 미루고 있고 정말 어느 순간 제가 발목을 못 쓰게 돼 춤을 못 춘다면 제 발목이 춤에 대한 열정으로 타올랐던 만큼 꺼질 때는 그만큼 아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주제를 바탕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 기반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을 못할 수는 있지만, 첫 숙제이니 만큼 저를 위한 얘기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하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

_ 미리별유치원 라벤더반 아지. 2022.08.18 숙제 제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