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임무

[미리별유치원 : 어린이날] 놀이공원 그 남자

나는 이제 어엿한 대학교 3학년이 된 22살, 김여주다. 나도 성인이 되면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성공한 커리우먼으로 살 거라고 다짐하며 공부했던 지난 날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다짐 따위 없다. 왜냐하면...

김여주 [22]

"놀이공원에서 인형탈 알바라니..."

매번 쓰는 인형탈도 다른데 오늘은 햄스터인지 다람쥐일지 모를 탈을 쓰고 퍼레이드를 진행 중이다. 웬일로 시급이 올라간다는 소식에 솔깃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어린이날이라서 놀이공원이 생지옥과 다름 없었다.

김여주 [22]

"시급을 안 올리는 게 악덕 사장이라고 부르긴 하겠다..."

퍼레인드 진행 중이라 가끔 펜스를 넘어와서 인형에 달라붙는 어린 아이들을 밀치지 않고 잘 달래며 보안 요원이 제지할 때까지 기다리기. 손인사를 하며 직원들과 발 맞춰 걷기. 쉬워보이지만 성수기인 5월이라 더 지치는 작업이었다.

이번이 벌써 몇 번 째 아이들이 달라붙는 건지. 정확히 네 번째다. 펜스는 어린이들 키에 맞게도 이중으로 해야 될 거 같은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애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큰 인형탈을 쓴 내가 넘어질 것만 같았다.

김여주 [22]

"어... 어어...!"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어린이 친구들~ 이렇게 싸우면 못 써요~"

그때 보안요원이 오기도 전에 훤칠한 남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제지했다. 남자의 옆에는 작고 오밀조밀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김현서 [6]

"마자! 너네 빨리 드러와아-"

남자 덕분에 나는 넘어질 뻔 한 걸 모면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에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들자 세상에... 캐스팅 자기 키만큼 받아봤을 것 같은 미남이...

펌끼가 살짝 있는 검은색 머리에, 주먹보다 더 작은 얼굴, 그 얼굴에 다 들어가는 반짝거리는 눈과 오똑한 코, 두꺼운 입술. 진짜 조각상처럼 생긴 사람이었고 키는 어찌나 큰지, 어깨는 어찌나 넓은지, 게다가 다정하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하긴... 저렇게 완벽한데 결혼 안 했을리가 없지... 애기 귀엽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퍼레이드 행진에 다시 임했다. 멀어져가는 그 남자와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말이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일도 점점 머릿속에서 지워져갈때 쯤, 나는 놀이공원 알바와 카페 알바도 병행하고 있었는데 카페는 유독 어린이들이 많이 오는 카페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띠링_

김여주 [22]

"어서오세요~"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비록 모자를 썼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마주쳤던 그 황홀한 미남이라는 걸. 이 다정한 목소리부터, 숨겨지지 않는 우월한 피지컬, 저 작은 아이까지. 확실했다.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현서야- 뭐 먹을래?"

김현서 [6]

"움... 나 쪼꼬우유!"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알겠어-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수제초코우유 하나 주세요."

김여주 [22]

"네-"

김현서 [6]

"모야. 또 아메리카노 머거?"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응- 현서는 아직 어려서 안 돼요~"

김현서 [6]

"치..."

김여주 [22]

"진동벨 가지고 편하신데 가서 앉아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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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네. 감사합니다-"

저 사람 와이프는 전생에 무슨 짓을 했길래... 진짜 복에 겨운 사람이겠지? 부럽다.

음료가 다 준비되고 나는 그래도 이왕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사심 한 스푼 섞어서 서비스로 쿠키도 같이 올려놓았다.

쿠키랑 음료를 같이 놓고는 진동벨을 울리자 남자가 일어나 픽업대 쪽으로 왔다. 이제 더는 볼 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다- 싶었다.

남자와 아이가 다 먹었는지 일어나 다 먹은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트레이를 받으니 그 남자가 아까와는 다르게 환하게 웃으며 잘 먹었다는 소리를 했다.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잘 먹었습니다. 서비스도 감사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김여주 [22]

"...네. 손님도요~"

남자와 아이가 나가고 트레이를 정리하려고 봤더니 아까 내가 놓지 않았던 메모지가 트레이에 올라가 있었다. 이거 때문에 웃었던 건가, 싶어 내용을 읽어보니...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010-xxxx-xxxx. 제 번호입니다. 연락해주세요. 연락 안 하시면 저 여기 매일 올 겁니다!'

자자,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저 사람은 지금 애까지 딸린 유부남이야. 근데 왜 나한테 번호까지 주면서 연락하라고 하지?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면서? 설마 장기매매 이런 건가? 아니야. 요즘 세상에 무슨... 근데 저 얼굴이면 가능할지도...?

김여주 [22]

"연락을... 그래도 해봐야 되나..."

김여주 [22]

"그 얼굴에 왜 나한테 플러팅이지...? 애까지 있으면서?!"

조금 크게 나온 거 같은 목소리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그 메모지는 내 바지 안에 소중히 접어넣었다. 그리곤 마저 트레이를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김여주 [22]

"그래, 뭐. 연락해보지 뭐..."

그 이후로 우리는 연락을 하게 됐고, 그 남자가 내가 알바하는 요일과 시간에 맞춰서 카페에 찾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남자의 곁에 그 애는 없었지만 나는 아내가 돌봐주는 거겠니- 하고 생각했다.

김석진 [28] image

김석진 [28]

"오늘은 언제까지 해요?"

김여주 [22]

"오늘... 한 6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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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끝나고 뭐 해요? 영화 안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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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범죄시티 3 나왔던데."

...뭐야. 어린 애까지 있으면서.

김여주 [22]

"...시즌 1, 2를 다 안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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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그럼 다른 거 볼까요?"

김여주 [22]

"친구랑... 저녁 약속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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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그래요? 그러면 언제쯤 시간 되는데요?"

김여주 [22]

"...시간 나면, 연락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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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안 할 거잖아요. 그 말 다섯 번은 더 들었어-"

솔직히 괘씸했다. 애까지 있는 거 보니 유부남일 확률이 90%는 넘는데 나한테 이렇게까지 한다고? 아내가 알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지. 용안은 마음에 들지만 한순간에 가정파탄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김여주 [22]

"...저 뭐 물어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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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네-"

김여주 [22]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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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궁금해요?"

김여주 [22]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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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8]

"관심 있는 사람한테나 이렇게 하지. 누구한테 하겠어요?"

...이 남자 아주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밤길 조심 하세요. 뒤에서 확 밀어버릴라.

그러다 정말 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남자가 말하길, 저번에 봤던 그 애랑... 이름이 현서였나? 내 알 빠 아니지만. 아무튼 그 애랑 X랜드, 그러니까 내가 인형탈 알바했던 그곳에 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퍼레이드까지 본다고 하니... 기회였다.

조금 더 무리해서 저녁 퍼레이드 인형탈 알바 자리를 차지하곤 그 날이 오기만을 세기도 수십번, 드디어 디데이였다. 첫만남은 돈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그 남자와 아이를 찾았다.

퍼레이드가 진행된 지 10분이 지났을까, 남자가 보였다. 그 아이와 같이 손도 꼭 잡고 말이다. 옳다쿠나.

내가 그 남자를 지나칠 때 쯤, 그 남자와 인형탈 속에서 눈이 마주치는 그 시점에, 정확하게 내가 그 남자에게 발을 걸었다.

그 남자는 인파 속에서 고꾸라 넘어졌고 아이도 덩달아 넘어져서 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손과 무릎이 까졌음에도 우는 아이를 달래겠다고 안아들었다. 다정했다. 그치만 나에게만 오는 다정이 아닌걸...

인형탈이니까 착한 척 몇 번, 미안하다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이렇게라도 복수를 해야지... 조금이나마 속이 후련해졌다.

이어지는 내용은 '내머릿속에지진정'님 작품에서 확인해주세요! 🔥🫶

_ 글자수 : 3364자

_ 미리별유치원 라벤더반 아지 2023. 06. 05 숙제 제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