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 임무

[미리별유치원 : 어린이날] 놀이공원 그 남자

나는 이제 어엿한 대학교 3학년이 된 22살, 김여주다. 나도 성인이 되면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성공한 커리우먼으로 살 거라고 다짐하며 공부했던 지난 날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다짐 따위 없다. 왜냐하면...

"놀이공원에서 인형탈 알바라니..."

매번 쓰는 인형탈도 다른데 오늘은 햄스터인지 다람쥐일지 모를 탈을 쓰고 퍼레이드를 진행 중이다. 웬일로 시급이 올라간다는 소식에 솔깃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어린이날이라서 놀이공원이 생지옥과 다름 없었다.

"시급을 안 올리는 게 악덕 사장이라고 부르긴 하겠다..."

퍼레인드 진행 중이라 가끔 펜스를 넘어와서 인형에 달라붙는 어린 아이들을 밀치지 않고 잘 달래며 보안 요원이 제지할 때까지 기다리기. 손인사를 하며 직원들과 발 맞춰 걷기. 쉬워보이지만 성수기인 5월이라 더 지치는 작업이었다.

이번이 벌써 몇 번 째 아이들이 달라붙는 건지. 정확히 네 번째다. 펜스는 어린이들 키에 맞게도 이중으로 해야 될 거 같은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애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큰 인형탈을 쓴 내가 넘어질 것만 같았다.

"어... 어어...!"

"어린이 친구들~ 이렇게 싸우면 못 써요~"

그때 보안요원이 오기도 전에 훤칠한 남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제지했다. 남자의 옆에는 작고 오밀조밀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가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마자! 너네 빨리 드러와아-"

남자 덕분에 나는 넘어질 뻔 한 걸 모면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에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들자 세상에... 캐스팅 자기 키만큼 받아봤을 것 같은 미남이...

펌끼가 살짝 있는 검은색 머리에, 주먹보다 더 작은 얼굴, 그 얼굴에 다 들어가는 반짝거리는 눈과 오똑한 코, 두꺼운 입술. 진짜 조각상처럼 생긴 사람이었고 키는 어찌나 큰지, 어깨는 어찌나 넓은지, 게다가 다정하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하긴... 저렇게 완벽한데 결혼 안 했을리가 없지... 애기 귀엽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퍼레이드 행진에 다시 임했다. 멀어져가는 그 남자와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말이다.

그렇게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일도 점점 머릿속에서 지워져갈때 쯤, 나는 놀이공원 알바와 카페 알바도 병행하고 있었는데 카페는 유독 어린이들이 많이 오는 카페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띠링_

"어서오세요~"

비록 모자를 썼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마주쳤던 그 황홀한 미남이라는 걸. 이 다정한 목소리부터, 숨겨지지 않는 우월한 피지컬, 저 작은 아이까지. 확실했다.

"현서야- 뭐 먹을래?"

"움... 나 쪼꼬우유!"

"알겠어-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수제초코우유 하나 주세요."

"네-"

"모야. 또 아메리카노 머거?"

"응- 현서는 아직 어려서 안 돼요~"

"치..."

"진동벨 가지고 편하신데 가서 앉아계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 사람 와이프는 전생에 무슨 짓을 했길래... 진짜 복에 겨운 사람이겠지? 부럽다.

음료가 다 준비되고 나는 그래도 이왕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사심 한 스푼 섞어서 서비스로 쿠키도 같이 올려놓았다.

쿠키랑 음료를 같이 놓고는 진동벨을 울리자 남자가 일어나 픽업대 쪽으로 왔다. 이제 더는 볼 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다- 싶었다.

남자와 아이가 다 먹었는지 일어나 다 먹은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트레이를 받으니 그 남자가 아까와는 다르게 환하게 웃으며 잘 먹었다는 소리를 했다.

"잘 먹었습니다. 서비스도 감사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네. 손님도요~"

남자와 아이가 나가고 트레이를 정리하려고 봤더니 아까 내가 놓지 않았던 메모지가 트레이에 올라가 있었다. 이거 때문에 웃었던 건가, 싶어 내용을 읽어보니...

'010-xxxx-xxxx. 제 번호입니다. 연락해주세요. 연락 안 하시면 저 여기 매일 올 겁니다!'

자자,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저 사람은 지금 애까지 딸린 유부남이야. 근데 왜 나한테 번호까지 주면서 연락하라고 하지?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면서? 설마 장기매매 이런 건가? 아니야. 요즘 세상에 무슨... 근데 저 얼굴이면 가능할지도...?

"연락을... 그래도 해봐야 되나..."

"그 얼굴에 왜 나한테 플러팅이지...? 애까지 있으면서?!"

조금 크게 나온 거 같은 목소리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고 그 메모지는 내 바지 안에 소중히 접어넣었다. 그리곤 마저 트레이를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뭐. 연락해보지 뭐..."

그 이후로 우리는 연락을 하게 됐고, 그 남자가 내가 알바하는 요일과 시간에 맞춰서 카페에 찾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남자의 곁에 그 애는 없었지만 나는 아내가 돌봐주는 거겠니- 하고 생각했다.

"오늘은 언제까지 해요?"

"오늘... 한 6시까지?"

"끝나고 뭐 해요? 영화 안 볼래요?"

"범죄시티 3 나왔던데."

...뭐야. 어린 애까지 있으면서.

"...시즌 1, 2를 다 안 봐서..."

"그럼 다른 거 볼까요?"

"친구랑... 저녁 약속도 있어서."

"그래요? 그러면 언제쯤 시간 되는데요?"

"...시간 나면, 연락 할게요."

"안 할 거잖아요. 그 말 다섯 번은 더 들었어-"

솔직히 괘씸했다. 애까지 있는 거 보니 유부남일 확률이 90%는 넘는데 나한테 이렇게까지 한다고? 아내가 알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지. 용안은 마음에 들지만 한순간에 가정파탄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저 뭐 물어봐도 돼요?"

"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궁금해요?"

"네..."

"관심 있는 사람한테나 이렇게 하지. 누구한테 하겠어요?"

...이 남자 아주 단단히 미친놈이었다. 밤길 조심 하세요. 뒤에서 확 밀어버릴라.

그러다 정말 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남자가 말하길, 저번에 봤던 그 애랑... 이름이 현서였나? 내 알 빠 아니지만. 아무튼 그 애랑 X랜드, 그러니까 내가 인형탈 알바했던 그곳에 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퍼레이드까지 본다고 하니... 기회였다.

조금 더 무리해서 저녁 퍼레이드 인형탈 알바 자리를 차지하곤 그 날이 오기만을 세기도 수십번, 드디어 디데이였다. 첫만남은 돈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그 남자와 아이를 찾았다.

퍼레이드가 진행된 지 10분이 지났을까, 남자가 보였다. 그 아이와 같이 손도 꼭 잡고 말이다. 옳다쿠나.

내가 그 남자를 지나칠 때 쯤, 그 남자와 인형탈 속에서 눈이 마주치는 그 시점에, 정확하게 내가 그 남자에게 발을 걸었다.

그 남자는 인파 속에서 고꾸라 넘어졌고 아이도 덩달아 넘어져서 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손과 무릎이 까졌음에도 우는 아이를 달래겠다고 안아들었다. 다정했다. 그치만 나에게만 오는 다정이 아닌걸...

인형탈이니까 착한 척 몇 번, 미안하다며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고개를 숙이자 남자는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이렇게라도 복수를 해야지... 조금이나마 속이 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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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글자수 : 3364자

_ 미리별유치원 라벤더반 아지 2023. 06. 05 숙제 제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