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에필로그 (12) 이 후, 석진 이야기(3) fin.

시간이 흘러, 지민의 발인을 하던 날..

장지에 닿자, 장례를 치르던 3일 동안 울지 않던 윤이 뒤늦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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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흑...

국은 윤이 자신에게 기대어 울 수 있도록 윤이의 가슴에 기대어 주었고,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석진은 둘을 한 품에 안아주었다.

국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석진의 손에 느껴지는 떨림을 통해 국이도 울고 있다는 것을 석진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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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엄마, 아빠 울어...?

윤이와 국이가 우는 모습을 보자 아이들은 울먹울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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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주

얘들아, 엄마 아빠 우니까 이상해...? ㅎㅎ 이모랑 잠시 산책할까..?

여주는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이야기 나누며 언덕 위 벤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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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주

다녀올테니까, 윤이랑 국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게 도와줘~

여주는 석진을 보며 말하자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는 벤치에 앉아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윤이의 눈물이 약간 잦아들 무렵,

석진은 여주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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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여주야, 너도 지민이 가는 길 같이 해야지...

석진은 왠지 가녀려보이고 추워보이는 여주에게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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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지금처럼.. 내 곁에 계속 머물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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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

'이제는 나, 너에게 당당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여주는 살며시 미소지으며, 석진이 걸쳐준 겉옷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손으로 여몄다.

석진이와 여주는 사이에 아이둘 손을 잡고는 넷이서 천천히 언덕을 걸어내려왔다.

그 사람의 삶이 어땠는 지는 그 사람이 죽고 나서 나타난다고 했던가..

지민의 죽음 이후 K국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는 그가 유일하게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했던 윤이와 국이...

자신의 불분율을 깨고 지민을 도왔던 태형이...

그리고 절대로 녹지 않을 것 같던 지민의 마음을 녹였던 석진과,

그가 사랑했던 윤이를 살려낸 지수가 함께 그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비록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이후에 그가 선택한 삶은 의미가 있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홀로 걸어가는 전직 프랑스 형사 겸 지민의 든든한 지원자였던 빅토르 태형과

각각 아이들 손을 하나씩 붙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윤이와 국이,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는 여주가

석진의 눈에 들어왔다.

석진은 누군가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의 대표로,

여주는 어린 시절 잊었던 꿈을 글로 풀어내는 작가로,

윤이와 국은 베이커리를 경영하며 자녀들과 단란한 가정을 이룬 부부로,

각자 나름의 꿈을 이루며 지내고 있다.

거리를 떠돌던 노숙자의 모습도, 불안한 장래에 재능을 포기하려던 모습도, 살기 위해 도망친 뒤 힘들어하던 모습도, 기댈 곳 없이 외롭던 모습도,

그들의 과거는 이제는 그들에게 작은 일부분일 뿐,

지금의 삶은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었다.

우리의 삶은 절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시작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시작 되었을지라도...

혹은 우리의 삶이 우리를 원치않는 곳에 데려다 주었을지라도,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 지에 달렸다.

나의 삶을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에 어떤 선택을 할지..

나의 잘못을 깨닭았을 때에 어떤 선택을 할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을 통해 우리는 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처음이 어찌 시작되었건, 나를 선택하고 경영하며 만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나 뿐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삶을 책임지는 것 또한 나 자신뿐이다.

키다리 아저씨 fin.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 내 머릿속에 지진정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