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거짓에게
제 1 장. 친애하는 거짓에게


차갑고 적막하고 꿉꿉한 그곳에 오랜 먼지를 뒤집어쓴 네가 두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앉아있었다 열린 문을 타고 빛이 새어들어도 그 빛은 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도여주
" 너 여기서 뭐 해? "


최연준
" ....나 같은 애도 행복해질 수 있어? "


그 자리 그대로 무너져버린 네가 내게 하염없이 행복만을 물었다.

지금 너의 얼굴을 본다면 함부로 그 애처로운 말에 답을 던질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만큼 간절하게 그 뻔한 거짓을 원하고 있는 너에게 내가

함부로,


도여주
" ..응. "


최연준
" 나 같은 애도 행복해질 수...있어? "


도여주
" 행복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여기서 나가자 "

헛된 희망을 대답했다.

으아앙-!!

다섯 살 난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가득 채우고 아이의 아버지는 헌혈증서를 내밀며 의사를 향해 애원했다

도재협
" 제발 제 딸아이 수혈 한번만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선생님 "

도재협
" 저 헌혈도 많이 할 만큼 튼튼합니다 그러니까, "


의사
" 그땐 괜찮으셨을지 몰라도 지금은 안 됩니다 보호자 분이 받으실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

여자아이는 변종 FH-A형이라는 특수 혈액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 아이에게 세 살 무렵부터 시작된 몸 속의 원인 모를 출혈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전국이 아닌 전세계의 혈액은행을 다 털어도 구하기 힘든 혈액에 수혈을 제 때 받을 수 없었던 아이의 몸은 점점 무너져 갔고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피라도 수혈해 달라며 매달렸지만 나이가 있는데다 혈압까지 좋지 않은 아버지의 부탁을 병원이 더 나아가 의사라는 사람이 들어줄리가 없었다


도여주
" 아...빠... "

도재협
" 아가...우리 아가 걱정하지 마 아빠가...아빠가 우리 아가 꼭 안 아프게 해 줄게 "


도여주
" 아...빠..? "

도재협
" 아가 왜 나왔어 어지럽다며 "


도여주
"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


딸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택한 방법은 그 지독한 재앙을 다른 누군가에게 억지로 떠넘기는 것이었다.

도재협
" 이 아이 너랑 혈액형이 똑같아 이제 언제든 수혈받을 수 있어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


도여주
" 아빠 미쳤어..?! 살아있는 사람을 납치한 것도 모자라서 피를 뽑아서 날 주겠다고? "

도재협
" 걱정하지 마 아빠가 다 조사했는데 이 애 천애고아라 어디서 신고 들어 올 일도 없대 "


도여주
" 아빠!!!!!! "

도재협
" 도여주!!!!!! 당장 방으로 다시 들어가!!!! "

겨우 여섯 살, 아무런 힘이 없는 아이는 다른 누군가를 이 재앙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아버지를 말리지도, 도망치지도 못 한 채로 이 끔찍한 지옥의 공범이 되었다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박연우
" ....구해줘 "


도여주
" ......... "


박연우
" 더이,상 내겐 남,은.. 피가, 없어.. "


박연우
" 그러,니까....나 좀..나,..좀...구해줘... "

그게 여자아이가 동조해 저지른 첫 살인의 마지막 핏방울이었다.

구해줘....제발 구해줘....-

헙-!!!


도여주
" 하아..하아.....짜증나. "

미치겠네 진짜-

악몽은 언제나 되풀이 되며 내가 아무것도 잊지 못하도록 그 모든 것들을 뇌의 한가운데 가장 크게 못을 박았다 이제는 좀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도여주
" 아직도 한참 멀었네 도여주. "

니가 한 짓이 그런거야 절대로 익숙해질 수도, 익숙해져서도 안 되는 끔찍한 인간이하의 악질.

나는, 너의 그 나약함을 경멸해 도여주.


터벅터벅-

여학생 1
" 와....쟤 완전 존예다..말 걸어볼까? "

여학생 2
" 미쳤어? 너 쟤한텐 절대 말 걸지 마 "

여학생 1
" 왜? "

여학생 2
" 너 쟤 뒤에 누가 있는지 몰라? "

여학생 1
" 누가 있는데? "

여학생 2
" 전교 미친개 최연준 "

여학생 1
" 헙...!! "

여학생 2
" 쟤가 바로 그 미친개 유일한 발작버튼 도여주잖아 바보야 "

여학생 1
" 나 방금 죽을 뻔한 거지..? "

여학생 2
" 그러니까 절대 저얼대로! 도여주한테는 가까이 가지 마 "

나의 헛된 희망을 믿고 그곳에서 나온 너는 나의 껌딱지가 되었다 나에게서 네가 찾던 행복을 받으려는 듯이 너는 분리불안이 있는 강아지마냥 수시로 나를 찾았다



최연준
" 쮸야! "


도여주
" 내가 너 땜에 학교생활을 못 하겠어 아주!! "


도여주
" 내가 나한테 오는 애들 겁주지 말랬지!!! "


최연준
" 그치마안!! 질투나는 걸 어떡해.. "


포옥-


최연준
" 이러고 조금만 있어줘 "


도여주
" ..왜 또 불안해? "


최연준
" 아니 좋아서, 네가 너무 좋아서 "

나는 어느새 욕심이 넘쳐 너의 행복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