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음흉한 살기를 머금고
#01화. 죽음은 언제나 불공평하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다만 죽음보다는 공평할 뿐이지. 그게 다야.>>

<<삶은 공평하지 않다. 다만 죽음보다는 공평할 뿐이다.>> - 윌리엄 골드먼 -

그렇다. 나는 여태껏 강자가 약자를 한없이 무시하고 짓밟는 불공평한 삶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하지만 그런 고단한 삶보다도 죽음은 끝없이 불공평하기만 하다. 결국 공정하다 믿어왔던 죽음조차도 강자가 늘 위에서 지배하고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강자와 약자 사이의 죽음을 주도하는 정의롭지못한 재판관이 되어 많은 죄없는 이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그것도 단 하룻밤 사이에.

타닥 타닥 -

고요한 분위기속에서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는 유일한 메아리가 되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간간히 들려오는 자그마한 말소리조차도 역시 업무를 위한 일부일뿐이며, 우리에겐 자그마한 사담조차 허용되지않았다.

결국 우리가 회사라는 강자에게 지배당하고 있는거니까.


윤지성
"여주씨, 부장님이 잠깐 부르시던데."

김여주
"부장님이 저를요…?"

최대한 조용히한다고 죽였던 말소리지만 그조차도 주위 사람들에겐 그리 어렵지않게 귀에 도달하여 내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윤지성
"저쪽 사무실에 계실꺼야. 분위기 안좋아보이던데 조심하고."

김여주
"네…, 감사합니다."

윤대리님을 통해 갑작스런 부장님의 부름을 받은 나는 손에 한움큼 쥐어진 서류를 내팽겨치고 조용히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여주
"어… 부장님, 저를 찾으셨다고"

부장님
"아, 여주씨 왔구나. 내가 지금 바빠서 짧게 말하고 끝낼게."

부장님
"여주씨, 미안하게됬지만 해고야."

김여주
"…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온 사무실에서 긴장감을 껴안은채 전해들은 한마디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해고라니-

김여주
"어떻게 된건지, 설명이라도…."

부장님
"다 끝난 사람이 뭔 말이 이렇게 많아, 짐 빼고 알아서 잘 나가. 나 바쁘니까 부르지말고."

말이 끝나기무섭게 사무실문을 쾅 닫고 예민하게 나가는 부장님을 보자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김여주
"이번달 성적도 좋았고, 일도 열심히 했는데 뭐가 문제였지…?"

해고됬다는 격렬한 슬픔에 동조할 시간따위 내겐 존재하지않았다. 그저 억울한 내 해고사유를 천천히 되짚어볼뿐.

김여주
"없어…."

한참을 머릿속을 뒤적거리며 찾아낸 결과는 '없음'이였다. 어쩜 이리도 불공평한걸까. 제대로된 이유조차 논하지못한채 나는 답답한 가슴을 움켜지고 사무실에서 나섰다.

아까보다 한껏 초췌해진 모습으로 짐을 정리하는 내게 돌아온것은 동정하는 시선들뿐이였다. 그런 내 꼴이 우스워 피식 작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김여주
"…."

아무말않고 양손가득 쥐어진 회사물품들을 힘겹게 든채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이였다.


윤지성
"…무겁겠다, 여주씨. 들어줄게."

힘겨워보이는 나를 발견한 윤대리님은 내 짐을 들어주셨고 말할 힘조차 부족했던 나는 고개를 내저은채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을 나왔다.

이유라면 딱히 없었다. 그저 날 향한 연민가득한 두 눈을 보고있노라면 내가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 되어버리는것 같아서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가끔씩 영화나 드라마속에서 한껏 처량한 모습으로 정리해고를 당한 슬픔에 제 몸도 못가누는 장면들을 종종 봐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모습들은 참으로 처참하며 나약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내가 슬픔을 외칠수록 힘있는 자들은 배꼽을 잡으며 마음껏 비웃을테니까. 함부로 진심을 논할수조차 없다. 참으로 비루한 현실이니까

"이번 역은 …."

생각에 잠겨있다보니 어느새 내려야할 역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몸을 가뿐히 일으켜 조심히 내렸다.

으스스한 골목길의 분위기는 한정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음침했고 나는 내색하지않은채 길을 걸어갔다.

뚜벅 뚜벅 -

그순간 나는 들었다. 최대한 내 발걸음에 맞혀 소리를 죽인채 따라오는 걸음을. 나는 수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더욱 빨리 걸어갔다. 뭐, 딱히 피한다기보다는 마주쳐서 좋을건 없을것같았기 때문이다.

뚜벅 뚜벅 -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발맞춰오는 걸음소리에 나는 평범한 스토커나 괴한이 아님을 눈치챘다.

이건 정말 한두번 이런 일을 해본 사람이 아니였다. 마치 이런 분야에서 전문인것처럼 능숙하며 신중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져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순간 내게 더 가까이 붙으려한 수상한 이를 피해 나는 옆으로 살짝 피했다.

휘익 -

순식간에 내가 있던 자리를 힘차게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나는 예사롭지않음을 눈치채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저 사람은 나를 죽이려하는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