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물방울

17_괜찮아.

[예린 시점]

사람들은 이상하다.

누군가 그들이 무서워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길 바라는 선을,

기어코 넘으려 한다.

나 같음 그런 곳에 힘쓸 바엔 자기 삶에 더 신경쓰거나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기 위해 애쓸 것 같다.

자기 하나 살아가기도 벅찬 삶일텐데, 뭘 그렇게 남까지 챙기려 들까.

챙겨도 " 적당히 " 라는 게 있는 법.

적어도 그 선만큼은 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그어놓은 선 안에서, 나는,

혼자만의 감정을 다 털어놓는다.

그래서 처절함을 견뎌내기 위해 만든 붉은 물방울의 선도,

어짜피 난 왜 그랬는지 알기에,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선 안에,

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그냥 무조건 왜 그랬냐고 묻지도 않은 채, 그러지 말라고만 한다.

그럴 때마다 해주고 싶은 말은,

" 어쩌라고 "

" 날 이렇게 내몬 건, 너잖아 "

.

점점 지쳐만 가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놓고,

이제 와서,

지금도, 내 구역을 " 침범 " 했으면서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내가 여태 붉은 선을 넘는 것을 허락한 사람은 오직 나의 빛, 아리 뿐이다.

아마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럴 거라고 확신했다.

간만에 일찍 도착한 교실.

서먹한 여자애들 몇몇만 있는 교실에 조용히 내 자리로 가 가방을 내려놓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플레이 리스트에 있는 곡을 골라 듣는다.

가끔 일찍 도착할 때마다 반복되는 루트.

무감정한건지, 별로 지겹다는 느낌도 없다.

왜냐, 노래만 있다면 버틸만 하니까.

아리를 제외하고 털어놓을 사람이 없기에,

난 항상 음악으로 스스로를 지탱해왔다.

그리고 한 5분 뒤에 교실 문이 시끄러운 듯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열린다.

들어오는 한 사람.

소정이다.

김소정 image

김소정

어? 오늘 일찍 왔넹ㅎㅎ

날 보고는 방긋 웃더니 말을 건넨다.

난 차갑던 표정을 숨기고 웃어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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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웅ㅎㅎ 오늘 좀 일찍 도착했엉

이라며 답해보였다.

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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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비

옌니 일찍 와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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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나

안녕~~~

은비와 유나가 들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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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비

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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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할루~~

곧이어 은비와 예원이도 들어왔다.

조례가 끝나고 아이들이 소정이에게로 몰려들었지만

소정이는 머리가 아프다며 그들을 밀어냈고

나마저 자리로 돌아가자 자리에 엎드렸다.

아침에 그렇게 쌩쌩했던 아이이기에, 처음엔 아주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거짓이 아닌 것을 증명하듯 힘없이 엎어지는 소정이에 조금의 의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정예린 image

정예린

' 많이 아픈가...? '

그저 걱정만 되었다.

수업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늘 그렇듯 모두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나에게 아무런 눈길이 쏟아지지 않을 때

그 때 비로소 나는 내 안의 표정을 꺼낸다.

그리고 작게 들려오는 소리.

정은비 image

정은비

: 예린아..!

은비다.

날 부른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날 바라볼 것이고, 난 당연하게도 내 안의 표정을 숨기고 방긋 웃어보인다.

정예린 image

정예린

: 응?

정은비 image

정은비

: 몇 쪽이야...?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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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 ㅋㅋㅋㅋ교과서 108p, 프린트 26p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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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비

: 고마워!

그리고 이내 은비는 내게서 눈길을 거두었고

난 다시금 내 안의 표정을 꺼내었다.

눈치보고 숨기며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학교가 끝나고, 소정이는 아이들에게 나와 단 둘이 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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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 무슨 일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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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 할 얘기 있나? '

평소 따로 가던 적이 없던 소정이라 더욱 뭔가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뭔가를 뱉어내려는 듯 움찔거리는 소정이의 입.

말하기 좀 망설여지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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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 ..할 얘기 있어? "

먼저 입을 열었고, 소정이의 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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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 어...그냥ㅎ "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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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 이제 어디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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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 나는 뭐, 그냥 학원 갔다가 집 가지 "

그렇게 우리 둘은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뭔가 연락이 있었다는 걸 알리는 알람.

소정이에게서 온 것이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알림을 터치했고, 화면이 바뀜과 동시에 의아함이 들었다.

왜냐면, 소정이에게서 온 메세지는 굉장히 조심스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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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예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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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괜찮으면 나 뭐 좀 물어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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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_뭐 물어볼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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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대답하기 꺼려지면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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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_일단 질문 보고 결정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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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요즘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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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_어?

순간...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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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아니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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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무슨 일 있나 싶어서

나 분명 잘 숨겼는데....어떻게 짐작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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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_아.... 별 일 없어

일단은 아무일 없다고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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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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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괜찮아?

괜찮냐고 물어본다.

난 항상 그래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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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_응 괜찮아

라고 답했지만 사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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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하나도.... 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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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진짜 괜찮은 거 맞지?

소정이는 나에게 한 번 더 되물어주었다.

마치 내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듯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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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_엉엉 괜찮다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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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린

_갑자기 왜 그래ㅋㅋ

또다시 기회를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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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정

_아냐ㅎㅎ 내일 봐~~

나를 지나쳐가고

나와 눈 마주치고

나와 말을 섞은 이들 중,

소정이는 아리 이후 처음으로 내 속내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다가오는 소정이를 밀어내버렸다.

선 밖으로.

맘 같아선 그냥 의지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또 상처받고 버려질까,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나는 맘에도 없는 거짓말을,

거짓말이지만 내가 항상 하는,

" 괜찮아 "라는 말을, 다가와준 소정이에게도 건네

소정이를 선 밖으로 밀어냈다.

소정아

너도 아직은....조금 일러.

우리 더 깊어지면, 그러면 그때 이 선을 통과하려 해줘

지금은.... 나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야.

괜찮아?

- 괜찮아.

[17_괜찮아.] the end

밤 작가 image

밤 작가

이번 에피소드 망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