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가족
러브 미로 05


“태, 태형아.”


김태형
“저건 또 뭐야.”

김태형의 시선이 내게서 여자에게로 넘어갔다.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한 번 훑어보더니 한쪽 눈썹을 삐뚤게 치켜올려 쳐다본다.

나는 김태형과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폭 내쉬며 책을 덮었다. 김태형이 들어온 이상 공부는 더 안 될 테고, 저 여자를 그대로 두면 귀찮은 일이 생길 터이니 빨리 내보내야 했다.

여주
“빨리 나가세요.”

“⋯안녕, 태형아? 나는 여주 과외 선생님인데, 태형이도 여주랑 같은 학교 다닌다지? 여주랑 같이 수업 듣는 건 어때?”

여주
“나가시라니까요.”

“어⋯ 저기, 저기 앉을래? 책은 없어도 되니까 먼저 앉,”


김태형
“나가라잖아.”

여자의 손이 김태형의 팔뚝에 닿자마자, 김태형은 여자의 체구도 생각하지 않고 세게 내쳤다. 뒤로 밀려난 여자가 추하게 넘어졌지만 김태형도 나도 개의치 않았다.


김태형
“암묵적으로 학교에선 모르는 척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우리?”

김태형의 성질은 급했다. 엉거주춤 자세를 잡고 있는 여자가 보이지도 않는지 대뜸 내 책상에 팔을 짚더니 얼굴을 들이밀곤 말을 꺼냈다.

여주
“⋯저 사람 나가면 얘기해.”


김태형
“아직도 안 나갔어?”

얼굴을 구긴 김태형이 뒤를 돌아 여자를 쳐다봤다. 김태형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나는 김태형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여자의 하얗게 질린 표정을 보니 대충 예상이 갔다.

“다, 다, 다음 시간에 보자, 여주야⋯!”

짤렸다는 뉘앙스로 내뱉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 건지, 자신의 부러진 굽까지 챙겨가며 기어코 다음 시간에 보자는 말을 한다. 여자가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히고 난 뒤에야 김태형은 다시 나를 바라봤다.

여주
“⋯서로 말 건 적 없잖아.”


김태형
“날 보는 눈빛이 너무 뜨거워서 모르는 척해 줄 수가 없더라고. 그렇게 아는 척하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여주
“⋯.”

김태형의 잔뜩 찌푸려진 미간을 보고 있자니, 내 얼굴도 저절로 구겨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다, 김태형에게 손목을 잡혀버렸다.


김태형
“뭐해.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

여주
“고작 그런 걸로 따로 얘기하자고 할 애 아니잖아, 너. 용건만 간단히 말해.”


김태형
“⋯.”

몸을 돌려 김태형을 똑바로 바라보니,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졌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김태형의 얼굴은 빛을 따라 콧대를 중심으로 그림자가 져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보였다.


김태형
“⋯박지민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

여주
“⋯뭐?”


김태형
“그 새끼 질 안 좋은 새끼야. 가까이 하지 마.”

어이가 없었다. 턱 끝까지 ‘니가 뭔데.’ 라는 말이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박지민과 친하지도 않았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인 걸.

여주
“뜬금없이 뭐라는 거야. 화양고에 질 좋은 새끼가 어디 있어?”


김태형
“⋯.”

여주
“비켜. 내려갈 거야.”

김태형의 팔뚝을 툭 밀어내니, 아까 여자를 내쳤던 것과는 다르게 힘없이 밀려갔다. 나는 여자가 넘어지는 바람에 엉망이 된 매트를 발로 정리하고는 아직도 가만히 서 있는 김태형을 힐끔 바라보다 이내 방을 나왔다.

아직도 나는 김태형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가까운 듯, 먼⋯ 가족인 듯 가족 아닌 사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