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가족

러브 미로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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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아뇨. 제가 들은 건 없는⋯.”

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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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이따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따라 타이밍이 왜 이리 그지같을까. 한쪽에는 태블릿을, 다른 한쪽에는 밥그릇을 두고 식사하며 인강을 보고 있으니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김남준이 들어왔다.

김남준은 원래 밤 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새벽에 들어오는데⋯. 웬일로 이른 시각에 들어왔다. 하필 내가 밥 먹을 때 마주친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여주

“⋯저기.”

냉장고에서 이온음료를 꺼내 가는 김남준을 불러세웠다. 너무 작게 말해서 지나치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과는 다르게 김남준은 내가 말을 내뱉자마자 자리에 멈춰섰다.

여주

“과외 선생님을⋯ 바꾸려고 하는데요.”

무표정한 김남준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김석진도 김석진이었지만, 김남준도 김남준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대놓고 나를 싫어하는 티를 내니, 지금까지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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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그래.”

여주

“아, 새로운 선생님은 제가 찾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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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맘대로.”

짧다. 지나치게 짧다. 돌아오는 답변이 너무나도 짧았다. 딱히 더 말할 것이 없어 입을 꾹 닫고 다시 숟가락을 드니, 식탁을 지나쳤던 김남준이 아. 하며 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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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친구 좀 가려 사귀어.”

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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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가짜인 거 티내지 말고.”

달그닥. 계단을 올라가는 김남준을 바라보던 내 손에서 숟가락이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에어팟을 통해 들어오는 인강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가짜인 거 티내지 말고.’

여주

“⋯나도 아는데.”

입맛이 떨어졌다. 밥이 절반이나 남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짜.’ 진짜인 척 굴려고 했던 적도 없지만, 그 말은 꽤나 크게 가슴에 꽂혔다.

잡생각이 많아지니 공부가 손에 안 잡혔다. 펼치지도 않은 책을 도로 가방에 집어넣고는 침대에 몸을 날렸다. 비싼 값 하는지 침대는 뛰어든 내 몸을 받아낼 정도로 부드러웠다.

카톡. 카톡.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아까 김태형이랑 얘기한 이후에 무음을 풀어놨는데, 그 덕분에 이제야 알림 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친구를 사귄 적도 없으니, 연락 올 사람은 없었다. 또 스팸인가 싶어 차단하려 휴대폰을 가져와 화면을 키니, 예상치 못한 사람의 이름이 화면 중앙에 떡하니 떴다.

여주

“⋯박지민?”

부재중 전화 4통, 카톡 5개. 처음 본 사이에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박지민은 거리낌이 없었다.

‘⋯뭐야, 얘는.’

누가 보면 나랑 가까운 사이인 줄 알겠다. 박지민의 카톡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다시 박지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짧은 고민도 없이 박지민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카톡에 답장으로 그저 “잘 자.” 한마디만 남긴 채 휴대폰을 덮었다.

여주

“피곤해⋯.”

오늘 하루 한 것도 없는데 피곤이 온몸을 적셨다. 베개에 머리를 댄 채 팔로 눈을 가리니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조용히 살 수 있길⋯. 아무도 듣지 않는 소원을 바라며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