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가족

러브 메이즈 07

여주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죄송해요, 제가 오늘 늦게 일어나서 아침은 못 먹을 것 같아요. 우유 감사합니다.”

지각이다. 아니, 지각인 게 틀림없다. 양말을 신으며 시계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나는 식탁 위에 여러 반찬을 꺼내는 아주머니께 인사와 사과, 감사를 동시에 전하며 따뜻한 우유 한 컵을 한 번에 들이켰다.

가방을 대충 어깨에 들쳐매고 뒤를 돌아 부엌을 빠져나가니,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그의 가슴에 콩 머리를 박았다.

여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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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

김태형. 흐트러진 앞머리를 매만지던 내가 시선을 들어올리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시선으로 내려다 보는 김태형의 얼굴이 보였다.

‘시간도 없는데 얘는 왜 교복도 안 입고 있어.’

부스스한 머리, 후줄근한 옷차림. 누가 봐도 지금 일어났다는 티가 팍팍 났다. 무미건조한 시선이 끈질기게 따라붙어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하고 지나치려하니, 한 걸음 멀어지기가 무섭게 김태형에게 손목을 잡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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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어제 내가 한 말 잊지 마.”

여주

“⋯.”

뭐래. 탁, 나는 신경질적으로 김태형의 팔을 내쳤다. 고작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몇 분 안 되는 시간을 뺏겼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여주

“내가 알아서 해.”

나는 보란 듯이 김태형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언제부터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행히 조례 시간이 돼도 아직 들어오지 않은 담임 선생님 덕에 간신히 아무 일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뭐, 만약 정말 늦었다 해도 모른 척 넘어가셨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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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늦었네?”

계단을 뛰어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으니, 여유있게 도착해 휴대폰을 하던 박지민이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여주

“⋯늦게 일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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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어제 연락이 안 되던데.”

여주

“답장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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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또 할 말이 없지. 오늘 점심 카레라던데, 같이 먹을래?”

여주

“아니. 너 친구 많잖아. 친구들이랑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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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친구? 내가 친구가 어디 있어. 그냥 다 비즈니스로 만난 애들이지.”

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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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래서, 같이 먹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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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박지민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

여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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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 새끼 질 안 좋은 새끼야. 가까이 하지 마.”

순간, 어제 김태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도 강조하던, 그 말. 걔는 왜 이렇게 박지민을 싫어할까 의문이 들기보단 아직까지도 걔의 말을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해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내 표정을 본 박지민은 떨떠름한 눈으로 눈꺼풀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조심스레 물어왔다. 다른 애들은 다 비즈니스라더니,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내심 퍽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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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렇게 싫어?”

여주

“아니야. 그래, 같이 먹자.”

아직 박지민이 꺼림직한 건 맞지만, 굳이 피하고 싶지 않았다. 피하려는 이유가 김태형 같아서. 내가 김태형의 말을 따르려는 것 같아서, 일부러 박지민에게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박지민은 의외의 답변에 잠시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오늘 점심 시간 재밌겠다.” 라는 이상한 말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