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가족
러브 미로 10


아 놓쳤다. 매점에서 나오는 학생들에 밀려 박지민과 멀어지고 제2도서관까지 휩쓸려 와버렸다.

제2도서관. 여느 도서관의 역할을 하는 제1도서관과 달리 도서관의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곳.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게 무얼 말하는 거냐 묻는다면 소수 아이들의 아지트로 쓰인다 답할 수 있다. 가령⋯⋯.

"아 시발. 야. 내가 망 잘 보라고 했지. 좆같게 너 때문에 다 들켰잖아."

"하, 하지만 선생님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셔서⋯⋯."

⋯⋯저런 애들에게 말이지.


괜히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 이곳은 계급에 따라 먹고 먹히는 게 당연했다. 약육강식. 피식자는 포식자에게 먹힐 수밖에 없다.

"너희 회사 이번에 주식 많이 올랐더라? 어머니께서 노력 좀 하셨나 봐-."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칭찬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곳에서 '어머니께서 노력 좀 하셨다' 라는 말은 어머니가 다른 곳에 몸 열심히 팔고 다녔다 보다- 라는 의미로 쓰인다.

애들한테 카더라 라는 식으로 접해보긴 했는데 이렇게 일방적이고 직접적으로는 처음 들어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러운 말에 당사자가 아닌데도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아니야. 회사 경영 체제가 잘 자리잡혀서 그런 거야."

"이열~ 얘 방금 뭐라 그랬냐. 회사 경영 체제? 우리가 버린 거 받아먹으면서 생활하는 회사가, 경영 체제란 게 있다고?"

뒤이어 한껏 비웃는 소리가 도서관을 메웠다. 가족을 모욕하는 말을 들은 남학생의 분노 어린 목소리도 들렸다.

"부모 잘 만나서 이득만 본 새끼들이 뭘 알아!"

"우리 성현이, 뿔났어? 거기까지만 해. 진짜로 화내면 우리도 기분이 상하지."

"우리 아버지는 어제 나가면 오늘 들어오시고 오늘 나가면 내일 들어오셨어.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회사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게 어찌나 가슴 아프게 들리던지.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차가웠다.

"온갖 비리란 비리는 다 저지르면서 깡패 같이 가난한 사람들 약탈하기만 한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잘났는,"

"거기까지만 하라고."

남학생을 둘러싼 네다섯 명의 아이들이 얼굴을 굳히고 다가갔다. 한 명이 발로 남학생을 차면,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쓰러진 남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린다.

고통 섞인 신음이 터져나오고 몇몇의 욕설도 함께 들렸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나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려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약탈해서 이득으로 끌어낸다라⋯⋯.'

저 남학생이 하는 말의 의미를 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어있고,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있는 것. 엄마의 죽음으로 확인받은 사실이었다.

어렸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 그런가. 어쩐지 당하고만 있는 남학생을 지나칠 수 없었다.

복부를 차인 남학생이 마른 기침을 내뱉으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직 몸도 다 일으키지 못한 남학생의 허리를 짓밟으려는 게 보였다.

여주
"그만,"

나도 모르게 상체가 앞으로 나갔을 때였다. 그들을 향해 그만하라 소리치려 목소리를 내니, 내 목소리가 입 밖에 나가기가 무섭게 누군가 어깨를 잡고 방금까지 숨어있던 책장 뒤로 밀었다.

'어떤 놈이, ⋯⋯.'

갑자기 밀쳐진 탓에 휘청이는 몸의 중심을 간신히 잡고 아픈 어깨를 감싸며 날 밀친 당사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주
"⋯⋯!"

그의 얼굴을 본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날 밀친 그는 나와 닿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김석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