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다.

오후 4시

나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김태형이라도, 아니 하필 김태형이라서 이 상황이 싫었다.

000

어떻게 이딴 짓을 해!

내 입술이 부들거리고 떨렸다.

000

친구잖아, 친구라며.

000

난 쟤랑 얘기한 지 고작 삼 일밖에 안 됐어.

000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눈물이 났다.

난 손등으로 볼에서 흐르는 눈물을 벅벅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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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00아.

000

닥쳐!

버틸 수가 없어서, 손을 뻗어 태형이의 뺨을 때렸다.

맞았음에도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태도에,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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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나를 좋아했잖아.

김태형 image

김태형

중학교 때부터, 그렇지?

김태형은 붉어진 오른쪽 뺨에도 웃었다.

난 한 번 더 손찌검을 했다.

000

그랬지.

000

일부러 일진 행세도 해가면서, 너한테 붙어먹으려고 했었어.

000

니가 이런 새끼인지 몰랐으니까.

김태형은 두 번이나 볼을 맞고서도 태연해 보였다.

000

넌 날 무시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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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사랑해, 000.

000

시발, 시발. 다 징그러워 죽겠어.

000

니네 지금 사람 하나 가지고 게임 하는 거지?

000

일주일 동안 누가 먼저 꼬시나, 누가 더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드나 그런 거지?

000

나 아픈 것도 오브젝트로 이용하는 거지?

000

사이코 새끼들...

내쉬는 숨에서 괴물 숨소리가 났다.

차라리 대범하게 강하게 나가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나오던 것처럼 힘주어.

김태형 image

김태형

000, 뭐하는 거야?

링거 바늘을 뽑았다.

드라마에서는 뽑고 달려도 아무 문제 없던데, 직접 해 보니까 손목에 피가 고인다.

잠시 후, 뚝 뚝 떨어진다.

김태형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나를 뚫어져라 봤다.

000

이게 삼 일 안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야?

000

누구한테 시험해봤는진 몰라도, 난 평범한 학생이지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고.

000

난 못 버텨, 힘들어 뒤지겠어. 더 이상 못 버티겠어, 시발 새끼들....

머리가 어지러워져온다.

난 환자복 위에 롱패딩을 걸치고, 무작정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이 많은 상황을 버티기에 내 정신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냥 환자복 소매부터 퍼져 나가는 붉은빛을 보며, 시 외곽으로 한참 걸었다.

여차해서는 강 구경이나 갈 생각이었다.

눈이 겹겹이 쌓여서 신발의 깔창이 자꾸 푹푹거리며 빠졌다.

???

00이?

000

...

고개를 돌려 누가 불렀는지 확인했다.

000

호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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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무슨 일이야, 옷을 그렇게... 세상에. 눈 부은 것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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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여기서 피도 나잖아, 응?

정호석이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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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일단 우리 집에 가자. 아무도 없을 거야, 피가 이렇게 나는데...

000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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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뭐가 문제야.

정호석이 나에게 환하게 웃는다.

나는 홀린 듯이 손을 잡는다.

천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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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여기가 우리 집이야. 좀 좁지만.

호석이는 한 아파트 1층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내 손목에 정성스럽게 약과 뽀로로 밴드를 붙여줬다.

000

뽀로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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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귀엽지, 나 어렸을 때부터 갑자기 다칠까 봐 사놓는 밴드야.

000

호석이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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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나 귀여워?

내 앞에서 애교를 떠는 정호석을 보다가,

갑자기 호석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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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왜 울었어?

나는 상황 설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000

아까 민윤기가 나랑 밥을 먹자고 가던 길이었는데,

000

갑자기 김태형이 들어와서 민윤기랑 말싸움을 하더니.

000

그리고... 그리고.

또 울음이 터졌다.

사람은 한 번 울면 잘 운다더니, 난 이번에 한 달치 눈물을 다 쏟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000

그리고, 그리고 내가 뛰쳐나가려다가.

000

발을 헛디뎌서 김태형한테, 안기는 바람에 민윤기가아.

또 끅끅대는 소리가 나온다.

참으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되나 보다.

애써 눈물을 세게 문질러 닦는데, 호석이가 내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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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그냥 펑펑 울어, 00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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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삼 일동안 그렇게 당했으니 힘들 법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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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그냥 나한테 기대서 펑펑 울고 다 잊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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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오늘 금요일이야, 내일부터 이틀 휴일이니까 푹 쉬고. 그러면 되잖아.

호석이는 나를 토닥이면서 안아주었다.

000

응, 응 호석, 아.

나는 손발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호석이에게 안겨 펑펑 울고야 말았다.

000

호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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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응?

000

많이 우니까 어지럽다.

000

세상이 막 핑핑 돌아. 너도 곧 사라질 거 같아.

000

막 소용돌이가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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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00아.

000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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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다 울고 나면 사진 찍자.

000

눈 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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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뭐가 중요해, 00이는 예쁜데.

000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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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다 울면, 우리 예쁜 배경 찾아서 나가자.

000

아직 눈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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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응. 아직 눈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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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시간이 멈췄나 봐.

000

농담하지 마, 오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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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서 그래.

000

호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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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응?

000

이거 다 꿈이었음 좋겠다.

000

그냥 지원이랑 찬미랑 평소처럼 태형이 좋아하면서.

000

일어나 보니 꿈이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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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00아.

000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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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00아.

000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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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00아.

000

...나 놀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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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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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다 꿈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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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깰 수 없는 꿈이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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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내일부터 새로운 날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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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없던 걸로 하자, 00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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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너무 힘들고 악독한 꿈이면 내가 깨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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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부드럽게 00아, 하면서 깨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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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그러니까 펑펑 울고 일어나면, 눈을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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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털고 일어나서 눈을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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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쏟아지는 눈 아래서 웃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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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올해 첫눈이잖아, 00아.

000

첫눈...

000

첫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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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뭐가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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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다 괜찮아.

000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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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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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난 추한 것들은 카메라에 담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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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눈이랑 00이만 있으면 아름다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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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어여쁘고, 귀여운 사진.

000

...농담도.

000

나도 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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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아름다워,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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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그런 소리 입에 담지 마. 000.

000

호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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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응.

000

나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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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

000

헛소리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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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좋아해.

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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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좋아해, 엄청.

000

...너도 이틀 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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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네가 날 좋아한 건 반 년이잖아.

000

널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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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그 중에 00이는 가장 빛나니까.

000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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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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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눈이 내려서인가봐.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왜 끝부분에 호석이와 오랫동안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을까요?

이번 화는 사실 00이가 3일 동안 받은 고통 때문에,

멘탈이 나가버리는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화입니다.

사람은 이 상태에서 자신에게 기댈 틈을 주는 사람을 굉장히 믿게 돼요.

그 사람이 착하든, 나쁘든 말이죠.

여담으로, 이 글에는 순우리말 언어유희가 있습니다.

호석이는 00이를 '아름답다' 혹은 '어여쁘다'라고 표현하죠,

여기에서 어여쁘다는 과거에 예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쌍하다는 의미였습니다.

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