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다.

물 속에서 일주일

꿈을 꿨다. 눈을 감고 있는데, 바다가 보인다.

한 번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000! 일어나... 기숙학교, 안 가도 되니까. 눈 좀 떠 보자. 응? 00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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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정신, 정신 차려. 부탁이야. 제발. 제발. 제발. 제발... 000, 000.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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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잖아, 새끼야.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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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니야, 내가, 내가 이렇게 만든 게 아니잖아. 나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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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이기적인 놈. 누가 죽어도... 죽어도 외면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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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안 죽어! 제발, 제발 000. 일어나. 안 죽어, 명치 찔린 거 아니래잖아. 괜찮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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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니가 정신 차리고 신고만 조금 일찍 했어도 과다출혈까지는 아니었을 거 아니야!

???

AB형 혈액도 없어? 어떤 항원이라도, 맞으면 가져와!

엄마

아이고, 아이고 00아...!

몸이 덜컹거리며 움직인다.

살아 있어요, 말 한 마디 하고 싶지만 목에 바닷물이 들어온다.

켁켁거리고 뱉어내자 이번엔 모래알들이 들어온다.

나는 힘이 풀리고, 심해로 빨려들어간다.

철썩, 철썩.

바깥의 소리는 들리지만, 나는 인어처럼 가만히 떠다니고만 있다.

어제는 민윤기가, 오늘도 민윤기가 왔다.

그는 매일 부유하고 있는 나를 보고 울기만 한다. 불쌍할 정도로.

끅끅대며 우는 꼴이 가녀려서 손을 뻗어 토닥여주고 싶어도, 손은 물 속에 깊이 잠겨 있다.

그는 매일 내 앞에서 혼잣말을 하다 사라진다.

병원의 면회가 시작되는 9시부터 끝나는 7시까지 계속 나만 보고 있다.

학교는 안 가나? 참, 방학이지.

오늘은 이런 말을 나에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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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제가 방학식이었어, 너 쓰러진 지 4일이라는 거. 애들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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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오늘, 나 주시진 그 새끼랑 싸웠어. 어쩔 수가 없었어. 걔가 김태형 구슬려서 나 떨궈놓으라고 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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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리고 정호석 그 자식이... 다 꾸미고 계획한 거래. 이게 그 새끼 게임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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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000, 넌 캐릭터로 뛴 거야. 존나, 존나 불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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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어차피 이렇게, 누워 있을 거면서...

그러면서 울었다. 울다가 지치면 잠들었다. 다시 깨어나면 또 날 보면서 울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김태형이 왔다. 둘이 놔두니까 조용히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게, 너무 웃겨서 웃어버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내 웃음은 물 밖에서는 안 보이는 거 같았다.

언젠진 몰라도, 그 둘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싸우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볼 수가 없었다. 몇 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물 속에서는 물 밖이 안 보이니까.

물 속에서는 시간이 필요없으니까.

새까만 밤이 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더니, 다시 해가 뜨고서 해가 지고... 삼 일 동안 엄마와 있고 나서야, 그 뒤에야 김태형 혼자만 찾아왔다.

별 말 없이 한참을 있다, 해가 하늘의 가운데에 뜨고서야 울면서 말을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그 말밖에 안 했다, 김태형은. 미안하다고.

살려달라고,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고.

꼭 범죄자가 자수하는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김태형은 피해자인 나에게 사과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 000과, 민윤기에게 비는 것이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내 손가락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빌었다.

그러고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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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흉터 남을 거래, 자국 질 거래. 조직을 건드렸을 수도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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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00아, 나 한 번만 용서해주라. 나 진짜 너무 잘못한 거 아니까 한 번만 봐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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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중학교 때, 너를 끌어들여서 미안했었어. 진짜야.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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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내가 꼴 보기 싫어도, 죽일 만큼 싫어도. 함만, 눈 딱 감고 함만. 일어나주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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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우리 독서실 얘기하던 그 때로 가자. 너 예쁘게 웃는 얼굴 까먹어. 응?

결국 얘도 울었다, 철없이 어린애같이.

그 큰 손으로 내 손을 꽉 잡고서 엉엉 우는 꼴이.

나도 울고 싶어졌다.

순간, 내 손이 예고 없이 깊은 심해 밖으로 끌어당겨졌다.

까닥,

손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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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000! 내 말, 내 말 들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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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일어나 줄 거지... 깨어나 줄 거지,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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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알고 있었어.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나는 혼수상태였다고 했다.

식물인간으로 살 수도 있다고 했다, 신경의 중심부를 스쳐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의식이 있다는 걸 물 밖의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내가 물에 빠진 지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일어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