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다.

해가 지기 전

민윤기가 내 머리 위에 턱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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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나 욕하니까, 재밌디?

000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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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무슨 소리야.

000

꺼지라고.

000

너, 민윤기가 아니잖아. 진짜 민윤기는 내가 울 때 한번도 달려온 적이 없어.

000

진짜 민윤기는 한번도 날 안아준 적이 없어.

000

그리고, 진짜 민윤기한테는.

내가 미안한 게 너무 많아서, 니가 진짜 민윤기면 안 돼.

내가 사과할 일이 너무 많아서, 니가 진짜 민윤기면 안 돼.

내가 아파 죽을 것만 같아서.

000

니가 진짜 민윤기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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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래서 울 때 달려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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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그래서 너를 이렇게 안아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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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꿈이면 어때, 힘든 날이면 어때.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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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내가 민윤기면, 뭐가 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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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니 꿈에서 같이 살아줄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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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네가 행복하게 잠잘 수 있게 수면제 해 줄게, 내가.

000

쓰레기 새끼.

나는 민윤기의 팔을 놓고, 펜스에서 내려가 반대쪽으로 뛰었다.

뛰면서 이를 악물었다.

욕 한마디라도 더 하고 올 걸,

어차피 나 쟤 못 보는데, 욕이라도 해주고 올걸,

나 이사간다고, 너 같은 사이코랑 이제 끝이라고. 욕이라도 해주고 올걸.

눈물 흘리며 다시 달려간 강가에는.

민윤기와, 무언가를 잡고 있는 김태형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급하게 민윤기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온 것도 모르고 가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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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거치적거리는 쓰레기는 버릴 때가 왔어.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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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너 이제 반장 못 해먹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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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소년원에 들어가겠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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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자살 판정 받을 거야,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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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손에 칼을 쥐고 배에 찔러넣은 채로, 강가에 빠져서 익사체가 발견될 거야.

김태형이 손에 든 건 하얀 단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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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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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뻔뻔하네.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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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니가 사람을 한 두번 뺏은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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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중학교 때부터 계속, 넌 악질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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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그래. 우린 떡잎부터 서로 죽일 연이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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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성인 되기 전에, 하나는 처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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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영악한 새끼.

민윤기가 그를 비웃으며 한 라이터를 들었다.

작은 지포 블루 라이터, 예쁘게 네 글자의 한자가 새겨져있었다.

뭐라고 읽는진 모르겠지만, 그걸로 김태형의 옷깃이라도 태울 요량이었는지 뚜껑을 탁, 소리 나게 열었다.

김태형이 칼로 민윤기를 찌르려고 했다, 그 짧은 순간. 뇌리에 내가 했던 말이 돌이켜졌다.

000

- 태형이, 도와줘야겠지.

지금 내가 태형이를 막는 게 태형이를 도와주는 일이야.

나는 그들 사이에 뛰어들어,

배의 살짝 왼쪽 부분에, 태형이의 칼을 맞았다.

입고 나온 하늘색 스웨터에서 서서히 붉은색 물감이 번졌다. 꼭 링거 바늘을 뽑았던 그때처럼.

나는 살짝 웃었다.

000

태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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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아, 아... 아...

태형이는 칼을 바라보다가, 피가 묻은 제 손으로 귀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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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000!

엄마, 지원아, 내가 살다살다 칼에 다 맞아본다.

그것도 안 지 일주일 된 애랑, 중학교 때부터 따라다녔던 애를 앞에 두고 말이야.

게다가 칼로 찌른 사람은 우리 반 반장이야. 이상하지?

엄마.

나 기숙학교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흉터 안 남게 깨끗하게 나았음 좋겠어.

엄마, 그래도 나 잘 한 거지?

내가 두 사람을 구했어, 엄마. 나 잘 한 거지?

이제 아무도 안 다쳐, 엄마.

나 잘 한 거지?

나, 안 죽겠지. 그치 엄마?

아빠가 다리 너머에 서 있다.

나는 천천히 아빠에게 걸어간다.

그렇지만 아빠는 나를 뒤로 민다. 얼른 사라져버리라고,

너희 엄마랑 나랑 알콩달콩 십 년 지내기 전까지 절대 찾아오지 말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아빠는 나한테 말한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너무 일찍 떠나버려서 미안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놀림받고, 중학교 때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해서 미안하다고.

중학교 때 지금의 일진들처럼 놀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고등학교 이 학기부터는,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착한 아이 되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리고 아빠는 나한테 말한다.

이제 돌아가라고. 돌아갈 시간이라고.

나는 아빠한테 말한다.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