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다.
이튿날


8:20 AM
8시 20분. 눈을 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엄마에게 달려가 기숙학교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000
나 진짜 남은 이 년 동안 공부 제대로 해서 좋은 대학교 들어가고 싶어, 엄마.

000
방학 시작하기 일주일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쉬면서 나 기숙학교 준비할게.

엄마
니가 그러겠다면 어쩔 수 없다마는, 힘들지 않겠니?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남자 때문이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000
괜찮아, 엄마. 나 철들었잖아.

방으로 들어가서 책을 펴고,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을 그었다.

한 번 줄을 그을 때마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숨도 못 쉬고 끅끅거리다가, 잠들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나간 틈을 타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집어와서, 이불 속에서 드라마를 보며 와작거리며 씹었다.

-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 이런 약속 한 적 없었잖아!

- 사랑하니까.

000
...개새끼들.

그냥 뮤직비디오나 봐야지.

일요일, 안개가 잔뜩 낀 날에 일어났다.

이를 닦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학교에 못 나가겠다고, 너무 힘들었노라고 얘기를 했다.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다 말하면서.

친구들은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고, 월요일에 끝나고 오라고 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목욕까지 하고 욕조에 들어갔다.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얼굴을 담궜다.

그날 밤은 엄마가 사 온 야식을 뜯어먹었다.

마음이 아린다.

월요일, 버릇이 들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고, 10시에 일어났다.

엄마가 출근을 해 있어서 라면이라도 먹으려고 나왔는데, 죽과 장조림이 있었다.

꾸역꾸역 입 안에 다 밀어놓고 편한 자세로 누워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다섯 시가 되어서 지원이에게 전화가 왔다.

집 앞에 왔나 싶어 마중이라도 나가려던 중, 지원이가 말했다.


김지원
- 민윤기, 학교 안 나왔어.


김지원
- 6교시에 겨우 얼굴 비추고 사라졌어.


김지원
- 싸웠나 보더라, 누군지는 몰라도.

나랑 상관 없다. 나랑 상관 없다. 괜찮다. 괜찮다.

친구들에게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하고 가는 기숙학교의 이름을 말했다.


김찬미
보라고? 거기 우리 학원 선배 다녀, 김석진이라고. 한 학년 위니까 친하게 지내봐.

000
...별로,


김지원
됐다, 이 년아. 눈에 수심이 가득해.

친구들은 열한 시에 우리 엄마에게 치킨을 받아먹고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울린다.


김지원
- 누구랑 싸웠나 보더라. 민윤기.

화요일, 열 시에 일어난다.

오늘은 빠르게 마트로 나가 생필품들을 살 생각이었다.

여행용 칫솔 키트, 수건, 세안용품 키트, 머리빗, 머리끈, 옷핀, 옷걸이.

자취하는 사람들이 살 만한 물건을 한아름 담은 카트를 밀며 학용품 코너에 갔다.

다 사고 집에 오니 두 시가 되었지만, 정리를 하던 도중 스테이플러 심을 사 오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스테이플러만 사고, 심을 사지 않다니. 정신이 여간 없나 보다.

밥을 챙겨 먹고, 다섯 시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다시 마트로 향했다.

스테이플러를 사는 김에 공책도 둘러보던 중,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김태형
000.

계산대로 달려가, 쫓기듯이 돈을 내밀고 집으로 달렸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던 도중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집에 들어가서, 힘 없이 침대에 누웠다.

비닐에 담겨 있던 스테이플러 심들이 철의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서,

방바닥을 어지럽혔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흩어진 심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눈물이 난다.

수요일. 눈이 부었다. 엄마는 오늘 나와 같이 있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와 영화를 보고, 옷을 사며 웃었다.

부은 눈으로 웃는 건 정말이지 꼴불견이었다.

엄마는 나와 그렇게 있어 주다가 일곱 시가 되어서야 일이 생겼다며 집 앞 골목에서 나와 헤어졌다.

나는 목소리 하나를 들었다.


주시진
도망갔어, 썩을 년.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주시진
제대로 괴롭히지도 않았는데... 지랄.

나는 귀를 막고 모퉁이로 돌았다.


주시진
앞에선 착한 척 하다가, 뒤로 와서야 추하다고 지껄이는 거지?


주시진
징그러운 새끼.


주시진
역시 니가 여자 보는 눈, 그대로일 줄 알았어 내가.

나는 뛰어서 집이 있는 아파트까지 달렸다.

그 날 저녁은, 친구들과 세 시간 동안이나 보이스톡을 했다.

목요일, 눈이 내렸다.

한참 동안 밖만 바라보다가 한 시에야 패딩을 입고 나섰다. 눈을 맞기 위해서.

호석이가 그랬었으니까.

눈이 한 송이, 두 송이 떨어질 때마다 코와 뺨이 빨개졌다.

손이 얼얼하다.

난 내 스스로 꿈에서 깨어난 거라고 믿을 것이다.

그 날, 강으로 달려갔다. 무의식중에.

앞에 쳐진 펜스에 올라앉아,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었다.

민윤기, 김태형. 이름을 불렀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도,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김찬미, 김지원, 유하나, 이겨울, 조하연.

이지은, 김예린, 양우연...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도, 주시진을 욕해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양 뺨이 따뜻해졌다.

민윤기, 김태형. 개새끼들아.

눈물을 닦으면서 얼어붙은 강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시발, 시발 새끼들.


민윤기
귀청 떨어지겠다.

환청이 들린다.



민윤기
뒷담 까니까, 기분이 좋아?

환각이 보인다.

따뜻한 흰 손이, 나를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민윤기가, 여기에 오지 않으리라는 걸.

나에겐 아무도 오지 않으리라는 걸.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