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firefighter]
66.


커튼 틈새로 들어오는 살풋- 반짝인 빛이 누군가의 잠을 깨운다. 꽤나 깊은 잠에 들었던 듯 오래 뒤척이다 겨우 일어난 그녀의 얼굴은 한결 비몽사몽, 하지만 편안해 보인다.

"으음..."


강유빈
...어...?


강유빈
내가 언제 사무실에... 으...

작은 소파에 몸을 뉘였던 탓인지 찌뿌둥한 목과 어깨에 잠시 미간을 찌푸린 유빈이다. 조심스레 스트레칭을 하며 드문드문 끊긴 필름을 되살라 보지만, 원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찝찝한 기분만을 남겼다.


강유빈
핸드폰...

일어나면 핸드폰부터 확인하는 습관에 따라 아무렇지 않게 잠금을 풀어 쌓인 알림들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꽤 많은 알람이 쌓였지만 언제나 그랬듯 게임, 광고 등이 다였다. 조금 풀죽은채로 스크롤을 내리는 유빈의 손이 빨라지고, 이내 알림창 맨 끝에 도달했을 때쯤 손가락이 멈춘다. 평소에 잘 없던 카톡 알람이 눈에 띄어 화색이 된 채로.


강유빈
으으으...!!! 누구지?

유빈은 몸이 좀 풀리자 기지개를 쫙- 늘리며 카톡창을 확인했다. 그러자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손가락이 멈추고 미세히 떨리는 동공. 당황스러운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 뜬 것은,



민윤기
"집이 어디신지 몰라 사무실에 데려다 드렸습니다. 몸조리 잘 하시고 다음 예약때 뵙겠습니다."


강유빈
...으...


강유빈
으아아아악!!!!!!!!!



한편, 소독약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오는 나른한 오전의 병원 접수실. 대기 의자에 몸을 뉘일듯 늘어진 한 남자의 이마를 다른 남자가 딱- 때리며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강의건
야, 병원 데스크에서 누가 그렇게 졸고 있으래?


민윤기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강의건
12시가 다 돼가는데 대체 어제 뭘 했길래 아직도 못 깨는건데?


민윤기
오랜만에 힘 좀 썼다.

윤기가 왼 팔을 빙빙 돌려보이며 의건에게 힘을 자랑해보였다. 그러다 뚜둑- 소리가 나며 "악" 하는 비명소리가 절로 튀어나오자 의건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어댔다.


강의건
왼 팔 다쳤다면서 몸관리나 똑바로 해!!


민윤기
아아 알았어...!!!! 알았다고 놔!!!

가볍게 헤드록을 걸어보인 의건이 다시 한 번 으이구-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팔을 풀어보였다.


강의건
내일 모레 복귀라며. 상담은 요새 잘 받고 있고?


민윤기
아직 한 번 밖에 안 갔는데 뭘 바래.


강의건
뭐 아직도?


민윤기
모르겠다. 선생님은 좋으신 분 같은데... 내가 생각한 거랑 맞나 싶어.


강의건
왜? 상담 방식이 별로야?


민윤기
...그런거라기 보다는...


민윤기
너무 빠르게 많은 걸 공유해버린 것... 같은...


강의건
...그게 뭔 소리야?

잘 알아들을 수 없던 말에 의건이 다시 한 번 되물었으나 윤기는 입을 다물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손톱을 틱틱- 부딪히며 별 거 아니라는 듯 일어나 보였다.


민윤기
그냥, 다니다 보면 알겠지 뭐. 어차피 하루이틀 끊은 것도 아니고...


강의건
뭐야, 싱겁게.

입술을 쩝- 다신 의건이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와 핸드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몸짓으로 이리저리 데스트를 한 바퀴 쭉- 돌아오자 타이밍 좋게도 의건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강의건
"어, 어 누나! 나 지금 1층이야."


강의건
"올라갈까? 응 알았어. 지금 가!"

밝은 목소리로 짧은 통화를 끝낸 의건의 표정이 한껏 들떠있었다. 윤기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 자리를 옮길 준비를 하자 의건이 윤기의 팔에 들려있던 짐을 들어주며 말을 꺼냈다.


강의건
야, 어떨 것 같냐?


강의건
내 조카.


민윤기
어젠가 그저껜가 출산 하셨댔나?


강의건
응 그저께. 신생아 실에 있다는데 오늘부터 면회 가능이래.


민윤기
아기...


강의건
누나 기다리고 있댔으니까 빨리 가자.


민윤기
아, 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누나를 찾는 의건 덕에 빠르게 접선할 수 있었다. 신생아실 병동 옆에 착 달라붙어 조카를 관찰하는 친구가 어쩐지 낯설기도, 부럽기도 했다.


강의건
와, 누나 유전자 다 어디갔어?


강의건
손 작은 것 봐ㅋㅋㅋㅋ 너무 귀엽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카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의건의 모습, 그리고 매우 귀여워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아기의 모습은 보는 사람 마저 흐뭇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윤기의 마음 한 구석은 섬짓- 아려왔다.


민윤기
...

부디 너는,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컸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