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구름
[부승관]


그날 오후, 두 사람은 조용한 집 근처의 한적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소음이 거의 없는 곳, 작은 칸막이가 가려주는 테이블. 마치 둘만의 비밀 공간 같았다.

승관은 조심스럽게 음료 두 잔을 주문해 왔고, 그 중 하나를 지연 앞에 내려놓으며 말없이 앉았다.

지연은 눈가가 아직 붉었지만, 한 모금 마시고는 감탄하듯 말했다.

김지연
"...흑. 맛있어요."


승관
"먹는 거예요? 우는 거예요? 하나만 해요, 킥."

승관은 장난스럽게 웃었고, 지연은 민망한 듯 눈웃음을 지으며 코끝을 닦았다.

그의 웃음소리는 조용한 공간 안에서 은근히 따뜻하게 울려 퍼졌다.


승관
"사람들 눈도 있으니까… 이렇게 칸막이 쳐진 데가 낫네요.


승관
아, 맞다. 핸드폰은 일단 내 명의로 개통했어요. 임시로 쓰다가, 기억 돌아오면 그때 지연씨 이름으로 바꿔요."

김지연
"...감사해요."


승관
"켜봐요. 맘에 들어요? 내 번호 저장해뒀어요."

지연은 핸드폰을 천천히 열어 보았다. 화면 안에 고요히 떠 있는 [부승관] 세 글자.

짧은 그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 놓이게 느껴졌다. 그녀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김지연
"...저를 어떻게 믿고 이렇게 다 해주세요? 제가... 진짜 나쁜 사람이면요?"


승관
"갑자기 무서운 얘기 하지 마요."

승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말끝엔 가볍게 웃음을 얹었다.


승관
"그럼 뭐, 믿는 대가로 뒤통수 맞는 거죠.


승관
근데... 안 그럴 거잖아요.


승관
....그리고 난처하게도 당장 방법이 없기도 하고요."

그 말에 지연의 목이 살짝 메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던 승관이 말을 이어갔다.


승관
"지금은 그 핸드폰에 내 번호밖에 없지만, 곧 사람들로 채워지겠죠. 기억도, 마음도."

지연은 핸드폰을 양손으로 감싸 안으며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승관
"그리고 연락은 언제든지 해요. 단,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 나 진짜 바쁘단 말이에요~"

그 말에 지연은 고개를 숙이며 웃었고, 승관도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

해가 저물고 저녁이 다가올 무렵, 두 사람은 집에 돌아왔다.

각자의 시간을 조용히 보내던 중, 승관은 부엌 쪽으로 향하며 지연의 방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승관
"지연씨, 자요?"

안에서 무언가 허둥대는 기척이 들렸다.

김지연
"아, 아뇨! 안 자요!"


승관
"아, 저녁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같이 먹을래요?"

김지연
"네! 잠시만요!"

승관은 피식 웃으며 냉장고를 열고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지연의 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

연노랑빛의 가녀린 원피스를 입은 지연이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선이 살짝 드러난 디자인,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흐르는 실루엣, 햇살처럼 옅은 색감이 지연의 맑은 피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빛나는 갈색 생머리는 원피스의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리본처럼 어깨 위에 흘러내렸다.

승관의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김지연
"...괜찮아요? 어울려요...?"

지연이 조심스레 물었고, 승관은 흠칫하며 시선을 내렸다가 애써 고개를 돌렸다.


승관
"...잘 어울리네요. 큼큼."

그 말에 지연은 살짝 안도한 듯 미소 지었고, 그 웃음은 승관의 가슴 속 어딘가를 간질였다.


승관
"지연씨, 나 치킨에 맥주 땡기는데, 밖에서 먹을래요?"

지연의 얼굴이 반짝 밝아졌다.

김지연
"치킨이요? 좋아요!"

그녀의 대답에 승관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따뜻하면서도, 이상하게 조심스러운. 이제 막 무언가를 알아차릴 듯한 마음.

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