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구름

'나'의 정체 2/2

지연은 마치 홀린 듯, 망설임 하나 없이 그 여자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앞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저택이 나타났다.

청담동 고급 주택가 한복판, 고요한 대로변에 우뚝 선 그곳은

외관만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김지연

“…뭐지, 여긴…”

고개를 젖힌 채 저택을 올려다보며,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하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여자가 당연한 듯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따라, 지연도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실내는 상상 이상으로 정갈하고 고급스러웠다. 큰 샹들리에가 드리워진 거실과, 벽난로 위에 놓인 앤티크 액자들.

그녀는 마치 낯선 박물관에 발을 들인 듯, 이곳이 진짜 ‘집’일 수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여자는 익숙한 듯 가방을 소파 위에 내려두고, 부엌으로 향해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 모든 움직임은 마치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같았다.

지연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다, 문득 거실 한편 벽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 앞에 멈춰 섰다.

김지연

“…내가 왜…”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고, 숨도 멎는 듯한 순간이었다. 어렸을적 본인이었다.

사진 속엔 지금 부엌에 있는 그 여자와, 낯선 중년 남성,

그리고 또 다른 젊은 여성. 젊은 남성. 그 사이에, 분명히 지연이 있었다.

지금보다 십몇 살은 어려 보이는 모습으로.

이름도, 얼굴도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그 사진 속 인물이 바로 자신임을 직감했다.

김지연

“하윽…으… 머리가…”

지연은 이마를 짚으며 2층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쩐지 익숙한 기운이 계단 위에서 감돌고 있었고, 그 흐름에 이끌리듯 한 방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햇살이 잔잔히 드리운 방이 펼쳐졌다.

여자아이의 방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와, 그 위에 놓인 인형, 그리고 책상 위의 액자 하나.

지연은 천천히 책상으로 다가가 손끝으로 표면을 쓸었다.

그 순간, 프레임 속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엔 또렷하게 웃고 있는 지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김지연

“…여긴… 내 방이야…”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으려 해도 머릿속은 통증만 더해졌고, 실체 없는 안개 속을 헤매는 듯했다.

결국 그녀는 방을 나와 집 밖으로 나섰다.

분명 자신의 집인데도, 오래 머물 수 없을 만큼 몸이 이상했다.

무언가가 그녀를 안으로부터 밀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은 타들어가듯 답답했다. 지연은 벽을 짚고 간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정신 속에서도 단 하나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의 얼굴.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가 있어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지연

"하아...하..."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으리으리한 집들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쳤다.

그 무렵 근처에서 무언가 촬영이 한창이었고,

촬영팀과 연예인들, 번쩍이는 카메라가 보였지만 지연에겐 그것들을 뚜렷이 볼 힘조차 없었다.

????

“네, 승관 씨! 오늘 촬영 막바지인데, 많은 시민 분들과 대화해보셨잖아요!”

승관은 길거리 예능 촬영을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프로답게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으며 인터뷰를 이어가던 그때—

무심코 시선을 돌린 순간, 저 멀리 골목 한켠. 벽에 기대어 힘겹게 걷는 지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분명 지연이었다. 식은땀에 젖은 얼굴, 휘청이는 걸음. 그녀는 분명 이상했다.

하지만…

승관 image

승관

“...!”

승관은 한순간 놀라며 시선을 고정했지만, 이내 지금이 촬영 중이라는 현실을 인식했다.

승관 image

승관

“…네! 오늘 만나본 시민 분들 덕분에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고요—”

프로의 얼굴로 클로징 멘트를 마무리한 뒤, 스태프들과 빠르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승관 image

승관

“수고하셨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고개를 돌려 골목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는 짧게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승관 image

승관

“…뭐야, 왜 저렇게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내심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괜찮지 않았다.

그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간신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지연은 현관문을 닫기도 전에 거의 주저앉듯 소파에 몸을 던졌다.

온몸이 무너진 듯 축 처졌고, 숨은 거칠게 이어졌다.

난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던걸까.